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칼럼127

고등부칼럼-돈과행복 “돈과 행복” 현1974년 당시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이스털린은 경제학자 답지 않는 이상한 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제목은 '경제 성장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가?'(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이다. 그는 1946년부터 가난한 나라와 부자나라, 사회주의 자본주의 나라 등 30개국의 행복도를 조사했다. 첫번째 결과는 경제발전 단계와 사회체제와는 상관없이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높은 행복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소득 수준이 더 높아져도 행복도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2차 대전 때 패망한 뒤 급속한 발전을 이룬 일본사람들의 경우 1970년대까지 1인당 소득이 7배까지 높았지만 삶의 만족도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0. 11. 6.
좀비들의 최후의 만찬 네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이제 내일이면 십자가에 달려야 할 운명의 시간.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베푸셨다. 최후의 만찬.. 제자들은 그것이 최후의 만찬인 줄을 몰랐다. 최고의 만찬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을 좀더 깊숙히 들어가 보면 이런 모습이다.좀비들의 잔치인 것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제자들.. 십자가 앞에 고민하는 주님을 앞에 놓고 '누가 크냐'고 논쟁하는 제자들의 모습. 그래 이것은 지금의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누가복음 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하는 다툼이 일어난지라 제자들의 다툼은 언제 일어난 것일까? 누가복음에는 성만찬 이후에 일어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주님께서 친히 자신의 죽으심을 알려주시고 성만찬의식을 .. 일상이야기/팡......세 2010. 10. 16.
인생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다 인생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다. 사람이란 존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만약 물질적인 것으로 만족한다면 부자나 권력자들은 모두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부자나 권력자들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탕한 삶을 살거나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과 영혼에 대한 갈망을 가진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직 이루지 못할 때 꿈을 꾸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원하는 것을 얻게 될 때 다시 만족하지 못하고 공허하게 된고 만다. 참된 만족과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 일상이야기/교회교육 2010. 10. 8.
고등부칼럼-Beyond ‘Self-handicapping’ Beyond ‘Self-handicapping’ 1978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버글래스와 존스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그룹을 2개로 나누어 A그룹은 쉬운 문제를 B그룹은 어려운 문제를 풀게 했다. 그 후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의 약을 주면서 하나는 집중력을 높이는 약이라고 하고 다른 약은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약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다른 시험을 치기 전 두 그룹의 참가자들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쉬운문제를 풀었던 A그룹의 참가자들은 집중력을 높이는 약을, 어려운 문제를 풀었던 B그룹의 참가자들은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약을 선택한 것이다. B그룹은 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약을 먹게된 것일까? 버글래스와 존스교수는 “불안한 시험 점수에 대한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것을 ‘셀프..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0. 8. 14.
고등부 칼럼-가슴 뛰는 삶 가슴 뛰는 삶 이제 3주후면 중고등부가 함께하는 여름수련회가 열린다. 몇 달동안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번 수련회는 제대로 된 수련회를 한번 시도해 보자는 열의를 가지고 준비했다. 두어달이 넘는 시간을 통해 열띤 토론을 했고 방법들을 찾았다. 그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수련회와는 전혀 다른 차별된 수련회를 준비하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여행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쉽을 배우고, 비전스쿨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강사의 요구로 읽게된 [가슴 뛰는 삶]은 수련회가 시작되기는 전에 나에게 큰 도전과 설레임을 주고 있다. “훗날 우리는 ‘실패’가 아니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것..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0. 7. 3.
고등부신앙칼럼-주님의균형가설 주님의 균형가설 혼기가 된 자매에게 고민이 하나있었다. 두 형제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한 명은 신앙은 기본이고 키도크고 학벌도 좋고 몸짱이었다. 다른 한명은 신앙은 좋지만 키도 작고 몸매도 별로였다. 자매는 누구를 선택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별로인 형제를 선택했다. 무엇 때문일까? 자신의 주제에 멋진형제를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과분한 사람에 대해서는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상대를 고른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친하지려하고 통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균형가설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연약한 사람으로 오셨다. 주님은 왜 천사나 아니면 강력한 신적존재로 오지 않으셨을까? 잃어버린..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0. 5. 29.
당신의 친밀 거리는 얼마인가? 당신의 친밀 거리는 얼마인가? 미국의 에드워드 홀이란 학자에 의하면 사람마다 관계에 따라 활동하는 거리가 다르다고 한다. 보통 네단계로 나눈다. 첫단계는 0~50cm영역으로 가족이나 연인, 친한 친구의 거리로 격식없이 지낼 수 있는 거리다. 두 번째는 50~120cm로 개인적인 거리로 엄격한 격식은 아니지만 약간은 예의를 지켜야하는 관계이다. 세 번째는 2-4m로 공적인 거리이다. 사적인 질문은 하면 안되고 공적인 이야기로만 채워지는 거리영역이다. 마지막은 4m이상 되는 거리로 개인적인 관계는 거의 없으며 오로지 서로를 파악하고 관찰하는 수준이면 된다. 그렇다면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어떠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들 간의 관계를 어느 정도이면 적당할까? 오늘 성경 속에서 주님은 하나님과 철저한 친밀함을 유.. 일상이야기/교회교육 2010. 5. 22.
신평로교회 칼럼 - 희망은 희망은 “호흡이 몸에 필수불가결하듯 희망은 영혼에 필수불가결하다. 희망은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희망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아침마다 우리를 깨우며, 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준다.”(존 클레이풀의 ‘희망’ 중에서) 오늘 우리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희망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비록 지금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 그 꿈을 둘 때, 우리는 더 높은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만이 그 희망의 증거가 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꿈을 꾸고 그의 영광을 위해 그 꿈을 이루어 가십시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 안의 가능성을 주님이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0. 3. 13.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것들 소화기, 일년에 한번도 쓰이지 않을 때가 많다. 효율적인 면을 본다면 이것처럼 비효율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화재가 일어날지도 확실치도 않는 상황 속에서 비싼 돈을 들여 계속해서 소화기를 비치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해 보인다. 그렇다고 소화기를 치우면 될까? 그럴 수는 없다. 왜일까? 불이나면 소화기의 몇 천배의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소화기는 분명 사소한 것이다. 그러나 무시할수 없는 사소한 것이다.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 중에 이처럼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삶과 교회에도 그렇다. 거의 쓰이지 않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비효율적이고 낭비만 되어 보이는 그런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평상시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위기의 때에 가장 요긴한 것이 바로 소화기이다. 우리는.. 일상이야기/팡......세 2010. 3. 4.
신평로교회칼럼-개미의 힘 생명을 가진 곤충 가운데 개미처럼 신비한 곤충도 없습니다. 가느다란 허리로 하루 종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체구로 자기보다 몇 배나 더 큰 먹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죽은 메뚜기를 질질 끌고 가는 개미를 지켜보던 어떤 관찰자가 개미의 몸무게를 달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개미는 무려 자기보다 60배나 더 되는 것을 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그 능력은 바로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주신 훌륭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장담했던 것입니다. 신평로교회는 꿈이 있습니다. 신평로교회는 열정이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0. 3. 4.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