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장 주해 강해

BIble Note/고린도전서|2021. 8. 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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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장 주해 강해

고린도전서 5장 누룩을 제거하라

1. 본문 읽기

고린도전서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린도전서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고린도전서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린도전서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 5: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고린도전서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고린도전서 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린도전서 5: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고린도전서 5: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2. 본문 주해

1절 너희 중에 음행이 있다.

1-2절은 문제의 두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1절은 행위의 본질을, 2절은 교회의 반응을 언급하며 책망하다. 기가찰 노릇이다. 고린도 교회는 세상 속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세상이 있다.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도 없다는 바울의 말에 깊은 분노와 서글픔이 담겨 있다. 가장 거룩해야 할 교회가 세상보다 더 악하다.

음행 프로네이아(πορνεία)는 값을 지불하고 창녀와 성을 사는 것을 말한다. 영어 포르로의 어원이 되는 단어다. 윤락가를 드나드는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를 말한다. 당시 헬라 문화권은 이러한 성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이었다. 세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2절 ~하지 않고

그리하고도 통한히 여기지 않고 그들을 쫓아내지 않는다. 교회가 썩어가고 있는데 그대로 안고 있다. 썩을 것은 빨리 잘라 내야 한다. 고린도 교회의 심각성은 이것이 죄라는 사실에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과 자랑(6절) 했다는 점에서 놀랍다.

 

교만하여져서

-통한히 여기지 않았다.

-쫓아내지 않았다.

 

교만 φυσιόω은 부풀려지다. 풍성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말한다. 교만은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과장하는 것이다. 영적 교만은 실로 사탄에서 온다. 영적 교만은 모든 것을 자신이 판별하여 그것이 진리라고 믿게 만든다. 즉 영적인 내가 판단하기에 이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통탄과 추방으로 대응한다. 이로토록 영적 교만이 무섭다.

 

3절

몸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다. 이미 판단했다.

바울은 멀리 있지만 직접 가서 판단할 필요도 없이 소문만으로도 이미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4절

판단하는 것은 바울 개인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내 영고 함께'있다 선언함으로 주도권을 고린도 교회에 넘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예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임을 드러낸다.

5절 사탄에게 내주었다.

난제 가운데 하니지만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이러한 표현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충분히 벌을 받게 내버려 두라는 뜻이다. 바울 서신 안에는 이러한 표현이 종종 있다. 쉽게 말해 광야에 내 던지는 제물과 같은 존재이다. 종교개혁 이후의 관점으로 이 구절을 풀면 안 된다. 그는 결국 구원받기 때문이다. 5절을 유심히 읽어 보라.

6-8절 유월절 떡

바울은 교회의 음란의 문제를 곧장 유월절로 끌고 간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가는 시작점이다. 이들은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고, 누룩 없는 떡을 먹고, 쓴 나물을 먹었다. 고난과 구원의 긴박성을 담아낸 음식들이다. '누룩 없는 자' '새 덩어리'(7절) '누룩이 없는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8절)은 순수해야 할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상징한다.

9-13절 밖에 이는 사람들

12절과 13절의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가 아니다. 교회 안에 머물고 있는 음행 하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을 사귀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지옥에 간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죄를 짓는 자와 '밖에 있는 자들'을 같이 취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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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본문 강해

1. 1-8절 교회 안의 누룩

1-6절 교회 안의 누룩

5장은 고린도 교회의 두 번째 문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근친상간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당시 헬라 문화 안에서는 통용되는 일반적 사안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1절 중반에서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는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권 안에는 없다고 드릴 수 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이 문제는 좀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음행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거룩과 권위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절의 등장하는 ‘그 아버지의 아내’가 누구인지 학자들 간의 수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재혼하여 새로 얻은 여성으로 봅니다. 이유야 어떻든 대부분의 이방인들조차 금하는 죄가 고린도교회 안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바울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화가 났던 이유는 이러한 죄가 교회 안에 있음에도 교회 안에 성도들이 아무런 죄책이나 통한히 여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교만’했고, 6절에 의하여 그들은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그들의 자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죄를 짓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아무런 죄책도 없고, 오히려 좋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음행의 문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영적·신학적 상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어제 4장을 살피면서 바울이 ‘기록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4:6)는 경고를 들었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충돌과 시기, 작은 죄들이 쌓여 결국 크고 중대한 범죄로 이어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누룩’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균이 숨겨져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두면 점점 온 덩어리에 퍼져나갑니다. 이처럼 작은 죄들을 그대로 두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고, 교회를 죄로 물들게 합니다.

 

7-8절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바울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7절)고 충고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누룩이 온 공동체를 썩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룩의 이야기를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사건에서 가져옵니다. 놀랍게도 유월절에 희생되었던 어린양이 곧 ‘그리스도’(7절)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빵은 원래 누룩을 넣어야 맛이 있고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유월절 때는 빨리 애굽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누룩에 부풀릴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의도적으로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유월절의 누룩 없는 빵은 거룩과 순결을 상징하기 전에 구원의 긴박성을 말합니다. 누룩은 평온과 행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출애굽 당시에는 나태함과 세상에 대한 미련을 말합니다. 마치 지난주에 담임목사님께서 언급한 롯의 처의 세상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제 세상에 대한 미련과 사랑을 버리고, 속이 주님께로 돌이켜 거룩하고 순결한 삶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병수 교수는 8절의 ‘명절을 지키라’를 ‘우리의 온 삶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진 유월절의 잔치처럼 되게 하자’로 해석합니다.

2. 9-13절 전 편지에 대한 재설명

9-13절은 전 편지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던 부분에 대해 다시 설명합니다. 아마도 전 편지에서는 음행 하는 자들과 완전하고도 완벽한 결별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10절)이라고 말합니다. 음행의 죄뿐 아니라 다른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성도가 할 일은 모든 세상의 거룩이 아니라 교회 안의 거룩으로 한정시킵니다. 문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세상의 행악자들에 대한 불가피한 허용을 정당한 것으로 해석해버렸다는 점입니다. 고린도후서 6:14-7:1까지를 보면 이들이 허용을 친밀한 사귐으로까지 끌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약간의 틈만 보여도 그 틈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 밖의 문제는 교회 밖의 일로 남겨두고 교회 안의 음행자들을 ‘내쫓으라’(13절)고 말합니다. 김세윤 교수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성과 순결성을 보존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있을 뿐이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다는 말은 세상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세상, 교회가 잘라 내야 할 세상의 원리를 소개합니다. 먼저는 음행 하는 자입니다. 음행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육체적 만족의 선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도는 넘어 타인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입니다. 세 번째는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의 다른 말은 탐심입니다.

 

  •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과 우상숭배가 함께 엮어진 곳을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 [갈라디아서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에베소서 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모욕과 술 취함, 속여 빼앗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들을 넘어서는 행위들입니다. 모든 악은 4:6에 기록된 대로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벗어나 육신과 욕망을 따라 사라는 삶입니다.


마무리

5장에서는 음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다 음란의 행위 자체보다는 악을 옹호하고, 자랑하는 그릇된 영적 상태에 있었습니다. 모든 악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교회 안에서 내쫓으라고 말합니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에 대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죄 안에 하나님의 계명을 왜곡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악한 의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장별요약 및 강해

고린도 전서 장별 요약 및 강해 고린도전서 주해와 강해 설교를 모은 것입니다. 전반적인 내용은 고린도전서 연속 강해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입니다. 강해 형식을 띄기는 했지만 주해에 무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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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장

BIble Note/고린도전서|2021. 8. 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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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

 

 

1. 본문 읽기

 

고린도전서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린도전서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고린도전서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린도전서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린도전서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린도전서 4: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린도전서 4: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고린도전서 4: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고린도전서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고린도전서 4: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린도전서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4: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린도전서 4: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고린도전서 4: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고린도전서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2. 본문

1절 그리스도의 일꾼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는 같은 말이다. 복음은  공개된 비밀이다. 우리는 비밀이란 단어를 신비롭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복음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눈으로 절대 볼 수 없기에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공개되어 있다.

 

2절 충성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맡은 자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것이다. '맡은 자'는 사명자를 뜻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충성'을 통해 평가된다.

  •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판단하지 말라

고린도교회의 치명적 단점은 '판단' 서로를 자신의 잘못된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죄를 지적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타인의 헌신과 은사에 대해 사람들이 판단하면 안 된다. 은사를 주신 주님이 하실 일이다.(4절) 주님이 오시면 그 때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6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악한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고, 교만한 자들은 순종하지 못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말씀의 경계를 넘어선다. 처음 그 경계를 넘었던 자들은 아담과 하와다. 교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정신이다.

 

7-13절 만물의 찌기가 되었다.

이 부분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비아냥? 거림이 느껴진다. 바울은 단단히 화가 나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복음이 어떻게 해서 너희들에게 도달했는지 아느냐? 복음의 가치를 너희가 아느냐?라고 묻고 있다. 이 단란은 15절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의 설명이다.

 

14-15절 내 사랑하는 자녀

복음으로 낳았다는 말은 사람의 말이나 교묘한 술수로 유혹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2:18-21절) 바울은 '자녀'라는 표현으로 '내가 너희를 얼마나 아끼는 지 아느냐'고 묻고 있다. 이것이 목회자다. 목회자는 잡스러운 지식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다. 목회자는 분주한 행사로 정신을 빼놓는 사람도 아니다. 목회자는 아버지이어야 한다.

 

16절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

어떤 목사가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까? 참으로 가슴 아픈 말이다. 목회자들이 이렇게 타락했다. 나 또한 이 말에 자신이 없다. '나를 본 받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진심으로.... 

 

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에 있다.

능력은 '뒤나미스'다. 바울이 굳이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할까? 말과 능력의 차이는 말은 거짓과 허상이고, 능력은 행동과 실천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말 장난하지 말고 실제로 너희 믿음으로 보이라는 야고보의 말처럼 강직하고 단호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실제 삶이다. 말 장난이 아니다.

3. 강해

고린도전서는 1:1-9은 인사와 서론에 해당되고, 1:10-4:21까지는 고린도교회의 첫 번째 문제인 분쟁을 다룹니다. 4장은 분쟁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며, 지금까지의 분쟁에 관련된 것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1장에서는 분쟁의 양상과 해답으로서 십자가를 제시합니다. 2장에서는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보이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3장에서는 분쟁의 이유가 된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하니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이제 4장에서는 나를 본받으라’(16)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4장을 구분했습니다.

 

1-5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겨라

6-13절 진정한 사도권의 표지들

14-21절 부탁과 권고

 

1-5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겨라

바울은 사역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일꾼’(1)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소개합니다. 아니, 그렇게 여겨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그리스도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삶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에는 삶이 원인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사역자들은 그리스도가 원인과 목적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며 동시에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갑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2)입니다. 바울은 충성을 판단’(3)의 문제와 연결시킵니다. 충성은 주인에 대한 것이지만, 판단은 주인이 종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3)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심판의 권한은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4)

 

모든 판단이 주님께 있다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바울은 3절에서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일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 말하며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4절에서는 주님만이 나를 심판하실 것이라 말하며 모든 판단의 여지를 주님께 맡깁니다. 5절에서는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드려내시고 각 사람에게 칭찬을 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 “너희들이 지금 자신의 신앙이 옳다면 우리를 판단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종을 판단하시는 이는 오직 주인이듯, 사역자들을 판단하는 이는 오직 주님이시다”

1-5절의 숨겨진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분쟁의 이유 중 하나는 바울이 다른 사도들과 달리 권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동행하지도 않았고, 부활 이후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체험이지 예루살렘에 있던 다른 열두 사도의 인증이나 교회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서신을 읽을 때는 여러 곳에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9장에서, 고린도후서에서는 11장에서, 갈라디아서 2장에서 자신의 사도직은 강력하게 변호합니다. 이렇게 보면 4:1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꾼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달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사도직이 중요한가. 그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 때문입니다. 바울을 의심하면서 그가 전하는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제 다음 단락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표지들을 소개합니다.

 

6-13절 진정한 사도권의 표지들

 

바울은 6-7절에서 다시 분쟁의 문제로 되돌아 갑니다. 그들에게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6)고 경고합니다. 이건 확실히 경고처럼 보입니다. 말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바울)와 아볼로에게 배웠으니 그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7절에 의하면 말씀 밖으로 나가는 것은 성도끼리 서로 구별’(7)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별은 3:3에서 언급한 대로 시기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심으로 모든 것을 허락하셨음에도 그들은 다른 성도가 가진 것을 보며 시기했고, 탐했습니다. 또한 그 반대로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는 악순화는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8절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미 배 부르며 풍성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9-13절까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교만과 자기자랑에 빠져 있는 동안 바울이 어떻게 살았는지 소개합니다. 9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바울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었습니다. 구경거리가 되게하셨습니다. 13절에서는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로 소개합니다. 이것은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특히 9절의 상황은 원형 경기장에 구경거리가 되기 위해 끌려들어가는 사형수와 같은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하나님의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기 위해 가장 미천하고 위험하고 비참한 삶을 기꺼이 받아 들였던 것입니다.

 

이제 6-8절의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모습과 9-13절에 나타난 바울의 모습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께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바울이 당해야 했던 그 수많은 헌신과 사랑, 그리고 낮아짐을 기억해 봅시다. 주님 때문에 어리석어지고, 주님 때문에 비천한 자리로 나아가고, 성도들을 위해 주리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살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도의 표지요, 십자가의 도를 믿는 자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저는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이 밀려옵니다. 성도들이 수고하고 힘들어 할 때 목사인 저는 오히려 배부르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 않는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14-21절 부탁과 권고

바울은 책망조의 자기소개를 마친 다음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14) 15절은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할 본문이며 특히 교역자들은 깊이깊이 새겨야할 말씀입니다.

 

  •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은 있지만 아버지는 많지 않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복음으로 낳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접하면서 나는 과연 영적인 아들이 있는가 물었습니다. 진정으로 말씀으로 낳은 영적 자녀들 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면 거듭난 성도들이라도 제가 진심으로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목사의 본을 보였는가 물었습니다. 절대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성도님들이 저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 것 같고, 권사님이 저보다 더 봉사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과분하게 사랑 받는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바울은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를 자신을 대신해 고린도교회로 보냅니다.(17) 디모데는 바울이 가르치는 것들을 생각나게’(17)하려는 목적으로 보내집니다. 온순하고 내성적이었던 디모데는 강력한 어조는 아니었지만 차분히 성경을 강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교만한 자들에게 대해 경고하고 4장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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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장,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것에 대해

BIble Note/고린도전서|2021. 8. 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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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것에 대해

1. 성경 본문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2. 성경 주해

본문을 구조분석해 보겠습니다.

2 서론-칭찬

3-6 본론1: 여성은 머리를 가리라

7-10 본론2: 성경적 근거1

11-13 본론3: 성경적 근거2

14-15 본론4: 본성적 근거

16 결론

바울은 먼저 그들이 전통을 잘 지키고 있다고 칭찬한다음 곧바로 여성들이 예배시에 머리를 가리지 않은 것에대해 책망합니다.(3-6) 그런다음, 왜 머리를 가려야 하는가를 세 가지의 이유를 들어 변증합니다. 두 가지는 성경에서 찾고, 나머지 하나는 본성에서 찾습니다. 마지막 16절에서 관례가 없다고 선언하며 마무리 합니다. 엄밀하게 본문은 계속된 내용의 일부이기 때문에 오늘의 본문만으로 논쟁을 마무리했다고 말하기는 모호합니다. 어쨌든 오늘의 본문만으로 바울이 말하고자 의도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3-6 본론 1:여성은 머리를 가리라

3-6절가지의 내용은 여성이 예배 시에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에 대해 책망합니다. 여성에 대한 것뿐 아니라 남성이 대한 것도 함께 포함합니다. 3절은 머리영광에 대한 해석으로 시작합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이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럼 여성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순서를 보면 여성-남성-그리스도-하나님 이 됩니다. 영광과 머리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자세히 하기로 하고 머리에 쓰는 것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 봅시다.

4절은 남성들이 머리에 쓰고 기도하나 예언하는 것을 책망합니다. 반대로 5절에서는 여성이 머리에 쓰지 않고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책망합니다. 여성이 머리에 쓰지 않는 것과 남성이 머리에 쓰는 것 둘다 그들의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욕되게 한다는 표현은 부끄럽게 한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그릇된 행동을 하여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욕되게 하다의 용례

이곳에서 사용된 욕되게하다는 표현은 헬라어 카타이스퀴노(καταισχύνω)를 사용한 것으로 미완료형으로 계속하여 욕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통해 이러한 습관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오래된 관습이었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는 16절에서 바울이 관례라는 표현을 사용한 인 것 같기도 합니다.

καταισχύνω의 용례를 살펴봅시다. 성경은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까요?

 

13: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이곳에 나오는 모든 단어는 καταισχύνω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게 하다는 치욕과 모욕, 명예를 깎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것이 사용될 때는 그러한 문화적 배경을 뛰어넘습니다. 예수님의 예화를 통해 유대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주님을 믿는 자들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9:23) 이러한 표현들은 종말에 드러날 인간의 실존, 즉 치욕스러운 결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죄가 만천하에 명백하게 드러나 변명할 수 없게 되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바울의 의도한 의도라면 여성들이 머리에 가리지 않는 행위는 자신들의 죄를 현저히 드러내는 치욕스런 행위가 됩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죄가 가리워지지 않은 자연인들의 종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가 하나님 앞에서 숨기움을 받은 그들이 거듭나지 못한 자들처럼 악을 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숨겨야할 것을 숨기지 않고(여성), 드러내야할 것을 드러내지 않는(남성)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받은 책망의 핵심입니다. 이제 바울이 말하는 세 가지 근거를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7-10 본론 2:성경적 근거 1

7-10절까지는 첫 번째 성경적 근거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남성은 머리를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형상과 영광이 갖는 직접적 의미는 드러냄이라는 것입니다. 남성들을 자신의 머리를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고, 영광이 됩니다. 영광의 의미를 조금만 살펴봅시다.

요한은 요한복음 1:14절에서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곳에서 말하는 영광은 드러냄이며 나타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 가운데 성육신의 신비를 통해 나타나신 분입니다.

  •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육신의 다양한 의미 속에서 요한이 채택한 주제는 나타남입니다. 영광(δόξα)는 히브리어 무겁다는 뜻을 가진 카보드를 번역한 것이며, 종종 이 단어는 하나님 되심에 대한 능력을 드러내는 것과 치환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능력을 드러내심으로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은 Thayer's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에 의하면 평판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현현을 드러내는 단어는 카보드 외에 쉐키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의 발현 등과 관련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영광이 갖는 의미는 드러남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여자가 남의 머리, 또는 영광이라는 말에 여자의 드러남은 남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으로 넘어가 봅시다. 그곳에서 도마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말하자 주님은 내가 길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내게 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빌립이 즉시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말에 주님은 곧바로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 요한복음 14:6-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며, 남자는 여성에게 영광’(7)으로 선언합니다. 논리적 순서에 따른다면 이 부분은 모순입니다. 살펴봅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

남성은 여성의 영광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하나님)에게 그리스도(남성)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통해 영광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즉 영광은 드러난 것이고, 하나님과 여성은 숨겨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숨겨졌다는 말은 하위나 종속된 존재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표성을 말합니다. 남성은 어떻게 여성을 대표할까요? 바울은 다음의 논리를 통해 논증합니다.

-남성은 여성보다 먼저 지음 받았다.(9상 절)

-여성은 남성을 위하여 지음 받았다.(9하 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두어야 한다.(10)

 

이곳에서 천사들로 말미암아는 난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논증하지 않고 곧바로 히브리서 2:2 말씀으로 해석하기를 권합니다.

 

  • 히 2: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즉 천사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천사들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은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바울은 남성이 우선 되는 이유를 먼저는 창조의 시간적 우선성에서 찾고, 두 번째는 사역의 우선성에서 찾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되는 이유는 바로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성은 권력이 높다거나 존재의 차별이 아닙니다. 그것은 권위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 성경적 근거로 넘어가 봅시다.

 

11-13 본론3: 성경적 근거2

 

두 번째 성경적 근거는 첫 번째 근거의 확장이자 구체적 근거입니다. 바울은 다시 11-13절에서 여성의 위치를 역사적 원리에서 찾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라는 표현을 통해 여성의 위치가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주 안에는 남성 뿐 아니라 여성도 있다는 말은 남녀의 동등성을 말합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존재의 평화와 동등성을 내표합니다. 주 안은 어떤 차별이나 구분이 있지 않습니다. 주 안은 곧 십자가 아래이며, 십자가는 곧 모든 사람의 죄인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됨의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동등성의 논리는 12절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난 것처럼, 남자 또한 여자에게 났습니다. 또한 모든 것(남자와 여자,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났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근거에 의해 13절에서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아직 논리적으로 미미함에도 바울은 곧장 성급해 보이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근거에서 제시합니다.

 

14-15 본론4: 본성적 근거

 

14-15절은 앞선 4-6절 내용을 다르게 표현합니다. 남자의 긴 머리는 부끄러운 것입니다.(14) 이에 비해 여자의 긴 머리가 자신에게 영광이 됩니다.(15) 기이하게 15절에서는 여성의 긴 머리는 가리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머리를 깎는 것 말하는 것은 머리를 짧게 깎았다면 긴 머리를 대신해 천으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6절과 비교할 때 전혀 다르게 해석됩니다. 결국 여성들은 긴 머리를 가지고 있음으로 자신의 영광, 즉 여성성을 온전히 드러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긴 머리를 감춤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숨깁니다.

 

결론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남성은 여성의 영광으로서 드러냄을 얻고, 여성은 남성에게 감추어진 존재로서 숨겨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드러내야할 남자는 숨기고, 감추어야할 여자는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어떤 교회도 관례(συνήθεια)가 없는 것이라고 못 박습니다. 관례의 용례는 요한복음 18:39와 고전 8:7에서 사용된 것에 의하면 오래된 전통과 관습, 또는 문화적 범주 안에서 관행되어온 것입니다.

  • 요 18: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 고전 8: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종종 2절의 전통과 연결시키지만 2절의 전통은 가르침(κατέχετε)을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2절의 전통은 복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16절의 전례는 교회가 지켜온 전통입니다. 전통(συνήθεια)συν(with)θος(custom)가 합성된 단어로,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준하는 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렇다면 2절의 전통과 16절의 관례는 다르지만 복음적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단어들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 대해 결론 내리면서 몇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본분을 알라.

남성은 드러내야 합니다. 여성은 숨겨져야 합니다.

-사람은 평등하다.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닙니다.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동역자입니다. 즉 한 몸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역할은 다릅니다. 창조의 순서와 소명의 방식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라.

결론은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남성들이 원하는 것은 머리를 감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드러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겸손한 척하면서 드러내지 않는 것도 교만입니다. 여성들은 자신을 감춤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교만하기 때문에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고린도라는 도시가 갖는 전형적인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 해도 하나님의 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자신을 숨김으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말입니다

 

 

[문서 이력]

발행일 2019-01-27 19:26

1차 수정 20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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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서 강해 및 관련 도서

BIble Note/고린도전서|2021. 2. 1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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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서 강해 및 관련 도서

 

고린도 전서 강해와 관련 도서입니다. 각장 강해는 매일 새벽 장별로 설교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와 관련된 도서와 주제들을 함께 묶었습니다. 장별설교와 주제를 제목을 클릭하시면 주제로 원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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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장 은사와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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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고린도전서 16장 성도를 위한 연보와 작별인사

BIble Note/고린도전서|2020. 1. 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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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고린도전서 16장 성도를 위한 연보와 작별인사


드디어 고린도전서 마지막 장인 16장에 도착했습니다. 16장은 그리 길지 않고 신학적 논쟁도 없습니다. 성도를 위한 연보를 잠깐 다루고 마지막으로 권면과 인사를 끝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1-12절 연보의 문제

13-24절 권면과 인사


1. 1-12절 연보의 문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인사하면서 연보에 대한 문제를 언급합니다. ‘갈라디아교회에 명한 것 같이하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바울은 교회에 연보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갈라디아서 2:10에서 바울은 연보에 대한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갈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그런데 이곳 말고는 더 다른 상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울은 연보가 선교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연보를 부탁하고 있을까요?


먼저 매주 첫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주 첫날은 지금의 일요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매주 일요일 주의 날로 정해 예배하는 것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배 시간을 통해 연보를 정식적으로 드린 것입니다.

둘째는 연보는 준비되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라고 말합니다. 즉 어느 날 갑자기 많은 것을 하려하지 말고 연보는 습관적으로 해야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충분하면 그 때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적은 것을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돈이 있어도 결코 드리지 못합니다. 작은 헌신이 큰 헌신을 부르고, 작은 충성이 큰 충성을 감당합니다.

세 번째는 수입에 따라 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연보가 적당한 수준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가 연보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13-24절 권면과 인사

마지막으로 권면을 하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합니다. 13절에서 깨어 믿음에 굳게 서라고 말합니다. 14절에서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재차 강조합니다.

세 번째는 16절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즉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라고 말합니다. 18절에서 복음으로 수고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를 알아주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랑할 줄 알았지 교회를 위해 주를 위해 수고한 이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수고한 이들을 인정해 주어야하고, 그들이 하고자하는 일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자들을 기꺼이 인정해 주어야 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목회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일에 힘쓰는 봉사자들과 헌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인정받고 존귀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권속들에게 문안하라

바울은 20절에서 너희는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합니다. 입맞춤은 환영과 환대를 말하며,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라는 말에는 먼저라는 말과 상통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문안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먼저 문안하라는 말입니다.

 

마무리

연보와 문안의 문제는 전혀 다른 주제이지만 서로 닮아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지체를 돌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희생하여 교회를 세웁니다. 바울은 오직 한 가지 교회를 향한 걱정과 근심, 그리고 열심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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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 부활을 변증하다

BIble Note/고린도전서|2020. 1. 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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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을 변증하다

드디어 고린도전서의 가장 중요한 장인 15장에 도달했습니다. 다음 장이 고린도전서 마지막 장인 16장이 있기 때문에 15장은 결론부분에 해당됩니다. 15장은 58절이나 되기 때문에 하루에, 그것도 새벽에 잠깐 언급하고 지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간략하게 중요한 의미만을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려고합니다. 15장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과 그로인해 예수님을 믿는 성도 역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15장을 구분해 보았습니다.

1. 1-11절 부활하신 그리스도

1-3a절 서론: 바울이 전한 것

3b-11절 부활의 증인들

2. 12-34절 부활의 변증

12-19절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20-34절 부활의 순서

3. 35-58절 신자의 부활

35-49절 땅의 소속, 하늘의 소속

50-58절 신자의 부활

 

1. 1-11절 부활하신 그리스도

1.1. 1-3a절 서론: 바울이 전한 것

1-3절 전반부는 복음에 어떻게 반응하고 생각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전합신대 총장이었던 조병수 교수는 복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합니다. 먼저는 내가 전한 복음’(1)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만이 진정한 복음이 아니라 거짓교사들과 그릇된 철학적 사조(思潮)과 비교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너희가 받은 복음’(1)입니다. 복음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임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을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세 번째는 그들 가운데 서 있는 복음, 즉 복음 안에서 살아감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2절에서 그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바울은 1-3절에서 자신이 소개할 부활의 복음을 전거하기 위해 먼저 복음이 갖는 특징을 소개하고, 결론으로 자신이 전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며 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엇일까요?

1.2 3b-11절 부활의 증인들

3절 후반부부터 11절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소개하는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주님은 성경대로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3절 하) 그 다음 장사 되셨고 성경대로’(4절 하) 사흘 만에 살아 나셨습니다. 여기까지가 복음입니다. 5절부터 8절까지는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난 이야기입니다.

가장 먼저 게바, 즉 베드로에게 나타났습니다.(5)

두 번째는 열두 제자에게 나타났습니다.(5절 하)

세 번째는 오백여 형제에게 나타났습니다.(6)

네 번째는 야고보에게 나타났습니다.(7)

다섯 번째는 모든 사도에게 보였습니다.(7절 하)

마지막 여섯 번째는 사도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7절에 소개된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야고보를 말합니다. 신약 성경의 야고보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발견되지만 오백여 형제에게 나타난 것과 야고보에게 나타난 것은 이곳 말고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아하게 복음서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최초의 사람은 무덤을 찾아간 여성들인데 바울을 그것을 누락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적 권위를 먼저 앞세우려는 논증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울은 부활의 증인들을 소개하면서 갑자기 8절에서 자신에게도 나타났다는 것을 이야기한 다음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변증합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는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하지 않았고, 육신의 주님을 보지 못함으로 사도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할의 주님을 만났고, 선교 여행 주님에 환상을 통해 여러 번 주님을 경험합니다. 사도행전 18:9-10에 보면 바울이 에덴을 지나 고린도에 왔을 때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이렇게 말합니다.

[18:9-10]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바울은 비록 그러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신을 사도로 부르셨고, 복음 전하는 자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2절의 내가 전한 그 말을곧 복음을 말합니다. 복음은 단지 말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 사실에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사성입니다.


2. 12-34절 부활의 변증

2.1. 12-19절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바울은 부활의 증인들을 소개한 다음 부활의 논리적 변증을 시도합니다. 12절에보면 고린도교회 성도의 일부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바울은 이제 만약 부활이 없다면이란 가정법을 통해 부활을 변증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입니다.(13) 당연한 말입니다.

둘째, 만약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 그것을 믿은 너희도 헛것이 됩니다.(14)

셋째, 바울을 비롯한 복음전도자들이 거짓 증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다시 부활할 것을 전하기 때문입니다.(15)

넷째, 믿음도 헛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17) 부활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부활을 통해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그 자체로 완성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십자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 곧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들은 멸망 받게 됩니다.

여섯째, 만약 부활이 없다면 바울을 비롯한 복음 전도자들은 참으로 불쌍한 자가 됩니다.(19)

부활이 없다면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땅이 삶의 전부라면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이들의 삶은 너무나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바라는 것과 인내하는 것, 친절과 사랑과 섬김은 무의미해 지고 맙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않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2.2. 20-34절 부활의 순서

바울은 두 번째 변증으로 이어갑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정한 다음(20),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첫 열매는 곧 이후의 열매들이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삶’(22) 즉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모든 성도가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데, 그 때는 세상의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잠깐 세상에 허락한 권세와 영광을 거두어 하나님께 바칠 것입니다. 또한 사단의 세력과 사망까지 멸망 받게 됩니다.


3. 35-58절 신자의 부활

이제 바울의 마지막 변론이 시작됩니다. 35-58절에서 바울은 부활이 갖는 신학적 특징을 소개합니다. 굉장히 난해해 보이지만 결론은 이것입니다. 땅에 속한 자는 땅으로 돌아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온 자들은 다시 하늘의 형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습니다. 그래서 흙에 속했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둘째 사람, 즉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땅에 속할 때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을 입지만, 하늘에 속한 자들은 육신을 벗을 때 하늘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49)

마무리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자 전부입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부활을 살아가는 자들은 땅에 속한 탐심과 욕심과 거짓을 버립니다. 하늘의 형상으로 덧 입혀져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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