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설교119

시편 84편 귀향(歸鄕) 귀향(歸鄕) 본문 시편 84편 집을 떠나봐야 집의 소중함을 안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주는 아내의 수고도 평상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타향 살이를 통해 집을 떠나보면 일상의 삶이 얼마나 특별한 삶이었는가를 알게된다. 사람은 누구나 일탈(逸脫)을 꿈꾸며 일상(日常)을 지겨워하지만, 먼 곳의 여행을 통해 알게되는 것은 진정한 가치는 일상의 평범함 속에 있다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지금 집을 떠나 유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집 없이 떠도는 인생,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형편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다. 고난 때문인지, 배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6절의 ‘눈물의 골짜기’라는 표현 속에서 그의 상황 어떤하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금 주의 집에 돌아 가고픈 그리움으로 가.. BIble Note/시편Psalms 2011. 3. 11.
욥기가 말하는 지혜란 무엇인가? 욥기가 말하는 지혜란 무엇인가? The Patient Job-SEGHERS, Gerard 욥의 일생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석가들조차 욥에 대해 주석을 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욥기가 가진 난제 첫 번째는 사단이 하나님과 너무 친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인도 고난을 당하는가에 대한 하나님이 신정론의 문제, 세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비성에 있다. 복잡한 신학적인 논쟁들은 뒤로하고 우리가 욥기서의 난제를 통해 분명하게 배워야 할 부분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난해성(難解性)인 사단이 하나님과 너무 친하다는 문제(問題)는, 결국 사단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사단은 욥을 시기하고 그를 오해하게 만들.. BIble Note 2011. 3. 8.
중국어예배설고-물위를 걷는 주님 주님께서 물위를 걸어오신 모습이 이 모습이 아니다. 당시 바다는 폭풍이 불고있었다. 바로 이 모습이다. 폭풍 속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걸어오신 것이다. 물위를 걷는 주님 마가복음 6:45-52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다음 주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갈릴리 건너편 벳세다 마을을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런 후 주님은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인 사건은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먹을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기도하러 산으로 홀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를 건너 벳세다 마을로 가기 위해 배를 탔지만 갑자기 불어온 폭풍 때문에 건널 수.. BIble Note 2011. 3. 3.
병원설교/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하느냐? 본문: 요한복음 5:1-9 본문은 38년 된 병자를 고친 예수님의 치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5절) 이 말씀은 병세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뜻이며, 어떤 의미에서 태어날 때부터 병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십 년 있었다고 말하지만 정확히는 38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고난과 고통의 시기라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의 의미를 대입시키면 오래된 병, 낫기 힘든 병, 모든 노력을 다 해 보았지만 회복이 불가능한 병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주님은 찾아 가신다. 주님께서는 이 병자를 찾아 가셨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치유 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하고, 주님께서 치료하시는 방식이기도 하다. 주님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다... 설 교 2011. 2. 5.
[창세기 강해] 선악과 나무의 비밀 3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선악과 나무의 비밀 3 - 하나님을 아는 지식 1997년에 모 일간지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다시 중고등학교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가장 학고 싶은가?’라는 설문을 한 적이 있었다. 66.9%를 차지한 1등은 ‘공부’였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싫어한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되어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앎에 대한 욕구야말로 식욕의 욕구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욕구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욕망 덩어리 그 차제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 같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의 대부분은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우고 싶어합니다. 인간은 왜 배우고 싶어하는가? 앎이란 곧 신적 존재로의 회귀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하와를 유혹했던 것은 ‘지식’이었다.. 설 교 2011. 1. 30.
낯 익은 타인 낯 익는 타인 사람이 타락한 후 변한 것은 관계의 두절이다. 처음 사람은 서로를 흉보거나 의심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창2:25 서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더라. 왜? 서로 흉보거나 탓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감출 필요도 없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외모? 키? 출신? 가문? 창2:23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즉 서로 다른 존재 타인으로 보지 않았다. 나의 일부로 본 것이다. 그것도 최상급으로 철저히 이타적인 삶. 철저히 헌신적인 사랑. 그러나 타락 이후 아담의 답변 3:12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오 함께 있게하신 여자 그가 여자의 답변 13 뱀이 나를 나를 꾀므로 특징 내가 아닌 외부, 누군가의 탓으로 돌린 내 잘못이 아니다. 하.. BIble Note 2010. 12. 22.
전도서강해 5장 1-7절, 말씀을 경청하라 전도서 강해 전도서 5:1-7 말씀을 경청하라 마지막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덱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언어는 존재의 표지이며, 존재의 발현이다. 인간은 언어로 존재를 표현하지만, 또한 표현하는-표현되는 언어를 통해 규명된다. 한 마디 한 마디 내 뱉는 말들은 우연이나 실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의도된,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숨겨진 의도들이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전도자는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언어생활을 점검하도록 촉구한다. 1절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네 발’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발’은 태도를 말한다. 즉 부주의하거나 경거망동하지 말고 침착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해당된다. -말씀 .. BIble Note 2010. 11. 19.
창세기 39장, 하나님의 망각 창세기 39장, 하나님의 망각 우리는 지난주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이 비록 형들의 손에 팔려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케 되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원인 / 함께하다. 2.3(2번), 21, 23, / 5번 사용 결과 / 형통하다. 2, 3, 23, / 3번사용 사랑하는 BS여러분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형통케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영원한 진리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을 인도하고 있으며, 요셉의 꿈을 하나님께서 집적 만들어가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만 주시고 무책임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꿈을 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그 꿈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BIble Note 2010. 11. 7.
책> 인간의 죄에 고뇌하시는 하나님 / 류호준 제목: 인간의 죄에 고뇌하시는 하나님 저자: 류호준 출판사: 이레서원 가격: 8000원 나의 살아있는 멘토이신 류호준 교수님, 목사이면서 교수이다. 교수라면 흔히 탁상공론에 치우쳐 화석화된 교리에 집착하겠거니 생각하지만 류호준교수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떤면에서 현장에서 목회하시는 목회자들 보다 더 강렬하고 현장감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강당사역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적어도 류교수님의 하나님을 향햔 진지한 고민과 열정 때문으로 보인다.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산문의 세계'를 초월하여 창조적이고 함축적인 '시의 세계'로 뛰어든 설교자. 이 때문에 그가 말하는 하나님은 독자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는 모습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의 책들은 깊은 우물에서 끌어올린 맑고 시.. Book 2010. 11. 7.
저주와 복의 역설 / 창세기 4:8-15 저주와 복의 역설 창세기 4:8-15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특별히 악인들이 형통을 볼 때마다 세상에 정의는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악인들의 형통함을 보고 하나님께 답답하여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더욱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왜 하나님은 그들을 당장 벌하지 아니하시고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처음 우리가 하나님께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설레임으로 가득찼습니다. 그 분을 너무 사랑했기에 모든 것을 아낌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멋진 일과 주의 나라를 향한 원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곧.. BIble Note 2010. 11. 6.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