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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139

똥도 쓰려고 하면 없다. 판단의 기준은 자신 안에 있다. 컵 안에 절 반 정도의 물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컵은 보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많다? 아니면 적다? 사람들은 대개 이 둘 중 하나를 생각할 것이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자 그렇다면 많고 적음의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동일한 물의 양에 대해 저마다의 판단 기준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 당신이 심한 운동을 하고 왔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다음 그림의 컵을 보았다면 당신은 아마 컵에 물이 적다고 생각할 것이다. 갈증을 해소하기에 반컵의 물은 너무나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번에는 당신이 방금 다른 곳에서 시원한 주스를 실컷 마시고 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다음 그림처럼 컵에 담긴 물을 마시라고 한다고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11. 13.
고등부칼럼-영적 암초를 주의 하라! 영적 암초를 주의하라! 독일의 동요 가운데 하나님 로렐라이 언덕이 있다. 이곳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어린이 동요로도 유명한 이 전설은 이렇다. 독일 라인강 상부에 해당하는 로렐라이 언덕 주변은 많은 배가 오가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많은 배들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 당한다고 한다. 뱃사람들이 로렐라이 언덕을 지나면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처녀가 보기에도 황홀한 황금 빛 빛나는 옷을 입고 고인 머리를 빗으면서 노래를 부르며 뱃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했다고 한다. 뱃사공들은 정신을 잃고서 그 처녀를 바라보다 암초에 부딪혀 침몰 당하고 마는 것이다. 암초가 많았던 로렐라이 언덕 주변은 뱃사공들이 주의하지 않으면 암초에 부딪혀 침몰 당하기가 일쑤였기 때문에 이런 전설이 생긴 것이다. 우리 인..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11. 12.
도박에 빠지는 이유 스키너의 생쥐실험 스키너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만든 '스키너의 상자'를 만들어 그곳에 생쥐를 기른다. 스키너는 먹이를 강화요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쥐를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번 만 먹도록 순응시킨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버튼을 누리게 된다.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먹이가 떨어졌다. 1-3번 누를 때는 먹이가 나오도록 장치함.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는 보상심리를 가져다 준다. 이것이 곧 학습이다.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권태에 빠져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버튼을 누르면 당연히 먹이가 나온다.'는 공식이 생겨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권태라고 부른다. 생각이 정지되고 더이상 새로운 것을 기대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4번째 먹이를 먹기 위해 생쥐가..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11. 10.
고등부 칼럼-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한 나라의 흥망성죄를 결정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의 초심이다. 중국 주나라의 무왕은 은나라의 폭군인 주왕을 무너뜨리고 천자의 나라가 되어 다스리게 된다. 그러나 손자인 유왕은 죄를 용서해 주는 조건으로 받은 포사라는 미인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 포사를 위해 정비인 신후의 아들을 폐하고 포사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했다. 어느 날은 한 관리의 실수로 봉화에 불이 붙어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주나라에 운집한 모습을 본 포사는 허리를 움켜잡고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고 포사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이후로 계속 봉화에 불을 붙여 제후들을 놀려 주었다. 그러나 견융이라는 이민족이 쳐들어 올 때 봉화를 올렸지만 아무도 돕기 위해 오지 않았다. 주나라는 결국 B.C. 77..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11. 4.
고등부칼럼-사랑은 안단테다! 사랑은 안단테다! 사랑은 안단테다. 효율 중심의 현대사회는 느린 것을 참지 못하고, 천천히 기다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근대화의 첨병인 새마을 운동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은‘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시간이 금이다’라는 격언처럼 시간을 무작정 흘러 보내고 기다림의 시간을 허비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음식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선호하고, 인터넷도 0.5초를 기다리지 못해 마우스를 수도 없이 클릭하는 조급한 마음이 되었다. 교실에서도 아직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배려하기보다 잘하는 학생들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며, 행동이 느린 어르신들이 버스에 타면 빨리 출발하지 않으냐고 짜증내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이 모든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남을 배려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자신만을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10. 27.
지혜로운 인생 경영 (1) 멀리 보는 습관 지혜로운 인생 경영 (1) 멀리 보는 습관 몽골인들의 시력이 4.0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모겐족은 9.0이나 된다고 한다. 2.0만 되어도 최고의 시력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몽골인들은 수백미터 밖의 물건들도 정확하게 구분할 정도록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몽골인들의 시력을 연구하면서 단순하지만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멀리 보는 것'이다. 시력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멀리 봐야 한다는 것이다. 멀리보는 훈련이야말로 최고의 시력을 만드는 비법인 것이다. 그리고 보면 한국인들의 시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이유 중의 하나가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보급이다. 현대인들의 이기인 컴퓨터는 생활에 큰 보탬을 주고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해로운 면도 적지 않다...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10. 8.
고등부칼럼-나는 무엇일까요?(습관) 나는 무엇일까요? 나는 당신의 생애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내 억센 틀에 당신을 가두어 당신을 비참하게 영원한 포로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은 나쁜 **입니다. 나는 날마다 조금씩 당신을 좀먹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나의 쇠사슬에 당신은 완전히 얽어 매일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속으로 곪게 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내 이름은 나쁜 **입니다. 나는 당신을 쉽게 게으름뱅이로 만들 수 있고 병자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쉽게 싸움꾼으로 만들 수도 있고 도둑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내 이름은 나쁜 습관입니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아내의 사랑을 뺏을 수도 있고, 아들딸의 존경을 가로챌 수도 있습니다. 나는 어렵잖게 당신의 친구를 멀리 떠나가게도 할 수 있고, 당신의 손님의 발을 끊게도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9. 16.
고등부칼럼-영적 카나리나 영적 카나리나 카나리아는 되새과에 속하는 애완용새이다. 몸 길이는 2.5-13.5cm까지 자란다. 무게는 156-20g이며, 귀여운 모습과 아름다운 털과 고운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다. 옛날에는 탄광에 들어갈 때 항상 카나리아를 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메탄과 일산화탄소에 매우 민감하여 이들 가스에 노출이 되면 죽어 버린다. 카나리아가 노래할 때 광부들은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지만 노래를 멈추면 곧바로 탄광에서 탈출하여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카나리아는 광부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을 받았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어두움을 밝히는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영적 카나리가되어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향하여 심판과 멸망이 임..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9. 3.
고등부칼럼 /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길이요 영국 선교사로 일했던 스탠리존스 선교사님이 복음 전하다 밀림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길을 찾아도 도무지 찾지를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렵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밀림 속에서 일하는 원주민을 만나게 되었다. 선교사님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마을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알았다는 대답을 한 원주민은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저녁이 다되자 원주민은 자신을 따라오라면서 앞서 가기 시작했다. 길도 없는 험한 곳을 뚫고 가는 것이었다. 선교사님은 두렵기도 하고, 혹시 저 사람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지 않는지 걱정도 되었다. 다급한 마음에 ‘정말 마을로 가고 있습니까?’라고 다그쳐 물었다. 원주민은 선교사님을 보며 ‘나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길이 있는..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8. 25.
예화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스탠리 존스 목사는 인도 선교사입니다. 한 번은 처녀림이 울창한 어느 오지 밀림지역에서 선교를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감각을 되살려 길을 찾아 헤매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목은 말라 갈증이 나고, 배는 고파서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사나운 맹수가 달려들어 잡혀 먹힐 것 같은 불안과 공포,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선교사는 그곳을 향하여 좇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어느 원주민이 톱으로 나무를 베고 있기에 너무 기뻐서 뛰어가며 원주민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나는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나에게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좀 가르쳐 주시지 않겠소.” 나무를 베고 있는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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