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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칼럼-“창조적 언어를 구사하라”

샤마임 201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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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언어를 구사하라”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시장경제’‘자유시장’‘거시경제학’등의 용어는 그가 경제학 관련 종사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고혈압’‘부종’‘신경성실환’ 등의 단어는 그가 의사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말을 통해 규정되고 규명된다. 어떤 말을 하느냐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과 같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덱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라고 말했다. 거미가 거미줄을 자기 몸에서 꺼내어 줄을 치며 그 곳에 얹혀 살아가듯 사람은 스스로 끄집어 낸 언어를 통해 살아간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부정적인 사람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매사에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실패한 이유들을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기보다 실패할 때를 대비해 변명할 이유와 원망할 사람을 찾는데 바쁘다. 스스로 성찰하고 노력하기 보다는 실패의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이러한 사람은 결코 성장하지 못할뿐더러 타인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기 일쑤다.

민수기 14에서 열정탐꾼은 ‘우리는 결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신이 결국 들어갈 수 없다는 언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에 비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언급했다. 그렇다! 작은 차이일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언어를 구사했지만, 열 명은 불신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고등부 친구들이여 창조적 언어를 사용하라! 우리는 입술이 열매를 먹고 사는 존재들이다. 나는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하라. 나의 욕망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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