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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산책으로 산 책

by 샤마임 201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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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으로 산 책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내. 저녁을 먹고 산책을 제안했다. 

"그래!"

아내는 두 말 없이 동의한다. 속이 보인 걸까? 아내는 어떤 마음으로 그리 쉽게 동의를 한 걸까? 마음은 뒤숭숭, 한편으로 설레임.

산책! 그렇다 서점으로 산책할 것이다.



"한 시간만 있다 오자."

그렇게 우린 그렇게 무려 584m나 떨어진 양산 신도시에 자리한 세종서관으로 향했다. 거리는 겨울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스멀스멀 옷 사이의 빈틈을 파고 든다. 들국화 노래방 뒷길을 타고 욱이생삼겹살을 지나 양산함흥냉면집 앞 횡단보도에 섰다. 아내는 손을 이끌며 한 블록 더 위로 올라가자고 한다. 그곳에서 우편으로 100m만 더 올라가면 신호 없는 횡단보도가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화려한 조명 아래 사람들이 오간다. 겨울은 말도 없이 불청객이 되어 찾아오건가 사람들은 개념치 않고 밤거리를 즐긴다. 해가 저물여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는 우리에게 밤거리는 언제나 낯설다. 익지 않은 풍경은 긴장을 유발한다. 분주히 다니는 발걸음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 걷는 인간. 아니 직립 보행하는 인간을 일컫는다. 그렇다. 걸을 때 인간은 인간이 된다. 걷기는 이동이며 변화이자 생존의 방식이다. 걷지 못하는 인간은 죽은 것이나 일반이다. 거리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 있기에 걷고, 걷고 있기에 살아가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차가운 밤바람을 뚫고 세종서관에 들어섰다.


우리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길을 갔다. 나는 먼저 종교란으로 가서 마음을 끄는 책이 있나 보았고, 아내는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서점을 순례한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슬며서 보며 지나쳤던 한 권의 책을 오늘은 꺼내 들었다. <이스라엘 왕 이야기>(포이에마>다. 얼마 전에 출간된 샘솟는기쁨의 <성경 속 왕조실록>와 같이 열왕기를 다룬 책이다. 내용을 살펴보니 왕조실록이 좀더 문학서에 가깝다면 이스라엘 왕은 성경 강해에 가까운 책이다. 그렇지만 서로 적지 않게 닮아 있다. 배경락 목사는 글이 짧으면서 단호하다. 신우인 목사는 실존적 해석이 돋보인다. 두 권 모두 좋다. 두 권을 모두 사서 비교하며 읽으면 재미있겠다 싶지만, 이 만원이라는 상품권이 생각이 나 참았다. 

자리를 옮겼다. 신화와 역사 관련 책들이 있는 곳이다.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곳이다. 앞과 왼쪽으론 문학서적이 자리한다. 왼쪽 뒤로는 자기계발서와 글쓰기 관련 책들이 있다. 세종서관에 들어서면 종교란이 아닌 이상 10m 안에 항상 머문다.


오른쪽으로 두 발자국을 옮겼다. 사진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DSLR를 시작한지 십여 년이 된 듯하다.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노력했다면 프로가 되어있을 터이지만 아직도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사진실력... 그래서 자꾸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진 잘 찍는 법'이란 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읽으면 '모두 아는 '법'들'만 모아 두었다. 셧터 속도도 알고, 화이트 발란스도 익숙하고, 구도도 낯설지 않다. 다만 나에게 '고가의 렌즈가 없을 뿐이다'라고 핑계한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사진 책들을 꺼내다 말다를 반복한다.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평론가인 손택의 책이다. 비슷한 종류의 책이 몇 권 보였지만 손택의 책에서 멈추었다. 사진 찍는 법이 아니다. 사진이 갖는 철학에 대한 담론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전유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증명해 준다."

"그러니까 여행이 고작 사진을 모으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삼십 년도 더 지난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선배들은 늘 말했다. 

"남는 건 사진 뿐이다."

사진을 많이 찍으라는 것이다. 7080세대라면 많이 들었을 조언이 아닌가. 80년대말, 자동카메라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이전의 사진은 '어려웠다.' 조리개니 뭐니 하면서 복잡하고 난해했다. 그러나 자동 카메라는 필름만 사서 넣고 셧터만 누르면 끝이다. 물론 구도가 필요하겠지. 그러나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사진은 남기기 위해서 찍는 것이지 '작품'을 위한 것이 아니다. 

"멈춘다,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수전 손택을 정확히 보았고, 글로 남겼다. 그러고보니 글도 사진처럼 남기는 것이 아니다. 사진이 풍경을 남긴다면, 글은 문자로된 사유를 남긴다. 

"사진을 찍는다는것 자체가 사건인데..."



서점을 나왔다. 가을은 여전히 거리에 머문다.

사람들은 여전히 밤거리를 분주히 거닌다. 거리 구석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 가게 안에 둘러앉아 회포를 푸는 사람, 손에 뭔가를 잡고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상관없는 듯 지나쳐 간다. 

"원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 활동이다."

손텍의 예리한 문장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무심한듯 지나쳐 살아간다. 그러나 사진은 개입하지 않는 활동이 아니다. 사진은 사건이 되고, 방관자에서 관계맺는 사람이 될 때 찍히는 공포를 벗어나게 한다. 


딸이 사준 옷이라며 자랑하는 아내, 아무렇게나 나에게 얼굴을 내밀고 자세를 취하는 이 여인은 나와 상관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깊이. 사진은 사건의 결과이자, 더 많은 것들을 전제하고 있다.

사진에 관하여
국내도서
저자 : 수전 손택(Susan Sontag) / 이재원역
출판 : 이후 200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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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국내도서
저자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 김정아역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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