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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테오도시우스 칙령

by 하늘땅소망 2017. 11. 14.

테오도시우스 칙령

380년 2월 27일

 

테오도시우스 칙령 기독교를 정식적으로 국교화함

데살로니가에서 선포되었다 하여 데살로니가 칙령으로 부르기도 한다. 

 

313 밀라노 칙령

콘스탄틴에 기독교에 자유를 선언함

 

380년 테오도시우스 칙령

테오도시우스 1세(Flavius Theodosius, 347-395)에 의한 칙령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 또는 테오도시우스 대제로 불린다. 그라티아누스 황제로부터 동로마 제국을 이어받아 황제가 된다. 서로마의 발렌타니누스 2세가 죽자 서로마까지 함께 지배한 마지막 통합? 황제이다. 그가 죽자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완전히 분리된다. 그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국교로 만들었다. 기독교 부흥 정책은 기독교 계열의 역사가들로부터 대제라는 칭호를 받게 했다. 

 

테오도시우스는 대대로 기독교 집안이다. 아버지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능한 로마 제국의 장군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복무했고, 로마군에 속해 있다 374년에는 로마군 지휘관이 된다. 그러나 그해 아버지가 궁정 내 음모로 인해 처형 당한다. 그는 공직에서 은퇴해 히스파니아 가문의 영지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여인을 만나 맏아들 아르카디우스를 낳는다. 

 

378년 8월 9일, 동로마 제국의 발렌스가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고트족에게 참패를 당하고 전사한다. 황제 그라티아누스가 은거 중이던 테오도시우스를 호출한다. 그는 적들과 상대하여 대승을 거둔다. 결국 그라티아누스는 379년 1월 19일 그를 공동 황제로 선포한다. 그는 마케도니아 등지의 제국 동부를 맡았다. 그러나 마그누스 막시무스에 의해 그라티아누스가 죽는다. 테오도시우스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막시무스는 서로마 황제로 인정한다. 388년 발렌티니아누스와 함께 막시무스를 제거한다. 392년 발렌티아누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대신 유게니우스가 황제가 되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에서 승리한 테오도시우스는 유게니우스를 처형한다. 이로서 다시 로마는 하나가 된다. 이로 인해 테오도시우스는 비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금지시킨다. 원정으로 인해 병이 들고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 한다. 395년 1월 17일 결국 4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테오도시우스의 장례를 치른다.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굴하지 않은 용감한 주교였다. 그로 인해 테오도시우스 1세는 더욱 신앙의 인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기독교와의 관계

 

당시 물론 그 이후에도, 로마내 교회는 니케아 신경을 신봉하는 파와 아리우스 파가 갈라져 심각하게 싸웠다. 테오도시우스는 병을 앓다 낫고 380년 세례를 받는다. 아마 암브로시우스가 세례를 주었을 것이다. 암브로시우스는 니케아 신경을 따랐다. 병에서 회복되는 그는 380년 모든 시민들은 니케아 신경을 따라야 한다는 칙령을 반포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테오도시우스 칙령인 것이다. 이때 모든 교회가 하나이어야 한다는 '가톨릭'이란 단어가 만들어진다. 가톨릭은 보편적(하나)이란 뜻이다. 

 

다음이 열린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한다. 아리우스 파는 집회가 금지되고 니케아를 신봉하는 교회로 개종해야 했다. 385년에는 동물 제사를 금지시킨다. 로마 내에서 비기독교 의식을 금지시킨다. 즉 이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2세(Flavius Theodosius, 401~ 450)

 

전임 황제 아르카디우스와 황후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사이에  맏아들이다. 408년 아버지 아르카디우스가 죽자 7살의 나이로 황제가 된다. 당시 민정 총독인 안테미우스가 초기에 섭정을 맡는다. 그러나 그의 섭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414년 죽게 된다. 섭정의 자리는 테오도시우스의 2살 많은 풀케리아기 맡는다. 

 

421년 테오도시우스는 아테넬 출신이며 헬레니즘에 빠진 아일리아 에우도키아와 결혼한다. 다음 해 리키니아 에우독시아라는 이름의 딸을 낳는다. 테오도시우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책을 필사하는 재미를 즐겼다. 450년 사냥을 하다 낙마사고로 숨을 거둔다. 

 

학문적 성향이 강하고 책을 좋아하는 그는 유도키아와 함께 525년 콘스탄티노폴리스 대학교를 설립한다. 이 대학에서는 학자들이 모여 콘스탄티누스 1세 이후 편찬된 로마법을 집대성한다. 9년 정도 걸려 438년 2월 15일 <테오도시우스 법전>(Codex Theodosianus)을 공포한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주교였던 황금의 입이란 이름을 가진 '요한 크리스토무스(크리스톰)'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귀족들과 왕의 사치와 부도덕을 겁내지  않고 비판했던 탓에 크리스토무스는 황제에게 미움을 받아 유배을 당하곤 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

392년 모든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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