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기 2012년 2월 18일 화장실에서 책을 읽으면 죄인가요?

샤마임 2013. 2. 18.
반응형

독서일기 2013년 2월 18일


화장실에서 책을 읽으면 죄인가요?


잠이 오지 않는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갔다. 한 시간 가까이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괴로움만 더한다. 불혹은 ‘부록’이라 여기며 제2의 삶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짐도 뜬 눈을 감기기에 역부족이다. 새벽 두 시, 결국 머리맡에 두었던 김기현 목사의 <자살은 죄인가요?>를 들고 화장실로 도피한다. 모두가 잠든 밤, 18평의 좁은 아파트에서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자 독서중독자의 안식처는 화장실이다. 잠들지 않는 밤이 때론 행복하다.


책이 작다. 한 손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포켓용만큼이나 작다. 내지도 거친 종이를 사용했다. 127페이지, 2010년 7월 30일에 발행된 초판 2쇄본이다. 그리 잘 팔리는 책은 아닌 듯하다. 얼마 전에 구입한 고(故)박완서의 작가의 <호미>라는 책은 초판 21쇄본이었다. 5개월 만에 21쇄라는 경이로운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에 비하니 초라해 보인다. 책이 작아서 판매부수도 적은 것일까? 아니면 내용이 부실한 것일까? 약간의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드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그리고 108분 만에 다 읽었다. 한 번도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중간 중간 움찔거리며 당황했고, 때론 양심의 각성으로 인해 수치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뭘 했나 싶은 공허한 마음에 우울하기도 했다. 개신교 안에 자살률이 높다는 그 말(32), 개신교회가 자살에 대해 무책임하고 미성숙하다는 그 말(34), 자살 직전에 믿음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그 말(39), 성경에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그 말, 자살이 구성원의 삶을 돌보는데 실패해서 일어난 결과라는 그 말(105), 그렇게 많은 말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사경에 불을 밝힌 화장실 안에서 들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침울하고 음울(陰鬱)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살은 죄인가? 개신교 안에서 터부시된 그러나 결코 피할 수 없는 공개된 비밀이 된 질문이다. 작년에 읽었던 <가룟 유다의 딜레마>를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개신교 연예인들이 자살할 때마다 교회는 딜레마에 빠져 난감해야 했다. 자살을 막기 위해서 목사들은 열심히 ‘자살은 죄입니다’라고 강조 또 강조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산 사람은 죽지 말아야 한다는 교육적 필요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도 목사인 나조차도 그런 설교를 들으면 금기된 것을 깨고 싶은 자살충동을 느꼈다. 나또한 수없이 자살시도와 실패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암울했던 유년시절의 악몽과 신학을 하면서 경제인 결핍으로 인해 차라리 죽고 싶은 충동도 수없이 느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생각 보다는 자살할 만큼의 독한 마음으로 살자는 결심이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했었다. 그리고 사역자라는 이유로 교회의 돌봄에서 배제되어 고립과 고독 속에서 살아야하는 교회의 현실에 분노하며 버텨냈다.


자살은 죄입니다. 공동체 안의 지체를 돌보지 못한 교회의 죄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죄가 아닙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새벽에 책을 읽는 것 또한 죄가 아닙니다. 가족 공동체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같은 것이다. 화장실 독서는 이렇게 고상(高尙)한 것임을 누가 아리요!


밑줄긋기

“그들에게는 내면에서 들리는 절망의 목소리와 밖의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의 음성이 절실합니다.”(54)

“교만은 반드시 관계를 전제합니다. 단절은 교만의 필연적 결과입니다.”(57)

“인간은 스스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는 관계에 의해 생존하게 되었고, 관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62)

“까닭 없는 고통은 있을지언정, 의미 없는 고통은 없습니다.”(89)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