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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큰일을 기대하라

샤마임 201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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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큰 일을 기대하라

-38년된 병자의 치유사건

   정현욱목사

 

신평로교회 고등부 설교

 

서론

 

중국 중산대학의 유천교수는 활동공간에 따라 변하는 원숭이 시력을 연구했습니다. 원숭이를 3조로 나우어 A조는 야생동물원에, B조는 교실크기의 공간에, C조는 좁은 우리 안에 두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시력검사를 해보니 재미있는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A조는 시력의 변화가 없었고, B조는 약간의 근시가 C조는 심각한 근시현상을 일으킨 것입니다. 활동 범위에 따라 원숭이의 시력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 것이죠. 이러한 시력차이는 들에서 양을 키우는 몽골인의 시력이 5.0까지 된다고 하니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 사람의 시각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는 곳에 따라 인간은 적응하게 되어 퇴행하기도 하고 나아지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탁월한 적응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몸이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퇴행입니다. 원숭이 실험에서 드러났듯이 바로 앞의 것만을 보면 멀리보는 시력을 상실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의 이야기는 38년된 병자를 고친 기적이야기이다.

 

주님은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명절이 되면 고향에 가지만 유대인들은 명절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종교의식이기 때문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여러 명절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 날만은 꼭 예루살렘에 올라오라고 명령하신 날이있다. 보통 이스라엘 3대절기라고 부른다. 유월절, 장막절(초막절) 오순절이다. 이 3대 절기는 모두가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요한복음 5장의 명절은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유월절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데스다라는 연못으로 갔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연못이다. 이곳에는 일년에 몇 차례씩 천사들이 내려와 물을 흔들고 간다고 한다. 바로 그 때 가장 처음 연못에 몸을 담그는 자는 무슨 병이든 치유함을 받는다고 한다. 3절에 보면 치유함을 받기 위해 여러 종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와서 베데스다 못 주위에서 누워서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3절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그 곳을 상상해 봅시다. 수많은 병자들이 그곳에 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는 여러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아파서 신음하는 소리, 자기 자리를 차지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소리, 냄새 난다고 멀리 나가라고 하는 소리 등등...... 또한 이들은 물이 동하기만 기다리면서 자신이 가장 빨리 들어가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연못에 물결이 치는 것에 주목하고 있을 것입니다.

 

딱 한사람만 치료됩니다. 2등은 안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로지 1등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내신, 중간고사, 수능.. 이 모든 것들은 다 점수를 통해 결정됩니다.

다른 사람을 제치고 올라서야 입학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조명을 받을 수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주님께서 찾아간 사람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서있습니다.

그는 38년이나 그곳에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38년 동안 단 한번도 물속에 먼저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실패했고 치유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7절을 보면 그는 분명 다리가 불구인 것이 분명합니다. 더더욱 그는 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반신불고의 몸인 것 같습니다.

 

그의 불쌍한 한마디는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는 수고하고 노력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빠르지 못합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결코 다른 사람을 앞서지 못했습니다.

그는 실패자요, 낙오자요, 불쌍한 병자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고, 동정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벼룩의 뜀뛰기

 

‘벼룩 여왕’으로 유명한 미국의 루이저 로스차일드 박사는 어느 날 벼룩의 점프력을 실험했다. 벼룩을 탁자에 놓고 그 옆을 손바닥으로 한 번 치자 벼룩이 갑자기 뛰어올랐다. 그런데 그 높이가 약 30 cm로 벼룩 자신의 키보다 몇 백 배가 넘었다. 벼룩에게는 일종의 단백질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높이의 점프가 가능했다.

 

그는 한 무리의 벼룩을 실험용 대형 용기에 집어넣고, 투명한 유리로 덮었다. 그러자 뛰어오르는 습성이 있는 벼룩들이 유리 덮개에 부딪혀 ‘탁탁’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얼마 뒤 소리가 잦아들자 그는 유리 덮개를 열었다. 벼룩들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모두 뛰는 높이가 유리 덮개 근처까지로 일정했다. 충분히 용기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데도 벼룩들은 덮개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으려 한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한 가지 실험을 추가하기로 마음먹었다.

 

벼룩이 들어 있는 용기 밑에 알코올램프를 두고 불을 붙였다.

 

5분도 안 되어서 용기는 뜨거워졌다. 모든 벼룩들이 자연스레 생존 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벼룩들은 머리가 유리 덮개에 부딪히든 말든 최대한 높이 뛰어 모두 용기에서 빠져나왔다.

 

 

인간의 습성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고 습관적으로 그 안에 자신을 가둔다.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적응한 채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닌가.

 

용기 밖으로 뛰어나온 벼룩처럼 우리에게도 발밑의 불이 필요하다.

 

-『행복한 동행』중에서 -

 

사람은 어쩌면 몇 번의 실패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합리화 시키고 실패를 일부러 조장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불쌍한 38년된 병자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주님은 그 병자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Get up! Pick up your mat and walk

일어나라! 그리고 너의 매트를 들고 걸어가라.

 

NIV 성경은 그 다음의 접속사를 At once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뜻은 곧바로, 즉시로, 동시에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마자 병자의 병은 곧바로 나았고, 그 즉시 일어나 걸었습니다.

 

38년 동 안 엄청난 수고와 노력을 했지만 아무 결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사람에게게 주님의 단 한마디의 말씀이 그를 치유한 것입니다. 일어나 걸으라. 단한마디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잘 못하고, 어리석고,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주님은 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쉽고 간단하게 해결해 버립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도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단 한마디만 하시면 모든 것을 끝납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주님을 너무 무시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은 너무 작게 본다는 데 있습니다.

 

[이사야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9 :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낙망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실망합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어제의 실패에 짓눌려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우리에게 벼룩을 다시 하늘로 뛰어 오르게 했던 불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한계에 갇혀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 불이 필요합니다.

불이 뭘까요? 엄청난 자기 통제력, 아니면 열심, 맞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을 보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심으로 세상 어떤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선교의 큰 획을 그었던 윌리엄 캐리의 말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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