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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 VS 성경

샤마임 2011.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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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와 성경


중국 역사상 가장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하나의 통일 국가를 이룬 사람은 진나라의 시황제인 진시황이다. 그는 통일을 이룩하자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부분들을 개혁했다. 특히 그의 개혁 가운데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글자의 간소화와  도량형의 통일이었다. 이것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제후들이 다스리는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의 강력한 나라를 만들기 원했던 진시황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 그러는 가운데 반대파를 숙청했던 사건이 바로 분서갱유 사건이다. 분서 사건과 갱유 사건을 합하여 분서갱유 사건으로 불린다. 

 

어느 날, 시황제가 베푼 잔치에서  박사 순우월은 다시 봉건제도를 실시해야 왕실의 안녕을 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순우월의 의견에 당시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유가가 대답했다. 그는 순자의 제자로 법가체계 사상을 확립하여 모든 국가는 법으로 다스려져야 하며, 모든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봉건시대에는 제후들 간에 싸움이 끊이지 않아 천하가 어지러웠습니다. 그러나 지에 통일되어 안정을 찾았으며, 나라의 법도 모두 한 곳에서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옛날 책으로 공부한 선비들은 옛것만이 옳은 것이라 여겨 새로운 법이나 정책에 대해 비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기회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시고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의학, 복서(점치는 책), 종수(농업관련책)에 관한 책과 진나라 역사서 외네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없애 버리십시오"

 

이렇게하여 결국 진시황의 명령에 따라 전국의 거의 모든 책이 불태워지게 된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분서 사건이라고 말한다. 당시에 책들은 모두 종이가 아닌 대나무로 만들어진 죽가이었기 때문에 책이 귀하고 많은 양이 복사되지 못한 체 있었다. 그 후 아방궁이 완성되자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 술법을 닦는 방사들을 불러들여 일을 맡겼다. 노생과 후생이라는 방사를 특히  신임했는데 이들이 진시황을 속여 많은 재물을 빼돌리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이것을 알고 선비들이 진시황을 비방하기 시작했다. 화가 극에 달한 황제는 비방하는 선비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심문하여 460명이나 되는 선비들을 산 채에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이것을 일컬어 갱유 사건이라고 부른다.

 

 

분서갱유 사건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

분서 사건의 요지는 옛것으로 새로운 것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책은 옛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야 책은 흔하고 흔한 것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책은 가장 귀한 것 중의 귀한 것이었으며, 귀족이나 선비가 아닌 이상 책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록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가장 귀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만을 골라 책으로 만든 것이다. 책은 하나의 정신이요, 본보기요,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었던 것이다. 책이 없다는 것은 곧 정신이 없다는 것이며, 정신이 없다는 것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며, 기억이 없다는 것은 곧 현재를 판단할 기준이나 근거가 없다는 말이 된다.

 

책은 옛 사건이나 정신을 기록하여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 때문에 보수적이며, 전통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나 새로운 신천지를 여는 사람들은 책을 싫어하고 옛것을 버려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다. 사회주의의 혁명성은 바로 이러한 진보적 성향 때문이며, 필연적으로 옛 것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회주의 주장하는 세상은 옛 세상의 단절에서 시작하며, 그럴 때 가능한 것이다. '피'는 옛 세상과의 단절을 말한다. 부르주아 사상가들은 옛 전통을 잇게 하는 책을 통해 먹고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회주의가 발흥할 때 교수와 정치인, 부자들을 잡아 죽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책을 버리고 혁명적 정신을 소유하려 한다.


성령파는 반드시 성경을 버린다. 텍스트에 얽매이지 말고 영에 민감하게 반응하라고 말한다. 종교개혁 당시 뮌쯔를 중심으로 한 천년운동주의자들은 성령의 직통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온 천지를 피로 물들이고 새로운 세상을 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기존의 종교는 전통과 계승을 주장하기 때문에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오래된 책을 근거로 그들을 정죄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는 책의 사람이요, 기존의 질서를 중요시 한 사람이다.

 

초대교회의 박해 중 마지막 박해요 가장 극심했던 박해 중의 하나였던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박해는 성경을 없애는 것이었다. 네게로 분할하여 로마를 통지하던 시대였는데, 디오클레티안 황제 아래에서 일하던 갈레리우스라는 황제가 있었다. 갈레리우스 황제는 유난히도 기독교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병영에서 기독교 인들이 징집을 거부하거나 병역을 이탈하는 발생 하자 그들을 처형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이 일은 디오클레티안 황제에게까지 보고가 되며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칙령을 내려 기독교 신자들을 군부에서 내쫓아 내려하였다.

 

그러나 군부 안에 너무 많은 기독교 신자가 있는 곳에서는 내쫓는 것보다 신앙을 부인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결국 이 사건은 점점 커져 제국의 교회로까지 번지게 된다. 문제는 교회 안의 성경들을 불태우는 일로 번져간다. 만약 성경을 숨기다가 발각되면 즉각 처형하였다. 결국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내어놓게 되고 수많은 성경들이 불태워진다. 성경을 없애면 기독교가 없어질 것이라고 믿은 순진함 때문에 더욱 박해는 심해졌다.

 

성경은 기독교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주는 존재였다. 성경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다음 세대에 복음을 전해 줄 수 없게 된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라고까지 말했다. 오직 기록된 말씀을 통해 기독교는 그 정체성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책의 종교란 의미는 지성적 종교란 의미이기도 하다. 단순히 성령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고 역사와 전통을 버리는 것은 잘못된 종교로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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