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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도 쓰려고 하면 없다.

샤마임 201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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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기준은 자신 안에 있다. 

컵 안에 절 반 정도의 물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컵은 보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많다? 아니면 적다? 사람들은 대개 이 둘 중 하나를 생각할 것이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자 그렇다면 많고 적음의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동일한 물의 양에 대해 저마다의 판단 기준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 당신이 심한 운동을 하고 왔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다음 그림의 컵을 보았다면 당신은 아마 컵에 물이 적다고 생각할 것이다. 갈증을 해소하기에 반컵의 물은 너무나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번에는 당신이 방금 다른 곳에서 시원한 주스를 실컷 마시고 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다음 그림처럼 컵에 담긴 물을 마시라고 한다고 당신은 아마 '많다'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많은 양의 쥬스를 마셨기 때문에 더 이상 물을 마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한 가지의 사실을 결론 지을 수 있다. 많고 적음의 판단 기준은 물의 양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의한 것이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명제는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한 말이다. 내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나와 엮어진 환경이 나의 가치들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예를 다시 들어보자. 길 위에 돌이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누가 저 큰 돌을 길에 두었지?'하며 불평을 할 것이다. 장애물로서의 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돌을 그곳에 둔 사람은 그 나라의 왕이었다. 왕은 그돌을 보면서 '누가 저 돌을 치울까?'라고 생각하며 선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왕에게 있어서 돌은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그러니 그 돌은 중요하다.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우리는 판단하고 생각하고 가치를 결정한다.

똥도 약에 쓰려고 하면 없다는 속담이 있다. 똥을 더러운 똥으로 생각할 때는 많은 것처럼 생각되지만, 똥을 약으로 쓰려고 찾으면 생각처럼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동일한 양의 똥인에도 한 사람에게는 많아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 적다고 생각된다. 똥이 더러운지 약인지는 그 사람의 상황 속에서 결정된다.

말씀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어떤가? 일부의 사람들은 성경을 수면제로 사용한다고 우스갯 소리로 말한다. 성경은 지루하고 답답하고 재미도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 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꿀처럼 달게 느껴진다. 성경이 재미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 안에 영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판단은 외부적인 사실보다 내 안에서 이미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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