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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나의 독서 흔적들...

샤마임 201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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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가 읽은 평생의 독서량은 얼마일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계산하면 약 15,000권 정도 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건대, 대부분의 책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읽은 것들이다. 10여년 동안 읽은 책의 양이 지금까지의 독서량의 약 85%정도 차지한다. 그만큼 젊었을 때는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 신학을 시작하면서 읽기 시작한 책은, 댐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엄청난 양과 속도로 읽어 나갔다.

하루에 적어도 한 권은 읽었고, 많게는 5권까지 읽어 나갔다. 하루에 어떻게 5권을 읽을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작은 소책자를와 개론서와 간증집 중심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충 읽는 것이다. 세번째는 줄거리를 읽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정독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도 독서에 넣어야 하는냐는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건대, 그러한 대충읽기 또한 독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독과 집중 그리고 자세히 읽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대충 읽으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과 생각의 시간이 없음으로 정확한 내용을 잘 살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유용한 이유는 다독은 많은 정보을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으며, 속도감을 가지고 읽기 때문에 전체적인 부분을 살피는데 탁월하다는 점이다. 비슷한 주장과 색다른 주장을 천연색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초기의 독서는 주로 역사, 신학, 철학 중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딱딱하고 사실 위주의 책들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 책들을 읽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당시는 그것만 눈으로 들어왔다. 당시에 읽은 책들은 미국사, 한국사, 유럽사, 프랑스사, 일본사 등이었고, 조직신학, 역사철학, 철학서 등이다.

1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고전 소설과 문학서적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소설류는 픽션이라는 가공된 허위 사실이라는 이상한 싫음 때문에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은 인간 안의 내면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탁월한 것들이다. 근래에 새로 읽은 알포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별 등은 많은 시사점을 주며, 어린왕자는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뻔히 아는 내용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그 책들을 접하지 못하게 했지만 요즘 문학서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있다.

인물중심으로 읽은 것은 로이드 존스의 로마서, 에베소서 등의 책이다. 스펄전 목사의 책도 수십권을 읽었으며, 조나난 에드워즈, 그리고  자끄엘륄도 많은 도전을 준 지성인들이다.  신학의 색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부르지만의 책들은 정말 귀한 책이다. 한국인에서는 김서택, 김남준, 전병욱 목사의 책들을 많이 읽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읽어야할 책이 너무도 많다. 이제 고전문학을 중심으로 책을 읽되 읽어야할 사람과 도서, 그리고 방향을 정해 놓고 읽을 생각이다. 당분간 고전 문학을 집중적으로 읽고 싶고, 교회사와 역사를 폭넓게 읽어야 겠다. 철학서적은 중요한 인물의 개론서와 주요서적을 정하여 읽을 생각이다. 참 많이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와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은 아무래도, [정의란 무엇인가]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다. 두 책은 서로 많은 부분에거 겹치고 상호 보완하고 있지만 많이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고전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들게했던 나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현미경 같은 느낌이었다. 이어령씨의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많은 도전을 준다. 글도 맛깔스럽고 깊이있는 내용이다. 미국의 필립얀시나 유진피터슨도 정말 글이 신선하고 좋다. 일반 평신도들에게 권하기 좋은 책은 아무래도 맥스 루카도목사의 경건 서적들일 것이다. 루카도 목사님의 글은 글이 풍성하면서도 정말 은혜롭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에세이 풍의 글이라면 루카도 목사님의 책들은 동화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스며들게 한다.

눈물 나도록 서정적인 필체로 들려주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집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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