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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2. 1:6-10 다른 복음은 없다.

by 하늘땅소망 2019.05.15

2. 1:6-10 다른 복음은 없다.

 

[본문 읽기]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주해와 묵상]

 

종교개혁을 일으킨 장본인인 마르틴 루터는 갈라디아서 주석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이 갈라디아서를 해석하는 데 착수하였다. 이는 내가 그대들이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들을 가르치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은 이제 여러분들에게 철저하게 알려져 있다. 사단이 우리로부터 믿음에 관한 순수한 가르침을 앗아 가버리고 교회에 다시 한번 행위의 가르침과 사람들의 유전을 들여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이 가르침을 잃어버린다면, 진리와 생명과 구원에 관한 지식 전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종교개혁 시기는 인간의 공로를 부정하고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칭의에 몰입해 있을 때입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6-10절까지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 됨과 인사말을 마친 다음 곧바로 경고를 시작합니다. 경고의 핵심은 ‘다른 복음’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왜 갑자기 모든 이야기를 버려두고 성난 사람처럼 갈라디아 교회에 ‘경고’하는 것일까요?

 

다른 복음(ἕτερον εὐαγγέλιον)

 

바울은 논쟁을 시작하면서 중요한 단어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다른 복음’(1:6,7,9)입니다. 바울의 주장은 다툼의 여지가 없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다른 복음’은 존재하지 않기에 곧바로 ‘다른 복음은 없다’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엇이며, 다른 복음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번역된 성경에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성경 원문에서는 ‘다른’이란 단어는 같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먼저 6절에서 사용된 ‘다른 복음’은 ‘헤테론 유앙겔리온(ἕτερον εὐαγγέλιον)’입니다. 즉 ‘헤테론’의 원형 ‘헤테로스(ἕτερος)’는 영어 단어를 빌려와 설명하면 ‘another’, ‘second’, ‘other’, ‘different’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이기는 하지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7절에서 사용된 ‘다른’은 ‘알로(ἄλλο)’입니다. 알로는 마태복음 2:12과 4:21에 사용된 용례에 의하면 동일한 종류이지만 약간의 차이를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글라스 무는 두 단어의 어원이 동일하다는 던(Dunn)과 튜너(Turner)의 주장에 동의하며 ‘두 단어를 어원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비슷한 단어를 교차하여 사용했다면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대조하기 위해 의도한 것으로 봅니다. 제가 보기에도 두 단어는 ‘바울이 전한 복음’ 외에 거짓 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다른 복음’ 있다는 것을 강하게 부정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너희는 그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것이다. 다른 복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전한 복음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복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그렇다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바울 신학 전체를 아울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을 대표하여 드려진 속죄 제물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을 죄를 사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는다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바울이 로마서 주장한 복음입니다. 본절인 1:6-10까지의 내용만으로 정리해 봅시다.

 

먼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십니다.(6절) 그리스도의 은혜는 후반부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꾸어 사용됩니다. 10절에 의하면 그 복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앞선 1-5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 됨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1절)로 말미암았다고 주장합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의 뜻이기에 자신의 사도적 직분은 혈통이나 전통,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사도직을 계속하여 강조하고 변증 하는 이유는 사도직 자체가 아니라 사도적 권위에 의해 전해지는 ‘복음’ 때문입니다.

 

1) 다른 복음을 쫓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6절)

 

6절을 유의하여 읽어 봅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내가 이상하게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 이상함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죄인들을 아들로 삼으신 또는 구원하신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무효화하며,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을 부정합니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어떤 것도 제공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무능하고,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되어야 할 것에 불과합니다. 신선하고 영양이 가득한 햇밥을 버리고, 유통기한이 지나 쓰레기통에 버려진 곰팡이 슨 밥을 다시 주워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갈라디 아교회 교인들은 율법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기에 이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입니다. 비합리적이며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습니다.(8,9절)

 

다른 복음을 전하면, 또는 받으면 저주는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엔 크리스토), 그리스도의 은혜로 불렀습니다. 은혜(χάρις)는 선물(χάρις)입니다. 은혜의 헬라어 ‘카리스(χάρις)’는 은혜, 선물, 은사 등으로 번역되며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어떤 대가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바클레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은혜(ἐν χάριτι Χριστοῦ)’가 진리에 대한 인간적 진보와는 아무 관계없이 펼쳐지는 하나님의 주도권이라고 말합니다. 길지만 전후 문맥을 위해 인용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이 그리스도-사건을 꼭 붙들지 못하고 흔들거렸을 때, 그들은 바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떠난 것이다.(1:6) 이 ‘부르심’은 하나님이 발하신다.(참조, 1:15, 5:8, 살전 5:24, 고전 1:9, 7:17-24). 실제로 ‘부르심(καλέω, κλησις)’은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 이 부르심에 따라 능력, 지위, 도덕적 가치와 상관없이 새로운 실재가 창조된다. 비상응적인 부르심의 역동성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이 경우를 보면 증명된다. 그들은 ‘부르심’ 받기 전에 하나님을 몰랐고,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했다.(4:8-9) 이방인으로서 그들은 율법과 상관없는 ‘죄인’이었다.(2:15) 그들은 이제 하나님을 알았게 되었으나. 이는 자기들이 인식론적 능력에 근거하지 않는다.”

 

바클레이는 구원과 하나님의 백성 됨, 그리고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카리스, χάρις)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을 저버리는 행위는 저주 가운데 빠질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물을 버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선물(은혜)인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선물하신 하나님의 방식과 하나님 자체를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에 주의를 줍니다. 율법은 선하지만, 죄성을 가진 인간을 선한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또한 율법 아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3:2) 이제 성령의 지배 아래 있는 것입니다. 인간 안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안다면 율법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는 의도는 어리석은 것이며, 결국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율법의 한계를 알았음에도 그것들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을 기만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다른 복음’은 없다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 의롭게 된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가면서

 

갈라디아서는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초기에 기록된 서신에 속하며, 바울의 생각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곳이기도 합니다. 2천 년이 흐르고, 번역된 글이며, 음성이 아닌 문자로만 읽어도 바울이 얼마나 격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기어서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것을 본 아버지가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아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려드는 아버지의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이 가르친 것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바울과 조금 ‘다른 복음’ 일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말하는 ‘다른 복음은 없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들이 가르침은 거짓이며, 왜곡되었으며, 의도적으로 복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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