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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과 기고글]/국민일보

[기독교 고전 읽기]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by 하늘땅소망 2019.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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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

 

1. 토마스 아 켐피스의 생애

 

토마스는 1380년 라인강 하류 켐펜에서 요한과 겔트루테 해멜켄(해멜켄은 ‘작은 망치’란 뜻)의 아들로 태어나 1471년 7월 25일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그는 독일의 신비 사상가이자 의도치 않았지만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데보티오모데르나(Devotio moderna)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공동생활형제단이 운영하는 더벤터의 학교에 보냅니다. 화란(네덜란드)에 있는 더벤터는 타락한 수도원과 교회와 다르게 경건생활을 통해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의 형이었던 요한은 아그네스산 수도원에서 부원장으로 있었습니다. 당시 규칙에 의하면 형제가 동일한 수도원에 함께 머무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두 형제의 바르고 온유한 성품은 모두에게 인정되어 함께 머물도록 허락이 됩니다. 그곳에서 청빈, 순결, 순종 서약을 하고 1413년 33세의 나이로 사제 직분을 받게 됩니다. 1425년에는 부원장으로 임명되었고, 새로운 수도사들을 훈련시키는 일도 맡게 됩니다. 수도원의 사무장도 맡게 되지만 그에게 행정적 재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엽, 중세는 그야말로 흑 역사였습니다. 1309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감금되다시피 하면서 프랑스 국왕의 꼭두각시 노릇을 합니다. 1377년 그레고리 11세가 로마로 귀환하면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교황청의 수모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황청에 로마로 옮겨가자 프랑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는 것에 반발해 프랑스 추기경들이 콘클라베 무효를 선언하고 탈퇴하여 '대립 교황'을 세우게 됩니다. 새로운 대립 교황은 아비뇽에 두어 두 명의 교황이 있게 됩니다. 피사 공의회에서 다른 교황을 세우게 되면서 세 명의 교황이 있던 적도 존재합니다. 토마스가 활동했던 시기는 중세의 종말을 알리는 교황의 붕괴와 도덕적 타락이 극심한 시기였습니다.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마르티노 5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하여 서방교회의 분열은 막을 내리지만 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중세가 무너지는 여진과 같았습니다. 이러한 시기를 살아갔던 토마스는 새로운 종교적 운동이 필요함을 체감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데보티오모데르나(Devotio moderna)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공동생활형제단은 부유한 상인이었던 헤르트 드 흐루트가 세속적 생활을 정리하고 공동체를 설립하면서 시작됩니다. 처음 시작은 비공식적 평신도 운동이었습니다. 1392년 토마스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한 이 운동은 집단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의 거룩한 열심에 대한 결심이었습니다. 운동은 점점 확산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옛 사도들을 본받아 경건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공동생활형제단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작은 공동체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중세의 신비주의가 지나치게 현실을 배격하고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비현실적 신앙에 몰두하는 것에 반대해 현실 속에서 신비와 거룩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이 후일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특징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루터가 기도원을 나와 세속에서 거룩을 추구하고, 칼빈이 소명을 세상 속에서의 ‘직업’과 연결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수도원이 몸담고 있던 위트레흐트 시민들과 교황과의 갈등으로 인해 토마스는 형과 함께 1429년 6월 11일, 히링겐 부근의 구넨케르크 수도원으로 옮겨 갑니다. 이 일로 형 요한은 건강이 나빠져 3년 후에 죽게 되고 심각한 영혼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 때 속세를 떠나라는 책의 내용은 지리적이고 공간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1448년 그는 부원장의 자리에 다시 선출되고 20년 동안 학생이자 상담사, 필사자 및 저자로 살아갑니다. 1471년 6월 25일, 마침내 토마스는 주님의 품에 안깁니다. 그의 나이 91세, 종교생활 63년째, 수도생활 58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 중에서 가장 어두운 암흑기였습니다. 그러나 어두울수록 아침은 가까워 오는 법, 종교개혁의 여명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은 어두운 시대 속에서 개혁과 거룩의 기치(旗幟)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사상의 씨앗을 뿌린 것과 같았습니다. 그가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구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를 붙임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됩니다. 이제 토마스 아 켐피스의 거룩한 열정이 스민 <그리스도를 본받아>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중요한 대목만을 직·간접적으로 옮깁니다. 박문재의 번역을 주인용 서적으로 삼았고, 필요에 따라 다른 번역자의 글도 첨가하였습니다.

 

2. 요약

 

[책은 4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1권은 25장, 2권은 12장, 3권은 59장, 4권은 18장으로 나누었습니다. 1권에서는 ‘영적 삶에 유익한 권면들’이란 주제로 영적 삶이 무엇인지 다룹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혹적인 부분입니다. 2권은 ‘내면의 삶에 관한 권면들’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권은 ‘내적 위로’라는 제목으로 세상 속에서 평안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권면합니다. 마지막 4권은 ‘성찬에 관한 경건한 권면’이며, 성찬에 담긴 영적 의미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의 논문처럼 각권의 제목과 각장의 내용이 명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암울하고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토마스의 생애는 세속에 대한 지나친 배타성을 드러냅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 중세의 신비주의 사상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 속에서 배타적 거룩과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은 타락한 세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했던 토마스의 열정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거나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에 위와 같은 것들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면, 독자는 이 책이 얼마나 귀중한 고전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해럴드 C. 가디너]

 

1권 영적 삶에 유익한 권면들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참된 빛을 받아서 마음의 온갖 눈먼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삶과 성품을 본받을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지 않고 겸손하지 않아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고상한 말로 늘어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없어져 버릴 부를 추구하고 재물을 의지하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명예, 부귀, 권력, 육체의 욕망을 구하는 것 역시 헛된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 자신이 하찮은 존재인 것을 아는 자는 타인의 칭찬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많이 알고, 많이 소유한다 하여 삶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자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 없이는 아무도 바르게 깨달을 수도 없고 제대로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이 단순할수록 깊은 것들을 깨닫고, 순전할수록 영적인 것에 민감합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그가 진정 지혜자입니다.

 

지식을 얻으려고 성경을 읽지 말고 진리 자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명성이나 세상적 유익을 위해 성경을 읽지 마십시오. 평안은 욕망을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찾아옵니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를 경계하십시오.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헛된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쾌락적 지식을 추구하며 자신을 상처 나게 합니다.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이유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내적 위로가 아닌 것은 헛된 것입니다. 도리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많이 사랑하는 것이 많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하지 말고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당신은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 이유는 인내하고 수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서는 순례자와 나그네로 지내십시오. 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 땅은 인내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정화시키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날에는 단순한 순종이 탁월한 지혜보다 더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2권 내면의 삶에 관한 권면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내면에 그리스도가 거처할 곳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주님을 신랑으로 영접하십시오. 사람은 쉽게 변하고 힘이 금세 사라집니다. 그리스도만이 영원히 계시며 변함없이 함께하십니다. 내면이 잘 정돈되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괴하고 악한 행위들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모욕과 수욕을 넉넉히 이깁니다. 자신을 변명하려 들지 말고 다른 사람을 먼저 용납하십시오. 사람은 단순함과 순수함이란 두 날개를 가질 때 하늘로 올라갑니다.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이킨 사람은 새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고통은 곱씹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은 무감각합니다. 내면의 삶을 중시하는 사람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먼저 살피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가장 궁핍한 사람이고, 예수님과 함께 잘 살아가는 사람은 가장 부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것은 위대한 예술이고, 예수님과의 교제를 지속하는 법을 아는 것은 위대한 지혜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가장 낮은 곳에 두십시오. 그러면 가장 높은 곳이 당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선물에 감사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적습니다.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자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위로를 받을 것이며 예수님을 찬송하고 감사드리고 싶어 할 것입니다.

 

3권 내적 위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원해서 세상의 모든 방해물을 떨쳐 내버리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사무엘처럼 ‘주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지자들은 말씀을 전할 수 있었지만 성령을 수여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은 물을 주지만 하나님은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듣는 사람을 깨닫게 하십니다.

 

[3권 저자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하대어를 사용했고, 그렇게 번역되었습니다.]

 

사랑은 신속하고 진실하며 경건하고 유쾌하며 온유하고 강하며 인내하고 신실하며 사려 깊고 오래 참으며 용감하고, 결코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서 자신의 유익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그 일에서는 사랑으로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에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다스림이나 지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많이 배워 교만한 것보다 배우지 못하고 겸손한 것이 낫다.

 

스스로 선하다 생각하며 지나치게 애쓰다가 나중에 선하지 않은 일로 밝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단호하게 육신의 정욕과 맞서 싸워야 한다.

 

네 자신을 완전히 꺾고서 다른 사람들의 뜻에 복종하고자 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네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낮고 비천한 자가 된 것은 너로 하여금 나의 겸손을 본받음으로써 네 자신의 교만을 이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난을 더 잘 감당할수록, 너는 더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고, 장차 더 큰 상을 받게 된다. 마음과 몸이 고난을 감당할 각오와 준비와 철저히 되어 있다면, 고난을 감당하는 일은 더 쉬워진다.

 

늘 많이 갖기보다는 적게 갖는 것을 택하라. 늘 가장 낮은 자리를 구하고, 모든 사람 아래에 있어라. 네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늘 바라고 기도하라. 보라, 그런 사람은 평화와 안식의 땅으로 들어간다.

 

아들아, 호기심을 갖지 말고, 쓸데없는 일들에 관심을 갖지 말라. 이런저런 일들을 너와 무슨 상관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유명한 사람의 그늘에 그늘 아래 들어가고 하거나, 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자 하거나, 사람들의 사랑과 호의를 얻으려고 애쓰지 말라. 그런 것들에 힘을 쓰게 되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많이 어두워지게 되기 때문이다.

 

생명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계명들을 지켜라.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나를 믿으라. 온전해지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팔아라. 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한다면, 네 자신을 부인하라.

 

4권 성찬에 관한 경건한 권면

 

[3권과 비슷하게 4권은 제자의 질문과 주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어는 제자의 질문이고, 하대어는 주님의 대답입니다. 중요한 구절만을 발췌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께서 이 부족하고 가련한 자를 초대하셔서, 주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에 참여하라고 하시니, 그 말씀이 이 죄인의 귀에 너무나 달콤하고 향기롭습니다. 주께서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를 극진히 대해 주시며, 이렇게 지극한 사랑으로 초대해 주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성찬을 통해서 영적인 은혜가 수여되고, 잃어버렸던 영적인 능력이 회복되며, 죄로 흉측해졌던 아름다움이 되돌아옵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거룩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고, 나는 죄인들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죄인입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 앞에서 얼굴조차 들 수 없는 자인 데도, 주께서는 친히 몸을 굽혀 나를 바라보십니다.

 

주님, 내가 처음 죄를 짓게 된 날부터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주 앞에서와 주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저질러 온 나의 온갖 죄악들과 범죄들을 주 앞에 내어 놓고, 주의 속죄의 제단 위에 올려 드리오니, 주의 사랑의 불로 그 모든 것들을 태우시고 사르셔서, 내 모든 죄의 더러움을 씻어 주옵소서.

 

경건한 사람은 성찬에 나아와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의 신비를 경건하게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교제를 통하여 보이지 않게 새롭게 세워져 가게 된다.

 

의문과 논란이 있는 어려운 길들을 버리고, 하나님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명하신 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너무 심오한 것들을 천착하고자 하다가 신앙까지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너의 지각을 믿음 아래 종속시켜라.

 

모든 이성과 본성적인 탐구는 믿음보다 앞서가거나 믿음을 훼방해서는 안 되고, 도리어 믿음을 뒤따라가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서 측량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고 인간들의 탐구에 쉽게 포착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일들은 기이하고 인간의 언어로 모두 표현할 수 없다.

-끝-

 

3. 나가면서

 

중세의 고전을 읽어오면서 지금까지의 책들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책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세적 신비주의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지나치게 신비주의를 추구하거나 관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아퀴나스처럼 집요하게 철학적 사유방식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읽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건전하고 바른 신앙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책 속의 내용은 지나치게 세상과 결별하고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의 삶은 현실에서의 경건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전에 신비주의자들이 현실에 과도하게 집착했음에도 관상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중세 교회사를 집필한 R.W. 서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며 아쉬워합니다.

 

“세상을 등지지도 않았고 세상에 몸을 던지지도 않았다. 다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투쟁들에서 피신했을 따름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상생활을 훌륭히 해나간 모범적인 사람들이었는데도 폭풍과 같은 도시 생활에서 물러 나와 힘써 추구했던 삶을 세상에 소개할 만한 책은 한 권밖에 내놓지 못했다.”

 

저의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기독교 역사 중에서 최고의 고전을 세 권을 선정하라고 한다면 어거스틴의 <고백록>과 존 번연의 <천로역정> 그리고 중세 시대를 대변하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고를 것입니다. 중세의 신비적 성향을 지니면서도 삶과 신앙을 격리시키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과도하게 상징적으로 해석하거나 이성적으로 추론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이성을 믿음에 굴복시켜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성경을 알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습니다. 분주하고 헛된 야망에 부추김을 당하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맑은 샘물과 같은 청량함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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