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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경건을 연습하라.

샤마임 201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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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경건을 연습하라.


'앗차!' 나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흘러 나온다. 또 잘못 넣은 것이다. 일반쓰레기 통에 넣을 것을 재활용 통에 넣었다. 교회 사무실에는 두개의 통이 있다. 하나는 일반쓰레기통이고 다른 하나는 재활용 통이다.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려야할 것들은 일반쓰레기통에 넣고, 플라스틱이나 캔 유리 등은 재활용통에 넣어 나중에 다시 분리한다. 그런데 일반쓰레기를 재활용통에 나도 모르게 넣은 것이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이다. 하루에 세 번의 동일한 실수는 용납하기 힘들다. 원래 쓰레기통은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일 오후 청소를 하면서 자리를 바꾸어 놓았다. 습관적으로 버리던 것이 몸에 배여 나도 모르게 쓰레기를 재활용통에 넣고 있는 것이다. 





죄는 습관이다. 시편1편 1절에 보면 악인의 특징을 말하는 세 단어가 등장한다. 죄악의 길을 걷고, 서고, 앉는다. 앉음은 더 이상 변화의 불가능한 고착상태다. 죄는 유기적으로 삶을 변화시키고 멸망의 길로 끌고 가며 파멸시킨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죄를 즐기게 되고 나중에는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감옥이 되어 갇힌다. 사도바울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다. 모양, 즉 한 번의 흉내만으로도 죄는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죄는 중립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인격이다. 주님께서 돈을 신으로 묘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몸에 배인 죄의 습관은 우리를 일어나지 못하도록 멸망시킬 수 있다.

 

경건도 습관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류는 죄에 매여 파멸의 길을 운명처럼 살아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구원 받았다.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이다.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아도 된다. 신분상의 변혁이 이미 일어났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새창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습관은 우리를 여지없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어쩔 때는 손을 쓸 수 없는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죄의 유혹에 빠뜨린다. 경건을 훈련해야 한다. 거룩한 본성으로 죄의 습관을 이겨야 한다. 군인이 꾸준하고 고된 훈련을 통해 전투력을 유지하듯, 그리스도인들은 경건의 훈련을 통해 영적 군사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떻게 경건을 훈련할 수 있을까? 매일 성경 읽기, 영적 일기쓰기, 예배참석, 큐티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경건습관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사람은 보고 들음으로 변화되고 만들어 진다. 오늘부터라도 꾸준한 경건훈련을 시작해 보라. 아래는 케서린 마틴의 <30일간의 거룩한 사귐>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명한 신학자인 도날드 그레이반 하우스가 어느 날, 기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를 알아본 학생이 그에게 물었다. "반하우스 박사님, 저는 어찌하면 당신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반하우스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 잡지들을 더 많이 읽는 한 하나님보다 그 잡지들에게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네"

 

경건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죄 짖기도 쉽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그대로 있으며 영적 도태로 인해 반드시 죄 짖는 사람으로 전락하다. 연어처럼 죄악의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룩은 훈련이 필요하며, 영적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고귀한 가치다. 새로운 경건의 습관을 위해 의식적으로 깨어 있으라. 그리고 적당한 훈련을 쉬지 말라. 꾸준함이 영적 승리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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