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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설교] 꿈의 사람 요셉 창세기 37:1-11

샤마임 2013.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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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사람 요셉

창세기 37:1-11

 

여러분! 꿈이 있습니까? 저의 어릴 때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대통령이 꿈인 사람 손들어!’라고 외치면 교실의 2/3가 ‘저요!’라고 손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과학자, 그 다음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선생님 아니면 간호사였습니다. 제 아내도의 꿈도 간호사였습니다. 저는~~~ 꿈이 없었습니다. 있다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꿈이 있습니까? ‘새삼스럽게 이 나이에 꿈은 무슨..’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있다면...

 

꿈은 삶은 담는 그릇입니다. 꿈이 있어야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고 무엇을 해야할지를 압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잠깐의 휴식이 꿀맛인 것처럼 꿈이 있는 사람에게 잠깐의 쉼이 즐거운 법입니다. 백수에게 쉼은 고통이고 무능함입니다. 사람은 꿈만큼 자라게 되어있고, 꿈만큼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꿈의 크기가 그 사람의 크기입니다. 그 사람의 꿈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꿈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미래와 인생과 삶을 담는 꿈 말입니다. 가늠할 수 없는 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반석교회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꿈은 행복의 시작입니다. 대개 40대가 넘어가면 꿈이 사라지고 지루함과 무의미가 급속하게 많아 집니다. 무엇을 봐도 설레임도 없고, 무엇을 해도 재미도 없고, 무슨 말을 들어도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 그 자체가 ‘무덤덤’합니다. 삶에 재미가 없으니까 자꾸 재미있는게 뭔가 싶어서 나이트도 가보고 생판 모르는 남자들 손 잡으려고 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혹시 그러고 싶은 분이 있다면 오늘 설교를 통해 설레임과 기쁨이 넘치는 꿈을 가지길 원합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의 우선순위는 꿈을 찾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꿈이 있으면 즐겁습니다. 꿈이 있으면 자꾸 웃음이 나옵니다. 꿈이 있으면 슬퍼도 슬프지 않고, 아파도 아프지 않고,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이게 뭔지 알랑가몰라. 저는 반석교회가 꿈이 있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갖고 민족과 열방을 향하여 마음껏 사역하고 섬기는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한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요셉의 일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생을 어떻게 다루시고 복주시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본문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1. 꿈꾸기 전 / 형제의 잘못을 고하는 요셉

오늘 본문은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37:2의 ‘야곱의 약전은 이러하니라’는 야곱의 세대가 끝나고 요셉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곧바로 요셉을 언급하면서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이 넘어갔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하나님은 요셉을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배역을 맡길 참입니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첫 번째 하신 일은 요셉에게 꿈을 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기 전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요? 그는 형들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고자질 쟁이였습니다. 그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함부로 도적질하거나 르우벤처럼 서모빌하를 강간하는 등의 죄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과 살면서 그들을 일거수일투족 살피면서 그것들을 아버지 야곱에 일러 바쳤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셉을 의리를 배반한 저속한 존재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 원문을 보면 ‘그들의 과실’은 ‘디바탐 라아’로 그들에 대한 나쁜 소식으로 악한 행동을 말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정직한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34장에서 세겜성 사람들을 야비하게 속인 것을 보아도 그들은 저열한 인간들이고 결코 모범이 될만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간교함이 자식들에게 그대로 옮겨 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요셉은 정직했고, 순결했고, 공의로웠습니다.

 

하교길에 친구들의 금품을 뜯어내고 폭력을 행사하는 친구들을 선생님께 알려 주는 것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요셉이 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 때문에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요셉은 분명 형들을 위하고 아버지 야곱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론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세워지지 않습니다. 형제들간의 위화감을 누구러뜨릴 수도 없고, 세상을 변화 시킬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로운 요셉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발견할 뿐입니다. 우리의 작은 의로움으로 세상은 변화되지 않음을 얼마나 자주 확인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다. 불의함이 있고, 부당함이 있어 그것을 소리쳐 외친다하여 그것이 변화 되는 것을 보았습니까? 소리를 높이고 물리적인 힘을 동원한다하여 그들이 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그렇게 행동하고, 그것을 정당화합니다. 아니요. 그런 식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도 나그네는 옷을 더욱 단단히 붙잡을 뿐입니다.

 

긴소매옷 /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에 대한 야곱의 사랑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3절에 보니 야곱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특수 제작한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원어상으로 소매가 긴 옷입니다. 70년 새마을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나라에서는 한복 치맛단을 짧게 하라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런 옷을 입고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패션은 권력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존재를 결정합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장자로서의 분명한 의식을 심어주고 다른 형제들에게도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자 긴 옷을 입힌 것입니다.

 

텔루스킨이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는 네 형들과는 다르니 일한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실제적으로 장신구가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일로 인해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게 되어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우린 여기서 야곱의 이리석음을 봅니다. 야곱 자신도 아버지인 이삭이 에서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고, 가정의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야곱 또한 요셉만을 사랑하여 형제들 간의 심각한 불화를 조장합니다. 절제되지 못한 미숙한 요셉에 대한 편애는 결국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13년 동안 보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우리가 편애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요셉은 이렇게 불안정하고 미숙한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불의한 형들과 믿음의 족장이라고는 하지만 한없이 허물많은 아버지의 편애 속에서 거만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꿈이 그를 주장하기 전 요셉은 전혀 위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각은 좁았고, 편협했고, 교만하기까지 했습니다.

 

2. 꿈꾸는 요셉

바로 이때 요셉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주신 것입니다. 어느 날 꿈에서 형의 단들이 일어나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들이 들으면 몹시 기분 나쁜 꿈인데도 요셉은 그 꿈을 자랑스럽게 형들에게 말합니다. 이것만 보아도 요셉이 얼마나 교만하지 알 수 있습니다. 꿈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을 합니다. 그 꿈을 다시 형들에게 말하고, 이번에는 아버지 야곱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요셉을 꾸짖고 마음에 담아 둡니다.

 

요셉의 일생은 꿈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요셉은 이 꿈으로 인하여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구덩이 속으로 던져집니다. 그리고 13년 후에 지하 감옥-구덩이 속에 있을 때 바로가 두 번의 꿈을 꾼 다음 요셉을 구덩이 감옥에서 끌어냅니다. 그리고 야곱의 형들이 기근이 일어나 애굽에 곡식을 구하려 올때 요셉에게 절을 합니다. 요셉은 이 모습을 보고 어릴 적 자신이 꾸었던 꿈을 기억해 냅니다.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꿈은 자신이 형들에게 절을 받는 단순한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고 장엄한 것입니다.

 

먼저는 애굽과 가나안 지역의 수 천 만명의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불러들여 앞으로 다가올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만드는 데 거대한 구속의 드라마의 결정적 인물로 자신을 사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전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담는 역설의 공간입니다. 꿈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위대한 것입니다.



꿈의 사람 요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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