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22. 10:1-18 완전한 제사
22. 10:1-18 완전한 제사
1. 말씀 읽기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2. 묵상
1) 항상 죄를 기억함
옛 언약은 다분히 교육적입니다. 날마다 드리는 제사가 있고, 절기마다 드리는 제사와 해년 마다 드리는 제사들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제사는 다양한 이유를 가지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죄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새 언약과 다른 점입니다. 새 언약은 죄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새겨져 있어 본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율법은 ‘장차 좋은 일의 그림자’(1절)입니다. 그림자는 나쁜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다는 알려 주는 그림자 역할을 합니다. ‘장차 좋은 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승귀를 통해 속죄와 정결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잘 들여다보면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 빠뜨리고자 유대인들이 세금에 대해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동전을 달라하여 누구의 형상이냐고 묻습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찍은 동전은 로마의 지배와 권력을 상징합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가이사가 실제로 존재하며 동전이라는 화폐를 통해 실제적인 힘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형상은 실체는 아니지만 존재를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은 그리스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장차 올 것이고, 그리스도가 실제하심을 말합니다.
율법이 정한 제사의 목적은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3절)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죄가 있음을 기억합니다. 만약 죄를 기억하지 않는 다면 굳이 제사를 드리지도 않고 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해년 마다 드리는 제사는 율법 아래 있는 죄인들의 실체를 알려줍니다.
‘깨닫는다’(2절)는 단어는 ‘συνείδησις,’로 양심(9:9)으로 번역된 단어로 자신의 불의한 행위를 보고 가책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자신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할 때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합니다. 율법의 기능이 바로 이러한 가책과 정죄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4절)합니다. 제물의 피가 죄를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명하신 하나님의 자비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근거는 그들의 ‘순종’에 있습니다. 제사를 드림으로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은 매번 제사를 반복해야하고, 죄를 기억함으로 ‘장차 올 좋은 일’을 준비하게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죄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가 있다는 알고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인정할 때 용서의 십자가가 필요한 것이고,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요일 1:8-10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옛 언약이 죄를 망각함으로 기억나게 하려는 교육적 의도가 다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안에 있는 이들을 더이상 죄를 기억하지 않고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넘치기 때문에 죄인으로서 의인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항상 자신을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을 파기한 것이 아니 ‘온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2) 순종의 제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온전한 제물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온전한 예물이 필요하다는 말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5절) 밧세바와 동침한 후 나단이 찾아와 다윗을 책망합니다. 다윗은 노하지 않고 곧바로 회개합니다. 그 때 지은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51:16-17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닙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음이 없는 모든 예배와 기도,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마음은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변화 시키기 위해 짐승의 피가 아닌 다른 제물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7절에서 9정 상반부까지는 시편 40편을 인용한 것입니다.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한글 성경을 봅시다.(시편 40)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귀를 파다’
시편 40:6의 구약 본문은 ‘내게 들려주신다’는 말이지만 원문은 ‘귀를 파다’는 뜻입니다. ‘열다’의 히브리어 ‘카라’는 ‘파다’는 뜻입니다. 막혀있는 귀를 하나님께서 파서 깊숙히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 준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시편에서는 주의 뜻을 행하기를 즐기고, 주의 법이 심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곧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왔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한 70연에도 ‘내가 원하다’가 들어가 있습니다.
새 언약이 가진 우월상은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고, 행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매년 희생을 드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새 언약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본성을 갖게 되고, 순종의 삶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합니다.
3) 다시 죄를 기억하지 아니함
옛 언약은 효율이 매우 낮은 자동차와 같습니다. 많은 연료를 쏟아 붓지만 멀리 가지도 빨리 가지도 못합니다. 제사장들이 매일 서서 섬기고,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지만 죄를 사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에 비해 새 언약은 ‘단 번’ 오직 ‘한 번’의 속죄 사역을 통해 그들이 영원히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룹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승귀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12절)
그 다음,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십니다.(13절) 즉 완전히 정복하실 때까지입니다. 그 원수들이 누구입니까? 불순종의 영들이며, 사단이며 마귀들입니다. 이제 ‘성령’(15절) 증언하십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키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16절)하셨습니다. 절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하나님의 법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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