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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리처드 보컴, 트레버하트 / 김동규 옮김 / 터치북스

샤마임 2021. 3. 7.

십자가에서

리처드 보컴, 트레버하트 / 김동규 옮김 / 터치북스

 

 

 

[갓피플몰]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본 십자가의 의미.오늘 하루를 십자가 앞에서 살고 싶은 이들이 읽어야 할 경건서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한 주, 세상을 바꾼 한 주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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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아래에서 당신을 경배합니다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천 년 전의 사건 속에 있다는 착각을  이토록 강렬하게 받기는 처음이다. 소설도 아닌 묵상 집을 읽으면서 말이다. 김영봉 목사는 이 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문학적으로 풀어 쓴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 꿇게 만든다.’ 십자가로 향하던 마지막 생애의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열한 명의 인물을 조명한다. 마리아, 가룟 유다, 베드로, 가야바, 빌라도, 바라바, 구레네 시몬, 막달라 마리아, 백부장, 니고데모, 그리고 예수님이 사랑한 제자.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지명 수배자를 숨겨준 것이다.”(17쪽) 이 짧은 한 문장은 나의 심장을 더 빠르게 뛰게 했다. 정말 그랬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예수님이 직면한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던 마리아는 ‘기쁨과 불길한 예감, 즐거우면서도 괴로운’(21쪽) 마음의 상태를 간직한 채로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은 곧 닥칠 위험에 대한 불길한 두려움도 몰아냈다. 물론 그런 마리아의 행동이 곧 다가올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끔찍함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지는 못했다. 시체의 악취는 죽음이 가져오는 피할 수 없는 실체다. 그러나 사랑의 향기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마리아는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직관적으로 깨달았고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 역시 사랑의 마음으로 그 고통을 수용한다.”(25쪽)


인물들의 내밀한 생각을 세밀하게 그려나가는 섬세한 화가와 같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십자가의 길이 갖는 본질을 관통하는 문장으로 우리의 안일한 신앙을 일깨운다. 저자는 마리아의 헌신을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며, 소외되어 버려진 채 죽음을 맞이한 가난한 예수와 ‘연대하고 하나 되는 일에 동참하는 것’(28쪽)으로 선언한다. 당혹스러울 만큼 예리하다.


예수님은 ‘배신의 가능성을 전제’(42쪽)하며 가룟 유다를 사랑했다. 역시나 가룟 유다는 자신의 스승인 예수를 부정한다. 이러한 유다는 ‘인간에게 찾아온 하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인간 본성을 대표하고 상징’(43쪽)하는 인물이다. 우리는 베드로에게서 주님께 사용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 했던 마음까지’(76쪽) 내려놓아야 함을 배운다.


분명 열한 명 이야기인데,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를 발견한다. 가룟 유다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베드로에게서 역시 ‘나’를 찾을 수 있다. 바라바를 읽을 때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생을 새로 시작한 기회’(121쪽)를 마지막으로 주신다는 불안과 기쁨을 동시에 선물한다.


처음 ‘리처드 보컴’이란 저자의 이름을 읽었을 때 무척이나 딱딱할 것이라 오해했다. 낯설기는 하지만 동저자인 트레버 하트 역시 신학교수가 아닌가. 딱딱한 글로 오해하기 딱 좋은 저자들이다. 하지만 글을 읽는 순간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1세기 당시의 상황을 잘 알았던 학자적 성향과 더불어 표현하는 문학적 깊이가 더해진 책이다. 지독하게 성경을 파헤친 학자의 눈으로 인간의 실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아를 버리지 못한 베드로의 우격다짐은 한 여종 앞에서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 실패는 ‘비로소 진정한 제자도로 거듭나는 순간’(71쪽)으로 변화시킨다.


서평하기 아까운 책이다. 내용이 너무 좋아 나만의 보물로 간직하고 싶고,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양가적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책의 내용을 아껴두고 싶은 마음에 서평은 아래의 인용문으로 짧게 갈음한다. 부디 이 책을 읽어보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잊혀지고 방치된 수많은 고난과 고통이 있다. 그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세상의 환상에서 벗어나 잔인한 현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렵고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141쪽)

 

[밑줄 친 문장]


지난 몇 년 동안 자신들의 삶을 바쳤던 위대한 목표가 이제 곧 비극으로 끝을 맺게 되는 것일까? 제자들이 자신의 삶을 드려 헌신한 이 예수라는 분은 지금 그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고 무모한, 정말 이해불가한 죽음의 길을 자초하고 있는 것 같았다. 17쪽


마리아의 옥합 사건은 예수님의 시자가를 미리 예감한다. 십자가가 예수님이 반드시 지고 가야 할, 하나님이 계획하신 운명임을 깨달은 사람은 제자들 가운데 오직 마리아뿐이었다. 23쪽


배신의 본질은 사랑하거나 신뢰했던 사람에 의해 그 관계가 깨지는 고통을 의미한다. 36쪽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인간을 창조한 시점부터 계속해서 배신을 경험하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배신의 가능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42쪽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죽을 마음은 있었지만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셔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은 베드로가 제자됨의 의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드로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다. 65쪽


예수님의 십자가는 개인적인 죽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가장 깊은 연대 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141쪽


가장 버림받은 자들조차 예수님의 부활에 참예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가장 버림받은 자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159쪽

 

오직 충성된 자만이 끝까지 버티고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162쪽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고통과 연약함 가운데서 가장 온전히 계시된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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