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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만나다 / 로널드 헨델 / 박영희 / 비아출판사

샤마임 2020. 11. 23.

창세기와 만나다

로널드 헨델 / 박영희 / 비아출판사


창세기만큼이나 다이나믹한 성경이 또 있을까?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사람들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고고학이 발달된 지금에도 여전히 창세기 5장의 족보는 난제 가운데 하나이다. 수도 없이 흩어져 있는 고대의 홍수 이야기는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창세기는 역사시대 이전의 신화시대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을 엿볼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저자는 히브리 성서학자이자 유대인으로서 창세기의 특징들을 세밀하게 그려준다. 300쪽이 겨우 넘어가는 책임에도 이전의 어떤 책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창세기를 그려낸다. 서문에 기록한 ‘오류의 쓸모’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이 책의 유용성과 해석상의 쾌락을 ‘환상’(21쪽)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능수능란하게 고대 신화와 창세기의 이야기를 비교 분석한다. 보수신학의 맹점(盲點)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들은 창세기를 이해하는 넓은 이해를 도와주는 매개체이다. 창세기는 고대 신화와 구별되어 독립적으로 전승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지역에서 살았고, 그들의 문화와 전설을 공유했다. 모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창세기의 이야기는 고대 바벨론 신화와 그 이전의 수메르 신화를 공유하는 동시에 차별화된 관점을 견지(堅持)한다.


“바빌로니아 신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더 넓은 창조 전승군에 속해있다. 그러나 창세기는 오랜 전승을 단순히 반복하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오래된 생각과 이야기를 취하되 초점을 바꾸어 고유한 현실 이해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해냈다.”(51쪽)


필자가 잘못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상징’을 창세기를 읽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2장과 3장, 그리고 5장에서 상징을 통해 창세기를 읽어낸다. 6장에서는 이러한 상징에 대항하는 과학적 관점에서 읽으려는 현대의 근본주의자들의 오류를 더듬어낸다. 예를들어 성경이 과학과 일치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교황청의 반대를 일으켰고 결국 그의 주장은 폐기된다. 하지만 역사는 그가 옳았다고 증명한다. 그렇다면 과연 천체를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교황청의 주장을 틀린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과학과 성서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점, 바로 이것에 문제였다.”(208쪽)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과오는 ‘성서에 대한 상징적 해석이 자연에 대한 상징적 해석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깨닫지 못’(212쪽)한 점이다. 신대륙의 발견은 가나안 중심의 역사관에 ‘새로운 도전’(227쪽)을 일으켰다. 그 이후 성서학자들은 민족 우월주의에 함몰되어 제국주의를 옹호한다. 아프리카는 함의 자손들이 살고, 아시아인들은 야벳의 자손들이라는 극단적 이론이 그들의 주장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극단적 민족우월주의는 제국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만들었고, 제노사이드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최근들이 일고 있는 오래된 지구와 젊은 지구에 대한 논쟁은 성경을 지나치게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과학자들의 억지이다. 저자는 이러한 논쟁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250쪽)으로 해석한다.


확실히 성경해석은 유머가 필요하다. 경직된 고집은 성경이 의도한 본질과 상관없는 열심으로 이끈다. 이 한 권에 창세기에 대한 내외부적 관점과 역사적 해석을 담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창세기를 깊이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이 글은 비아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필자의 자의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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