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틈에 서서 / 박윤만 / 죠이북스
그 틈에 서서
박윤만 / 죠이북스
또 이틀 뒤에 이사한다. 수년 동안 이사를 무려 4번이나 했다. 작년에만 이사를 두 번이나 했으니 이사란 말만 나와도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다. 평생 단 한 번도 이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록 한데 이제껏 수십 번을 이사했으니 삶아가는 것이 곧 이사라 할 만큼 나는 이사와 인연이 깊다. 이젠 제발 이사하지 않고 한 곳에 적어도 십 년은 살아보고 싶다.
박윤만 교수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틈에 서서’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에세이인가 싶어 멈칫했다. 그런데 ‘땅과 하늘 그 사이에서 분투하는 이들을 위해’라는 표지 문구를 읽는 순간 나올 것이 나왔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해졌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분투하는 사람들이다. ‘이미’와 ‘아직’의 ‘그 틈’에서 말이다. 채영삼 교수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예수님을 믿고 떠도는 삶, 상속자가 받아야 할 고난을 기쁘게, 함께 감당하는 삶, 만물을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시키는 구체적 실천의 삶, 새 창조와 출산까지, 폭넓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주체들이 풍성하게 담겨있다.”
그 어떤 문장이나 설명으로도 이 보다 더 명징하게 이 책을 소개하지 못할 것이다. 필자의 떠돌이 삶이 그리스도인의 나그네 삶으로 규정될 수는 없지만 필연적 맥락으로 연관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땅은 안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안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본질적으로 나그네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살았던 구약의 인물들을 탐색한다. 2부에서는 신약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를 탐색해 나간다. 마지막 3부에서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구약을 중심으로 몇 곳을 주의하여 보자.
족장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사용되었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계시 영역’(18쪽)이었다. 족장들의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기뻐하셨던 하나님께서 어떻게 족장들을 사용하셨는지 잘 설명한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개척자로 살아간다는 것’(20쪽)이다. 하나님은 ‘이삭의 수동성’(26쪽)을 사용하셔서 계획을 이루신다. 야곱을 통해서는 세상의 가치관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전통을 세’(33쪽)워 나가신다. 그 전통은 ‘하나님의 자유’이다.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은 섬뜩할 정도다. 아합의 아내이며 시돈 왕의 딸이었던 이세벨은 거짓을 이용하여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는다. 이세벨에 동조했던 거짓 증인들과 장로와 귀족들은 ‘농부 나봇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이세벨의 권력이 무서워 진리를 거짓으로 바꾼다.’(65쪽) 엘리야는 거짓에 굴복한 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칼날 앞에 세운다.
“힘없는 한 농부의 죽음으로 온 이스라엘 사회 전체의 민낯이 드러났다. 농부의 죽음 위에는 불량배가 있었고, 불량배 뒤에는 장로와 귀족들이 있었고, 장로와 귀족 뒤에는 이세벨이 있었으며, 이세벨 뒤에는 우상이 있다. 우상은 혼자 일하지 않는다. 탐심에 끌려 다니는 아합, 진리가 아닌 권력을 숭배하는 이세벨, 권력 추종자 장로와 귀족, 그리고 아무 생각 없는 불량배를 이용하여 온 이스라엘 사람을 부패시키고 있다.”(66쪽)
아직 구약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읽는 내내 심장 박동수가 평균을 상회한다. 2부에서는 신약에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를 탐색해 나간다. 마지막 3부에서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박윤만 교수의 책은 세 번째다. 한 번은 킹덤북스에서 출간된 『마가복음』 주해서이고, 두 번째 책은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출간한 『신약성경 언어의 의사소통 기술』(그리심)이다. 워낙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기에 거침없이 읽기는 했지만 묵직함과 경직된 언어로 일관하고 있어서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책은 사뭇 다르다. 주해가 다운 묵직함을 잃지 않으면서 일상을 관통하는 예리한 해석과 부드러운 수필의 가벼움이 공존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긴 여정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느낌이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고 설렌다. 언어학을 전공한 저자의 내공일까? 인용하고 싶어 밑줄 그은 곳이 많아 책이 지저분해지는 것은 감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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