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2. 12:1-7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32. 12:1-7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1. 말씀 읽기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2. 묵상
드디어 믿음의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고 다시 독자들에게 눈을 돌립니다. 11장을 7번에 걸쳐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더 깊이 묵상해야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히브리서 11장은 한절 한 절 뜯어가며 읽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는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히브리서 12-13장을 살펴볼 것입니다. 12:1-17절까지는 인내로 경주할 것을 당부합니다. 오늘은 1-8절까지 아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살펴봅시다.
1) 예수를 바라보자
11장의 결론은 1-2절에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곳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ㄱ. 허다한 증인들
ㄴ. 죄를 벗어 버리라
ㄷ. 예수를 바라보라
이 세 가지를 조금만 더 깊이 묵상해 봅시다.
ㄱ. 허다한 증인들
먼저 허다한 증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몇 가지의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허다하다’는 표현 속에 충만한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즉 ‘모두’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았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독자들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쾨스터는 ‘구름’이란 표현이 군중을 나타낼 때 쓰이는 일반적인 단어라고 말합니다. 이곳은 곧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아왔던 그들이 이제는 히브리서 독자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통해 신약의 성도들을 응원하고 있으며, 모범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ㄴ. 죄를 벗어 버리라
두 번째는 그들이 믿음이 경주를 다할 수 있었던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경주하기 위해서는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무거운 짐을 지지 않습니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여 경주에 임해야 합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은 ‘죄’입니다. 세상에 욕망, 탐욕 등을 포함하는 것들입니다. 즉 세상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것들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ㄷ. 예수를 바라보라
이제 마지막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목표점입니다. 또한 앞서 가신 모델입니다. 바라본다는 말은 생각과 마음을 ‘둔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배운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NIV 성경은 ‘예수를 바라보자’를 ‘Let us fix our eyes on Jesus’로 번역했습니다. ‘fix’라는 단어는 선반 같은 물건을 못을 박아 벽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보고 배우고, 닮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믿음의 주이시며,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는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고, 예수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성도의 완성은 불가능합니다. 성도들은 앞서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2) 낙심하지 말라
ㄱ. 예수를 생각하라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세 가지 의미를 살폈습니다. 두 번째 살필 주제는 낙심입니다. 낙심(落心)은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소망한 것들이 실패하고 삶이 허망해질 때 낙심하게 됩니다. 주변의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합니다. 낙심의 방법은 예수님을 ‘생각’(3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거역한 이들을 참았습니다. 즉 소망 없는 자들로 인해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독자들은 예수님이 당하셨던 비슷한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동일한 길을 앞서 걸어가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라(ἀναλογίσασθε)는 ‘ἀναλογίζομαι’이며, ἀνά와 λογίζομαι의 합성어로 앞서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λογίζομαι’가 말씀(로고스 λόγος)에서 왔습니다. 생각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ㄴ. 아직
성도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4절) 내부적인 죄와 외부적인 죄를 포함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비논리적이거나 교리적 오류를 말합니다. 외부의 죄는 적으로부터 고난과 핍박 등을 포함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 피흘리기까지’(4절)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즉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안에서 ‘피’는 목숨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최선’ 아니면 ‘최후’의 의미를 갖습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고, 승패가 결정 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아직 낙심하기는 이릅니다.
ㄷ. 아버지의 꾸지람
고난이 격해질 때, 하나님께서 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아들을 징계하심으로 가르치십니다. 또한 고난을 통해 훈련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거룩한 성품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는 내적으로 생각의 오류이고, 외적으로는 어려운 환경입니다. 낙심하지 않기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바른 해석입니다. 고난은 낙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제 세 번째 주제에서 징계하시는 아버지를 더 깊이 다룹니다.
3) 아들을 징계하시는 아버지
ㄱ. 사랑하면 징계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징계합니다. 징계는 소극적으로 죄에 대한 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룩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입니다. 징계는 싫어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6절) 사랑함에도 징계하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ㄴ. 인내는 징계를 받기 위함입니다.
7절 상반부의 표현은 약간 난해합니다. 징계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훈련을 위한 것이라면 전후 문맥과 조화를 이룹니다. 결국 훈련을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ㄷ. 징계는 관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당당하게 징계 자체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선언하며, 사랑의 증거로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반드시 징계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버림받은 사람이거나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내버려 두심’을 심판의 증표로 제시합니다.
나가면서
1-8절까지를 살펴보면서 적지 않은 주제들이 얽히고 설켜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은 받으시는 아들을 징계하심으로 사랑을 표현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궁극적으로 징계는 아들된 증거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것입니다. 왜곡된 마음을 바로 잡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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