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 2:1-4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음
3. 2:1-4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음
1.말씀 읽기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2. 묵상
‘그러므로’(Διὰ)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합당합니다. 1장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명백하게 드러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상속자이시며,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현실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먼저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유대 공동체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과의 교류만 끊기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타격까지 같이 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유대인들은 종종 기독교인들을 돌로 쳐 죽이기까지 합니다. 배타적 종교인 유대교에서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흔들리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설명해 줌으로 믿음 위에 서도록 부탁하고 있습니다.
들은 것에 유념하라
먼저할 것은 들은 것에 유념하는 것입니다. 유념하다(προσέχειν)는 이단이나 위험한 것들에 대해 극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깊이 숙고하여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별하라는 뜻입니다.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행5:34-35
35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들은 것’은 히브리서 1장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도들에의해 들어왔던 복음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다시 심판자로 오실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존재와 속성, 공생애와 사역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명백히 드러난 복음을 등한히 한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등한히 여기다’(ἀμελήσαντες)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방치’(ἀμελέω)하는 것이고, 가치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것입니다.
마 22: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살펴보아도 ‘등한히 여기다’는 말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자신과 상관 없는 어떤 것으로 취급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 22장에 의하면 그들은 왕의 초청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우선 순위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인생의 왕의 초청 따위는 별것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받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등한히 여긴다’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어떤 철학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마라톤 처럼 분명히 가야할 곳이 있고, 힘을 다해 전력질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 일상의 선택, 하루하루의 발걸음은 복음적인가 아닌가를 생각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더불어 증언하시는 하나님
복음이 우리의 귀에 들려지기까지 희생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들은 자들이 지금 우리에게 확증해준 것입니다.(3절) 우리 귀에 들려지기까지 복음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과 생각과 삶에 복음을 담은 이들이 이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종이에 기록하고 복사하고 보존한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온 이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위기를 겪어야 했고, 배고픔과 위협들로부터 고통을 당했습니다. 복음은 그렇게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복음을 하님께서 ‘그들과 함께 증언’(4절) 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증언하신 방법은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들입니다. 사도들이 손을 들이 기도할 때 응답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외칠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의 손에 표적을 더해 주심으로 복음이 거짓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3:6-8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사도행전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사도행전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나가면서
복음은 깊이 유념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 깊이 더 깊이 묵상하고 생각할수록 확신에 이를 수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사실과 행하심, 그리고 하셨던 말씀 모두를 포함합니다. 그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깊이 유념한다는 말은 우리의 삶에 복음이 뿌리 내려야하고, 천착하여 몸으로 살아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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