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 15 오병이어의 기적
요한복음 6:1 - 6:15 오병이어의 기적
유월절이 가까워오는 시기에 디베랴 바닷가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오병이어로 먹이십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을 연상하게 합니다. 후에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으로 소개합니다.
오병이어 사건의 공관 복음 기록
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본문]
- 요한복음 6: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 요한복음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 요한복음 6: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 요한복음 6: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 요한복음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 요한복음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 요한복음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 요한복음 6: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 요한복음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 요한복음 6: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 요한복음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 요한복음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 요한복음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 요한복음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 요한복음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묵상]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
사람들이 또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이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자 큰 무리가 따릅니다. 요한은 이들이 따르는 이유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2절) 어쩌면 당연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파하면서도 이것을 기회로 삼으십니다.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앉으니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옵니다. 마치 마태복음 5장이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동일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주님을 따를까요? 건강? 물질? 복? 하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우리의 사업이 망하고, 병이 들고, 고통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 디베랴(Τιβεριας Tiberias)는 황제 티베리우스이며, 티베리우스가 재건하였기에 기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구는 24,000명 정도였다. 당시 번창했다는 가버나움은 1700명이었으니 차이가 엄청났다. 미쉬나와 바벨론 탈무드가 편집된 곳으로 랍비의 도시이다. 디베랴는 공동묘지가 있던 곳으로 유대인들은 잘 가지 않았고, 제사장들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성서 지명 -디베랴]를 참조 바람
위기와 대안
큰 무리가 주님을 따르자 주님은 빌립에게 묻습니다.
"이 사람들을 다 먹이려면 어디서 떡을 사서 먹일 수 있겠느냐?"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하더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질문을 한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빌립은 현실적인 대안을 내어 놓습니다. 1세기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으니 노동자가 200일 동안 일하고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하는 돈입니다. 요즘 일반 노동자 일당이 12만 원입니다. 일당이 올라 그렇게 된 것이고 당시의 상황을 맞추어 환산하며 하루 3만 원 정도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3만 원을 계산해도 1500만 원이고, 만약 10만 원을 계산하면 남자만 오천이니 오천만 계산해도 무려 5,000만 원입니다. 남녀와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만 명은 훌쩍 넘을 겁니다. 그러니까 빌립의 말은 '우리가 이 사람들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입니다. 돈이 얼마 든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기에 시몬 베드로가 어떤 아이에게서 가져온 오병이어를 내밀며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는 회적인 말을 합니다.
이게 제자들이 한계일까요? 이들은 왜 이것밖에 대답하지 못할까요? 이들의 문제는 하나입니다. 문제를 문제로만 보고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제자들이 해결한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다는 말을 듣는 건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우리는 고민하고 걱정하지만 주님께 문제를 내어 놓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나의 문제인양 생각합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무엇일까? 잘못 읽으면 마치 빌립을 테스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핍절함을 보시고 아셨고 긍휼히 여기셨다. 빌립에게 한 시험은 이것이다. '너도 나처럼 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느냐?이다. 단지 상황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목자의 심정. 바로 그것이다.
열두 바구니
예수님은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잔디에 앉게 하고 가져온 오병이를 축사(감사기도) 하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곳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습니다. 열두는 이스라엘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온전히 평안히 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앉다'는 동사는 아나핍토이며 식사할 때 앉는 자세를 뜻합니다. 이 말은 결국 이제 밥이 나오니 밥 먹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며, 표적이 일어날 것임을 기대하게 합니다.
너르고 평평한 산 위의 평야(디베랴는 산 위의 동네다)에 앉아 사람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굶주리고 핍절한 삶을 연명하는 이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배가 부르고 평안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침을 뜻합니다. 이 장면은 정확하게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종말론적 전치를 말합니다. 이후의 본문에 드러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으로 소개함으로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 얻게 될 진정한 복을 보여줍니다.
홀로 떠나시고
사건 직후 주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왕 삼으려 하는 줄 알고 홀로 떠나십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왕은 육신적 배부름과 건강입니다. 주님은 그런 왕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이유는 그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선과 인기를 뒤로 하고 홀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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