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15 베데스다 자비의 집
요한복음 5:1-15 베데스다 삼십팔 년 병자를 고치다
명절이 되어 다시 예루살렘 올라 양문 곁에 있던 베데스다 못에서 삼십팔 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십니다. 후에 주님은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 더 심한 것이 걸리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십니다.
찬송가 370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가사
1.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후렴)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3.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4.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본문]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5: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5: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5: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5: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5: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묵상]
현실: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이야기는 이전과 다르게 예수님께서 베데스데라는 연못을 찾아갑니다. 이곳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중에 양문(sheep gate)이란 곳인데 성전의 가장 북동쪽에 자리합니다. 그곳에 수많은 병자들이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있습니다. 보지 못하는 맹인, 걷지 못하는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있었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오직 못이 솟아오를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때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치유를 받는다는 전설이 내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못이 솟구치기를 기다렸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곳에 찾아가셨습니다.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누군가를 찾아가 치유하신 적은 거의 없습니다. 희귀한 치유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베데스다 연못의 사건입니다. 이들은 철저히 버려지고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소망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단 하나 우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이들은 모습을 보면 인류의 역사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희망도 소망도 없이 사망과 죽음의 때를 기다리는 이들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직 우연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습니다. 우연 조차도 경쟁해야 하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입니다. 주님은 죽어가는 그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이 오신 목적이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 마 4:23-2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주님은 오늘도 절망과 죽음이 드리워진 곳으로 찾아오십니다. 흐느껴 우는 우리에게, 슬픔의 잠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자비의 집이라 하지만 그곳에서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진정한 자비이신 예수님이 그곳에 찾아오셨습니다.
갈망: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그곳에서 삼십팔 년 병자를 보십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입니다. 38년 동안 그는 무엇을 살았을까요? 네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나이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매우 어렸을 때부터 아팠음이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건강한 몸으로 걷고 뛰고 달릴 때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낫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건강한 다리로 이리저리 여행 다닐 때 그는 한 곳에서 고목처럼 주저앉아 물 이동하기만 기다렸습니다. 물이 일 년에 몇 번이나 동할까요? 몇 개월에 한 번씩 동할까요? 알 수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장 먼저 그 못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그곳에 있었겠지요. 지금까지 수많은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고 아직도 패자의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리지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바람에 자신은 아직도 그렇게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단지 낫고 싶은 마음, 갈망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를 물었지만 그는 뜻밖에 자신이 낫지 못하는 이유를 변명합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절망이 들립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살고자 하는 욕망을 다시 일깨웁니다. 절망에 잠식된 이 병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도 망각했습니다. 그는 주변을 보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처리를 비관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변명 너머에서 들리는 희미한 그의 '네 낫고 싶습니다'라는 깊은 치유에 대한 갈망을 듣습니다.
퇴보: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주님은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가라'하십니다. 그는 곧 일어나 걷게 됩니다. 그런데 곧바로 이상한 말이 들립니다.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오늘은 안식일인데 왜 자리를 들고 가느냐? 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말에 두 가지 큰 왜곡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는 안식일에 대한 오해입니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경(모세오경)에 기록되지 않은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전통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전통이 진리는 아닙니다. 두 번째들의 사람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교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38년 된 병자가 치유를 받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율법?을 어긴 것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잘못된 교조주의 빠지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교단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말입니다. 나의 신앙 방식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을 비판합니다. 물론 어떤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몇이나 있을까요? 또한 내가 비판하는 기준이 뭘까요? 우리는 종종 진리가 아닌 자신의 습관과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타인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과 왜곡은 살인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책망하자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자리를 들로 가라고 했다고 말합니다. 후에 예수님께서 만나 그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말라 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곧바로 유대인들에게 달려가 자신을 고쳐준 사람을 예수라고 고발합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찾아갔고 고쳐 주셨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이 배신을 당하는 장면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심각한 퇴보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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