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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츠빙글리 신학 / 주도홍 외 10명 / 세움북스

샤마임 2019.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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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츠빙글리 신학

주도홍 외 10명 / 세움북스

츠빙글리-세움북스세움북스, 한 권으로 읽는 츠빙글리 신학,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대회


오직 성경으로, 개혁신학의 토대를 놓은 츠빙글리 입문서

 

주도홍 교수의 머리말을 읽으며 부끄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리는 종종 종교개혁을 루터와 연결시킨다.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종교개혁은 루터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루터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맞지만, 루터를 온전한 종교개혁가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칼뱅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개혁주의 신학과 종교개혁이 열매 맺기 때문이다. 칼뱅의 신학을 제대로 알려면 그의 기독교 강요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종교개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 강요는 루터의 신학보다는 츠빙글리 신학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칼뱅이 츠빙글리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다른 논문들을 참조해야겠지만, 적어도 칼뱅의 신학은 츠빙글리의 신학과 대부분 맥을 같이하며, 개혁신학의 토대를 이루었다는 점에서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칼뱅은 루터가 아닌 츠빙글리에 더 가깝다. 더욱이 우리는 루터교가 아니라 개혁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장로교가 아닌가. 그런데 부끄럽게도 종교개혁은 곧 루터로 고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츠빙글리에 대한 글은 거의 읽어 본 적이 없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면, 츠빙글리에 관한 책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츠빙글리와 관련된 책은 교회사 책과 W.P.스티븐스가 저술한 <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대한기독교서회, 2007)뿐이다. 츠빙글리에 대한 무관심이 어디 필자뿐일까? 현재 검색되는 츠빙글리 관련 서적은 모두 합해도 스무 권이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며 루터는 셀 수도 없다. 츠빙글리의 일차문헌은 2014년부터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출간된 <츠빙글리 저자 선집>뿐이고, 그 외는 모두 2차 문헌들이다. 개혁교회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주면서도 진작 우리는 츠빙글리를 읽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세움북스에서 개혁교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츠빙글리 시리즈를 출간한 것을 높이 사고 싶다.

 

츠빙글리 시리즈의 첫 책인 이 책은 11명의 저자들이 한 장씩 나누어 츠빙글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전반부는 츠빙글리의 저작들을 살피면서, 그의 신학과 성경관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후반부는 5가지의 주제로 엮어진 논문들이다. 대회장인 주도홍 목사는 책을 시작하면서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을 기고했다. 다양한 츠빙글리의 모습이 있지만, ‘나는 루터적이 아니라 복음적이다라는 말과 성경은 스스로가 해석한다’(32)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루터적이 아니란 말은 츠빙글리가 루터와 교우하기는 했지만 루터의 가르침을 통해 복음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츠빙글리는 독자적이며, 독립적으로 복음에 바로섰다. 그가 아무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루터와 무관함 곧 독자성’(21)을 갖는다는 뜻이다.

 

츠빙글리의 개혁의 정체성는 그가 1523129일 취리히 시 의화와 600명의 참석들에게 발표한 67조에 담겨있다. 강경림은 67조항을 개혁파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선언서로 보며 이렇게 말한다.

 

츠빙글리의 67개 조항그의 개혁 신학의 최초의 요약이요, 개혁파 종교개혁 사상을 드러낸 첫 신앙고백서요. 선언서요, 로마 교황주의에 대한 선전포고문이요, 교황주의자들과의 전투를 위한 일종의 출정가로서, 그것으로 스위스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게 한 중요한 문서이기 때문에, 개혁교회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에 맞추어 이것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35)

 

츠빙글리에 대해 스위스 개혁교회의 첫 단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칼뱅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완성한 것을 시작한 인물’(35)이라는 김경림의 서술은 옳다. 만약 츠빙글리가 없었다면 칼뱅의 기독교 강요나 개혁교회의 시작은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신학적으로 모든 면이 앞섰다 말할 수 없으나 츠빙글리가 정치적으로 루터보다 앞설 수 있었던 것은 공화제 지지자인 이유도 있으며, 스위스라는 독특한 지리적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가 발표한 67개 조항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 교리를 지지한다. 루터와 츠빙글리간의 아디아포라 (adiaphora) 논쟁은 두 사람을 너머 두 갈래의 종교개혁의 갈래를 보여준다. 루터는 수동적 복종에 머물며 성경이 하지 말라고 명백하게 금지하지 않는 것은 해도 된다고 보았다. 반면, 츠빙글리는 비록 명백히 하지 말라는 금지가 없어도 성경의 원리에 의해 잘못된 것이라면 개혁의 대상으로 보았다. 칼뱅도 츠빙글리의 주장에 대부분 동의한다. 두 사람의 개혁성향은 모든 것을 혁명적으로 바꾸기 원했던 재침례파에 대한 견해에서 명백해 진다. 보수적이며 권위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루터가 재침례파에게서 등을 돌리고 오히려 공격한다. 이승구는 츠빙글리가 바른 종교와 거짓된 종교를 구별하여 제시한 공헌을 했다고 칭송한다. 츠빙글리가 말하는 두 종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요약하면 말하자면, 참된 종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일하는 대로 하는 종교이고, 거짓된 종교는 삼위일체와 관련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을 많이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공부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믿는 내용과 예배하는 것과 교회의 제도들과 사회와 국가의 삶을 사는 것을 강조하면, 최소한으로라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츠빙글리가 말하는 참된 종교이다.”(157-8)

 

츠빙글리는 집요할 만큼 성경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았다. 김재성은 취리히 대성당에 취임한 츠빙글리가 절기를 따라 전통 본문을 다루는 가톨릭과 다르게 마태복음을 순서대로 강해하기 시작한 점을 지적한다. 스위스의 교회가 이 날을 기점으로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기점으로 삼는 이유다. 츠빙글리가 생각한 교회 개혁의 본질은 성경을 가르치는 일’(174)이기 때문이다. 츠빙글리는 성경을 제대로 앎으로 신앙과 삶이 성경이 말하는 원리에 입각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상징설로 이해되는 성만찬론도 그의 성경관으로 인해 발전된 관점이다. 그는 확실히 알렉산드리아파가 아니라 안디옥파였다. 심지어 재침례파와 유아세례 논쟁에서도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구약의 유아들이 할례를 받은 것처럼 신약의 유아들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전적인 우선권을 가지고 그의 자녀들과 언약을 맺는 상징’(184)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는 저자들이 함께했기 때문에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은 츠빙글리를 이해하는 풍성함을 제공한다. 아직 단 한 권도 츠빙글리에 대한 책을 읽지 못한 필자에게 이 책은 그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도전과 포괄적인 이해를 가져다주었다는 위로를 동시에 준다. 츠빙글리를 읽지 못했다면 아직 칼뱅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2차 문헌으로 몇 페이지만으로 츠빙글리를 읽었던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한 권으로 읽는 츠빙글리의 신학
국내도서
저자 : 주도홍,이은선(Eun Seon LEE),박찬호,강경림,이승구
출판 : 세움북스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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