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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28-37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

샤마임 202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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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28-37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본문]

  • 요한복음 11: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 요한복음 11: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 요한복음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 요한복음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 요한복음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 요한복음 11: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 요한복음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요한복음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 요한복음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 요한복음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묵상]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곧장 예수님께 나갑니다. 그런데 사람들도 곡하러 가는 줄 알고 따라갑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자 엎드려 절을 합니다. 발 앞에 엎드린다는 표현은 왕에게 드리는 경배의 모습니다. 뭔가 조금 이상해 보입니다. 공생이 기간 동안 예수님께 이러한 절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경배는 진정한 경배가 아닌 슬픔의 표시임이 드러납니다. 마리아는 엎드려 통곡을 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여기에 계셨다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마리아의 눈물은 절망의 눈물, 비참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하지만 예수님께서 도와주면 더 연기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원망이 서려 있습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비통히 여기다'(ἐμβριμάομαι)는 '(엄하게) 훈계하다' '분노하다' '(흥분하여) 씩씩 거리다'라는 뜻입니다. 화가 잔뜩 나서 콧바람이 새어 나오는 행동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큰 감동을 받다'는 뜻이지만 부정적으로 사용되면 '분노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마리아의 눈물과 유대인들의 눈물을 보며 큰 흥분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흥분을 무엇을 말할까요? 

'긍휼히 여기다'(ταράσσω) 도 비통히 여기다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요하다 요동치다 걱정하다 고통을 당하다는 복잡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들을 모습을 통해 인류가 가진 절망적인 상태를 봅니다. 그 비통은 인간들의 불신이기도 하지만,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절망이었고, 그 절망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시고  심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예수님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십니다. 성경에 딱 두 번 등장하는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한 번은 예루살렘을 보시며 웁니다.(눅 19:41) 사람들은 수군거립니다. 한 부류는 그가 나사렛의 죽음을 슬퍼해서 운다. 그가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측은지심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부류는 다르게 말한다. 그가 맹인의 눈을 뜨게 하면서 왜 나사로는 죽게 놔뒀는가? 말은 다르지만 결론 하나입니다. 결국 나사로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마무리

주님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인간에 대한 긍휼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불신입니다. 불신은 예수님을 믿지 못함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어리석은 일로 확장됩니다. 무지는 불신이며, 불신은 다시 무지를 낳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함으로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도록 하게 하지 않는지요? 문득 제 자신이 그렇지 않는가 되돌아보게 합니다.

 

 


매일 성경 2022년 2월 묵상 본문

매일성경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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