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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17-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샤마임 2022.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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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묵상 2022년 2월 6일 주일 본문.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앞으로 가서 나사로를 부르사 죽은 지 사흘이 된 나사로가 살아가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7가지 표적 중 마지막 표적으로 불리는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1:17-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본문]

  • 요한복음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 요한복음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 요한복음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 요한복음 11: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 요한복음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 요한복음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 요한복음 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 요한복음 11: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요한복음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한복음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묵상]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아마도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서 사흘은 자주 등장하지만 나흘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납니다. 거의 유일한 나흘에 대한 언급은 절대적으로 가망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나흘을 통해 절대 살 수 없는 시간임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실 앞에서 우리의 신앙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사실이 진리가 아님에도 사실이 우리를 지배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을 만드시는 분이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나흘이지만, 이미 죽었지만 절망은 이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예수님을 본 마르다는 보자마자 주님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건 분명 원망입니다. 하지만 만약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구하면 들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마르다의 모습을 보면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기적을 행하심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의도적으로 지체하셨고, 결국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곧바로 오셨더라도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꼭 오셔야 할까요? 아닙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처럼 말씀으로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뭔가를 하지 않으신 것을 더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단도하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십니다. 다시, 정말 다시 살아나십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마지막 날'로 미룹니다. 종말에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의도보다는 나의 이성과 경험, 그리고 내가 아는 성경 지식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종말의 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 살려 낼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기는 사건입니다. 주님을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죽지 아니하십니다. 성도들도 다시 부활할 때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자 우리의 소망입니다. 부활은 죄를 통해 들어온 죽음을 이기는 거대한 사건입니다.

 

마무리

주님은 일부러 지체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주님이 답답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알 수 없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러갑니다.

  •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나님은 듣지 않으심으로 들으시고, 지체하심으로 가장 빠르게 일하십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인내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다시 주님께 간구하오니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매일 성경 2022년 2월 묵상 본문

매일성경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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