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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8. 4:14-20 빌립보 교회의 특별한 섬김

샤마임 2019.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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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4:14-20 빌립보 교회의 특별한 섬김

 

1. 말씀 읽기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 묵상

 

앞선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의 어떠한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했는지 고백했습니다. 그의 사역 속에는 위기와 축복이 동시에 공존했습니다. 바울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족이었습니다. 자족이란 무심하고 무딘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울 때 나의 힘으로, 나의 소유로 돕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자만하지 않으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이것 또한 돕는 자가 배워야할 자족입니다. 이제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왔던 빌립보교회를 칭찬합니다. 이 본문이 중요한 것은 이제 이 말을 하고 편지를 마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자신의 마음속에 담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 사역에 동참했던 빌립보교회를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감동시킨 빌립보교회의 도움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1) 괴로움에 참여함

 

바울은 비록 자신이 자족하는 마음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상황과 여건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고픔을 견디어야 했고, 모욕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기쁨과 섬김도 있었지만 여전히 힘듭니다. 자족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상황이 주는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는 소망의 인내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을 볼 때, 믿음으로 승리할 거야. 하나님께서 도우실 거야. 라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아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관계가 진정한 한 몸의 공동체입니다빌립보교회는 바울의 괴로움에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자신들의 소유를 나누었고, 시간을 내어 바울을 찾아 위로했습니다.

 

복음의 시초’(15)는 빌립보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입니다.(, 10) 그 어떤 교회도 바울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빌립보교회만이 바울을 도왔고, 복음에 정진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소유를 아까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시초(ἐν ρχτοεαγγελίου)라는 문맥 속에는 빌립보 교회의 사역이 얼마나 자신에게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선교여행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시초(ἀρχῇ)라고 표현함으로 빌립보 교회에 대한 애착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에 오기 전에 14년 정도 복음을 전하며 살았습니다. 시리아와 길리기아(1:18-2:1)와 구브로와 갈라디아(13-14)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바울이 마케도니아에 오기 전까지 제대로 된 복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으로 봅니다. 사도행전 13-14장에 의하면 바울은 바나바와 동행하기를 했지만 주도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케도니아에 오면서 본격적인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추론해 본다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낳은 첫 영적인 교회였던 것입니다.

 

2) 자주 그리고 찾아가서

 

빌립보 교회의 도움은 한 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두 번’(16)이나 도왔다고 강조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의하면 바울은 루디아의 집에 거하였고, 잠시 동안 빌립보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사건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곧바로 실라와 복음을 전하다 점치는 여인의 귀신을 내쫓아 주다 옥에 갇히게 됩니다. 감옥에서 나온 두 사람은 루디아의 집에 들러 형제들과 인사하고 곧바로 빌립보를 떠납니다.

 

16: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빌립보를 떠난 두 사람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다 데살로니가에 이릅니다. 유대인의 회인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이 얼마 동안 데살로니가에 머물렀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세 안식일’(17:2) 동안은 그곳에 머물렀던 것은 확실합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반대에 봉착합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 의해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17:6)이었고, 가이사의 명을 거역할 뿐 아니라 다른 왕 예수’(17:7)를 전하는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결국 회당장 야손이 포악한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을 당하게 되고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자 숨지 않고 두 번이나 찾아가 바울을 도왔던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회는 표현하기 힘든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잊지 않고 이곳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긴밀한 관계가 어떠했는지 제랄드 호돈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자시기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필요한 것들을 그들이 보내 준 사실을 그들 역시 알고 있다는 점을 상시시켜 준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그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쏟았던 무한한 관심과, 바울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과 바울이 선포한 복음의 진보를 위한 그들의 노력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바울이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고 난 후 그 곳을 떠났을 때에도 자신의 사역을 계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빌립보에서 가까운 데살로니가로 갔기 때문이었다. 빌립보 교인들은 하나의 교회를 이루자마자, 즉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그가 재정적인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WBC 빌립보서)

 

복음을 전할 때 빌립보 교회와 같은 교회의 지원을 받는다면 그 선교사는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바울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을 위해 기꺼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움은 흔치 않은 것이었고,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16절에서 사용된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καὶ ἅπαξ καδς)는 두 번만을 의미하지 않고, 한 번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짐을 덜기 위해 요식행위만으로 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바울을 도운 것입니다. 이러한 빌립보 교회의 모습을 통해 복음 사역에 집중하는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3) 또 다른 선물

 

영적인 것을 심는 자는 육적인 것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결코 자신이 선물’(17)을 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바울의 마음은 그들이 보내온 선물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내온 선물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거절합니다. 분명 옳아 보이는 것이지만, 어떤 면에서 이러한 거부는 그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막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소유가 풍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내 소유가 풍족함에도 다른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그들이 보내온 선물이 이미 풍족함에도 거절하지 않고, 그로 인해 그들을 축복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들의 선물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18)이며, 그로인해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것을 채우시리라’(19)고 축복합니다. 바울은 타인의 도움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줍니다. 때로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고 열등한 물건을 보내온다고 비판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나쁜 것이며,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목회자의 필요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섬기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십니다. 그로 인해 섬기는 자들에게 채워주심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학습의 기회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나 목회자는 필요에 의해서만 도움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들의 필요을 채울 것임을 선언합니다.

 

나가면서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해서 다른 교회에 비히 특출한 섬김을 행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섬김은 주변 교회들의 모범과 자랑거리였습니다. 분란과 시기가 교회 안에 팽해했음에도 바울은 비판과 책망으로 일관하지 않고 그들의 좋은 점과 특출한 섬김의 행위를 칭찬합니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모습으로 상대를 판단하기 쉽습니다. 이전의 좋았던 일, 아름다운 일들을 회상하여 칭찬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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