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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들, 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눅 24:13-35)

샤마임 2019.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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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눅 24:13-35)

[성경 본문]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

[묵상]

이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눅 24:13-35) 그들은 부활한 주님의 두 번째 증인들입니다. 첫 번째 증인들은 무덤에서 예수님을 만난 막다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입니다. 누가에 의하면 이들은 첫 번째 증인들인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흘째’라는 날짜를 통해 그날이 안식 후 첫날, 즉 부활 당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눅 24:19-24)

이 구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포착합니다. 먼저는 제자들이 생각한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19절)였습니다. 또 하나는 그들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뭔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들이 바란 예수님이 죽었고, 여인들이 천사를 보았고, 심지어 다른 제가 가서 여인들의 이야기를 확인했지만 예수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일이 오늘, 새벽에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정말 의아한 것은 자신들이 믿었던 선생의 시체가 사라졌는데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연히 실망한 마음을 가득 담고 엠마오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좀더 나아가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더디 믿는다고 책망합니다. 구약의 어느 선지자가 예언을 했는지 논의해야겠지만 여기서는 넘어가겠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그들에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이 예수님 자신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세히 풀어줍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영광’입니다. 문맥상 이 단어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귀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조셉 A. 피츠마이어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문자적으로 ‘그리고 .. 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누가복음 9:26은 ‘영광’이 ‘메시아’ 혹은 ‘인자’인 예수님의 신분 상태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가 이미 하늘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영광’은 구약에서 여호와의 임재와 연결된 화려한 광채를 나타내며 종말론적 개념마저 내포되어 있다. ... 여기서 ‘영광’은 아버지께 이동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의 운명이 끝에 도달한 것이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대화하는 동안에도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 신분에 ‘이미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는 ‘영광’ 안에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그들에게 나타난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고난을 받아야 했듯이 제자들 역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고난을 당해야 한다.”

이곳에 드러난 신학적 주제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아이며, 고난을 통과하여 영광에 들어갈 것입니다. 또한 그 고난에 제자들이 반드시 동참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이후 그들은 예수님을 초대하고, 성만찬을 행하십니다. 우리는 30절의 서술 방식이 사도행전의 성만찬 행위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순절이 임한 후, 제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합니다.(행 2:42) 우리는 성만찬이 제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성만찬 사건을 곧바로 구약의 ‘언약의 피’로 소급(遡及)시킵니다.(눅 22:20) 누가는 십자가 사건 이전과 이후의 성만찬을 삽입하여 대칭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유월절의 떡을 예수님 자신과 동일시 한다는 피츠마이어의 주장은 확실히 옳습니다.

두 제자와 함께한 사건은 기이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떡을 떼는 사건은 그들의 닫힌 눈이 열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초반에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눅 24:16)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떡을 떼어 주실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눅 24:31) 보았습니다. 떡을 뗌이 주님의 십자가의 속죄 사역과 연결된다면, 그로 인해 제자들의 눈이 밝아진 죄사함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 파괴 후, 유대인들은 물었습니다. 어떻게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가? 이 놀랍고도 적절한 질문에 누가는 ‘예수님의 성만찬’으로 응답합니다. 즉 이제는(성전 파괴 이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제의를 대신하고, 그것을 기념하는 성만찬으로 인해 속죄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하고 축귀하는 사건들을 통해 확증해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죽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갔던 두 제자와 함께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임스 던은 엠마오 성만찬에 사건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예수가 성서를 설명해주는 이야기(24:27)는 부활 후 첫 제자 집단 내에서 오로지 부활에 의해서만 그들이 그때까지 눈멀어 있었던 성서의 예언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초기의 깨달음을 반영하는 것 같다. 또한 그 에피소드는 첫 제자들이 예수의 지속적인 현존을 인지하게 된 것 바로 떡을 떼는 행위에서였음을 반영하는 듯하다. 단지 예수의 이전 식탁 교제의 회상으로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서 예수가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기념하는 가운데 그 깨달음이 가능했을 터이다. 그것은 누가뿐 아니라 요한도 강조하는 부활 현현의 특징이다.”

엠마오 동행이 말하고 싶은 것은 분명합니다. 성만찬 사건을 통해 그들의 눈이 밝아지 것이며, 예수님께서 임재하고 계심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만찬은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전제하며, 그로인해 죄사함이 가능해졌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말합니다. 누가는 엠마오 동행 사건을 통해 아직도 구약 전통에 얽매인 체 예수께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새로운 언약 안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증인에게 가보겠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이 전자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요소와 부활의 신학적 의미까지 추가했습니다.]

 

부활의 증인들

부활의 증인들

정현욱

성경에 나타난 부활의 목격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처음 부활의 증인들을 개략적으로 살피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부활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단 부활의 증인들을 정리했고, 그 후에 증인에 대한 사건 기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책 소개

성경에 나타난 부활의 목격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처음 부활의 증인들을 개략적으로 살피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부활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일단 부활의 증인들을 정리했고, 그 후에 증인에 대한 사건 기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추가했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니 전승에 관련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곳까지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먼 여행인듯하여 초대교회가 갖는 증인과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한국 기독교는 십자가에 과하게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십자가도 중요하지만 교회 존립여부와 목적이 ‘부활을 증언하는 일’ 즉 전도와 선교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교가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핍박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부활은 미래에 대한 소망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부활은 그들의 삶의 지표가 되어 분명한 환상 가운데 다시 부활의 주님처럼 일어설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말대로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였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죽음과 부활은 악한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자 존재방식이 분명합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기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Ⅰ. 부활의 증인들
1. 증인에 대한 이해
2. 복음서의 증인들
3. 사도행전과 그 외의 증인들 

Ⅱ. 부활의 증인들의 행적과 의미 
1. 전제 
2. 부활 후 제자들의 이야기 
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눅 24:13-35) 
2) 예루살렘의 제자들(눅 24:36-49, 요 20:19-23) 
3) 디두모라 하는 도마(요 20:24-29) 
4) 갈릴리 해변가의 조식만찬(요 21:1-23) 
5) 부활의 예수, 바울을 찾아가다.(행 9:1-19) 
[신약 난제] 가시채를 뒷발질하기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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