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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성전을 향해 기도한다면

샤마임 2011.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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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성전을 향해 기도한다면

정현욱목사 

2011년 6월 12일  
신평로교회 주일낮 설교  

 서론

관점이 바꿔야 패러다임이 바뀌듯,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만의 역사 해석의 틀이 있습니다. 그 틀에 의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 놓습니다. 지나온 과거를 추억해보면,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습니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일도 있지만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일들도 있습니다. 기억이란 묘하게도 사랑받은 것보다 상처받은 것을 곧잘 기억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죠. “빌려온 돈은 잘 잊어먹지만, 빌려준 돈은 절대 잊지 못한다” 우리의 인생을 잘 고민해 보면 아픈 경험, 슬픈 경험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압니다. 넘어짐의 아픔이 있어야 일어섬의 기쁨을 알 수 있듯이 전진을 위한 한 발 물러섬도 있는 법입니다.

본론으로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께 봉헌기도를 하는 기도의 일부입니다. 이 기도가 기록된 역대기의 독자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한한 사람들입니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의 유린당하고 성전이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70년이 흘러 유대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희망을 가지고 돌아온 예루살렘은 예전의 예루살렘이 아니었습니다. 다리를 뻗고 잘만한 변변찮은 집도 없고, 화려함과 위엄을 자랑하던 솔로몬 성전도 처참하게 파괴된 체로 그들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아직 포로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체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사람은 상처나 큰 실패를 당하고 나면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긴장을 하고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래서 생긴 속담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백성들의 피폐한 마음을 추스르고 현실로 빨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역대기를 펜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셨고, 하나님은 징계하셨지만 징계 가운데서도 은혜로 성실하게 응답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역대기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인 성전 중심의 신학이요, 제사장 중심의 신학입니다.

역대기 서론부에 나오는 족보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잠재우는 수면제가 아닙니다. 그 이름들은 훗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동참했던 헌신자들의 이름이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이름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이곳에 있는 여러분의 이름이 신평로교회의 부흥 역사의 명단에 올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유대족보 한 가운데 턱하니 자리 잡은 야베스의 기도를 보십시오. 역대상 4:9-10

4: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고통 가운데 태어났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복을 받고 그의 지경이 넓혀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야베스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역대기 기자는 어색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야베스의 기도를 족보 한 가운데 집어넣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복 주시는 그런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하나님 저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이 험난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저를 마음껏 사용하여 주십시오.”

역대기의 중반부는 다윗과 솔로몬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사역은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을 준비하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후반부는 열왕들의 사역으로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실하게 응답하셨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아사왕이 그랬고, 여호사밧왕이 그랬고,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이 그랬습니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들은 기도했고, 하나님은 기적으로 그들을 돌아보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역대기를 마무리하면서 고레스왕의 선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36:22-23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을 건축하라’입니다. 그럼 질문합니다. 왜 성전을 건축해야 합니까?

 

1.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의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6. 내 이름을 거기에 두고…….

20절에도 여시……. 내 이름을 거기에 두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대하 6:20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대하 7:15-16에서도 역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대하 7:15이제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대하] 7:16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소명을 받으며, 바로 그 성전에서 복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의 암흑기로 알려진 사사기를 보십시오. 그 곳에 한 번이라도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말이 나옵니까? 왜 그들이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을까요? 사사기는 성전 신앙이 없습니다. 사사기에 연속적으로 나오는 ‘왕이 없으므로’가 무슨 뜻일까요? 다윗 왕과 같은 그런 왕이 없었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왕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들이 기드온에게 찾아가 우리의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때 기드온이 뭐라고 대답했습니다.

삿 8: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삼상 8:6-8 / 사무엘이 통치할 때 다시 장로들이 찾아왔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 도다

성전은 왕이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사랑과 은혜로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전이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곳에 예배하러 왔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재미난 설교와 이야기로 감동을 받고 돌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왕이신 하나님 앞에 넙죽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통치를 받는 것이 바로 예배 행위입니다. 그러한 예배자들에게 하나님은 나를 예배하는 그곳에 ‘내가 내 이름을 두고’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걸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의 자존심을 걸겠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들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하나님의 결연한 다짐이요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곳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신신하신 약속이 있을 줄 믿습니다.

신평로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주님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곳에서 오셔서 좌정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설 수 있는 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줄 믿습니다.

경건한 성경주해자요 목사였던 메튜헨리는 솔로몬의 마지막 기도를 주해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시고 우리와 우리의 기도를 배척하시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주의 메시야, 주의 그리스이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나오나이다. 주는 항상 그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나이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도 없사오나, 여호와의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영원한 언약의 약속, 즉 다윗에게 주실 확실한 은혜를 일컬어지는 영원한 언약의 약속을 기억하소서.[각주:1]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예배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성실한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2. 성전을 향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 이제 우리는 성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장소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를 이곳에 서게 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왜 우리가 성전을 건축해야 할까요? 즉 예배를 회복해야 할까요?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봉헌 기도를 드리면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응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22-23에서는 어떤 사람이, 24-25에서는 나라가 전쟁할 때, 26-27에서는 하늘이 닫히면, 28-31에서는 기근이 일고, 전염병이 돌고, 흉년이 돌고, 메뚜기와 적국이 쳐들어오고, 재앙과 질병이 있을 때에도 기도하면 응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심지어는 32-33에서는 이방인의 기도까지 응답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을 볼까요? 34-39에서는 적국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끌러갔을 때라도 기도하면 회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것은 모든 상황입니다. 그 어떠한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우리가 먼전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이 먼저 주님께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얄팍한 속임수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세상과 양다리를 걸친 상태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왕이신 하나님 앞에 넙죽 엎드리고 양 손을 들고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솔로몬이 어떤 자세를 취했습니까? 성전을 향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대하] 6:13 솔로몬이 일찍이 놋으로 대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다섯 규빗이요 너비가 다섯 규빗이요 높이가 세 규빗이라 뜰 가운데에 두었더니 그가 그 위에 서서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솔로몬은 성전을 향해 무릎을 꿇고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성전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니다.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 응답에 대한 얼마나 많은 약속들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4:14-16 /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11:6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빌립보서 4:6-7 /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태복음 7:7-8 /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보십시오. 성경 속에 기도응답에 대한 약속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찾으려고 하고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습니다.

‘성전을 향하여’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의지하여’란 뜻입니다. 이곳에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실패와 낙망과 좌절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역전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전심으로 회개하며 주의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다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기업이 회복되고,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고, 분열된 마음이 하나가 되고, 아픈 마음과 병이 회복된 줄 믿습니다. 언제요?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교회가 다시 일어서도록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의지하여 기도한다면 우리가 교회가 다시 크게 부흥할 줄 믿습니다. 새로운 부흥의 역사, 새 창조의 역사가 우리의 교회와 각 부서와 우리의 가정과 일터 위에 일어날 줄 믿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죽어가는 요나였지만 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그는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왕의 어인이 찍힌 줄 알았지만, 성전은 이미 무너지고 없었지만 그래도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그 곳을 향해 기도했던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한 마음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다시 솔로몬처럼 성전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높이 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여 우리를 다시 회복하여 주소서!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7:12-14의 약속을 보십시오. / 7:12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7:13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3. 성전에서 불로서 응답하십니다.

7:1-3을 보니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불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가운데 충만했습니다. 다시 역대기를 읽고 있는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봅시다.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가 놓여질 때, 큰 소리가 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드디어 성전이 세워진다는 기쁨의 환호였고, 다른 한쪽은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니 너무 초라해서 한탄하는 소리였습니다. 어떤 것이 옳을까요? 스룹바벨 성전은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습니다. 초라합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인 여호와의 법궤가 지성소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이건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성전을 지어서 뭐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학개 2:5-82:5 /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2: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중요한 건 성전의 크기나 화려함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법궤도 아닙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상징의 도구일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을 더 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우리는 교회는 많은 분들이 빠져나갔고 작년보다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갔고, 사람은 안 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이 교회 가운데 계신입니다. 신평로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아버지의 약속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초라한 예수님 /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워하기 위해서 보내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사야 선지자는 그에게 우리가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심지어 사람들에게 버려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정말 볼품없고 어리석어 보이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 주님이셨지만 세계를 구원하시고, 온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으며, 새창조의 역사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중요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로 응답하심으로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1. 멘튜헨리, 역대하 주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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