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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17절 예수님의 족보

샤마임 2021.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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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17

1. 묵상 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복음의 시작은 선포입니다. 예수는 다윗 왕의 후손이며, 이스라엘의 시작인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있게 될 모든 예수라는 인물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한글 성경은 ‘계보’라고 표현했지만 헬라어는 ‘비블로스’로 두루마리 책을 말합니다. 비블로스는 ‘기록된’이란 의미도 내포합니다. 기록되었다는 말은 이미 증거 된 사실을 말합니다. 마태는 이 표현을 통해 예수는 갑작스럽게 출몰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준비되었으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땅에 오신 ‘사건’ 임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때가차매 이 땅에 보내심으로 구원하신 것이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은 영원에서 영원에 이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다윗 왕을 낳으니라.”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시작이며, 다윗은 다윗 왕가의 시작입니다. 셈의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끊임없이 반역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심으로 새로운 ‘한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은혜의 나라이며,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는 믿음의 나라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혈혈단신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믿음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충성' 그 자체입니다. 이것을 예수께서 얼마나 큰 충성된 삶을 보여주시는 가를 보여주려는 명백한 의도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작고 미미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으로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다시 야곱을 낳았고,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 때에 애굽으로 내려가 430년 보내고 망각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지만 결국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족보는 암울한 역사의 시대를 뚫고 하나님의 보존하심의 은혜로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다윗의 시작도 역사적 우연 속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을 사울의 왕이 아닌 다윗을 선택했습니다. 다윗은 형제들에게도 무시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의 장수가 못한 골리앗을 죽였으며,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에 언약하지 않고 다윗에게 언약하심으로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했습니다. 그 나라가 이제 시작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숨겨야 할 사건입니다. 다윗은 왕이면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왕궁을 거닐 때 자신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는 음욕에 사로잡혔고, 결국 충신 우리야를 전장에 내보내 죽게 합니다. 놀랍게도 우리야는 헷 족속이었습니다.(삼하 11:6) 멸망받아야 할 헷 족속은 충성했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요 왕이었던 다윗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역치(易置)가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를 통해 다시 받았고, 그의 아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허물 많은 다윗이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은, 솔로몬은 르보호함을... 후손을 낳음으로 역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치지 않고 계속됩니다. 모든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때로는 교만하고 불순종한 삶을 살아가는 왕들도 있지만, 때로는 히스기야와 요시아처럼 하나님께 붙들린 왕들이 태어나기도 합니다. 모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택하신 백성들을 붙드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바벨론으로 잡혀 간 후에...”

역사의 전과정속에서 함께 하나님을 발견한다. 타인의 삶은 평화로워 보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있어도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도 모르는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의 삶에는 생채기가 여기저기 남겨져 있습니다. 예수의 족보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아브라함과 다윗의 삶은 순조롭기만 한 지중해의 돛단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조상은 역사 속에 있었고, 사건과 재해 속을 지나왔습니다. 그곳에 기근이 있고, 고난이 있으며, 전쟁이 있고, 살육과 이주, 포로 생활과 노예의 삶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초역사적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면제해 주지 않으십니다. 역사와 함께 아파하고, 시대와 함께 고뇌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미래의 소망을 놓지 않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바벨론의 포로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육신적 포로가 아니더라도 영적, 심적으로 시대의 포로가 되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며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상에 항거(抗拒)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낳고... 낳고... 낳고...”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경에서 사라집니다. 학개나 말라기는 포로 이후 재건 운동을 그리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400년의 긴 침묵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역사는 쉬지 않습니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난 두 아이가 로마를 시작했고, 전쟁의 신으로 불리는 마케도니아 필립 왕의 아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쉬지 않고 역사를 관통하여 흐릅니다. 다윗의 자손들은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다시 또 다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뒤편에 숨어 생물학적 본능에 따라 다윗의 자손들을 지켜 내셨습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만, 역사의 주인으로서 구속의 드라마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2. 묵상 글 적기

*이곳은 본문을 읽고 묵상한 다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적는 공간입니다.
1) 자신의 삶을 정의해 보십시오.
2) 인생의 변곡점(변화가 있었던 시간이나 사건)은 무엇이고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3)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생각한 적은 언제입니까?

 

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을 정경학적 관점에서 주해하고 강해한 것입니다. 기존의 글을 수정 보완하고 있어서 미완성의 글입니다. 시간되는대로 계속하여 수정해 나갑니다. 마태복음 연구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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