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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성경묵상

[빌립보서] 4. 1:27-30 복음에 합당한 생활

by 하늘땅소망 2018. 9. 16.

[빌립보서] 4. 1:27-30 복음에 합당한 생활

 

1. 말씀 읽기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2. 묵상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오늘 본문에 딱 들어맞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세계를 지배했던 알렉산더 대왕에게 자신과 동일한 부하가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가진 병사는 부대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식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들려왔다. 언젠가는 한 번 충고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어느 날 그 병사가 알렉산더 대왕을 찾아왔습니다.

 

자네가 나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알렉산더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사령관으로서 너에게 두 가지를 명하겠다.

하나는 너의 이름을 바꿔라. 만약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너의 삶을 바꿔라. 그리하여 나의 이름에 누가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인은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聖徒)라는 별칭을 주셨습니다. 거룩한 무리인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짊어진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에 걸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제 바울은 복음이 전파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한 다음,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할 것인가 설명합니다.

 

1) 복음에 합당한 그리스도인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복음이 말하는 삶입니다. 한글성경은 축소된 채로 번역되었습니다. 서두에 바울은 너희는 하늘의 시민권자답게 살아야 한다’(you must live as citizens of heaven : NLT)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민권자의 삶은 곧 복음에 합당한 삶(in a manner worthy of the Good News about Christ. : NLT)입니다. 로마의 시민인 것은 유난한 자랑스러워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 답게살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로마 시민은 로마 시민다운 삶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있습니다. ‘합당하게의 헬라어는 아시오(ἀξίως)’‘~이 되다’ ‘~과 일치하는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로마 시민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로마시민 답게 행동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일치시키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바울은 곧바로 그것을 설명합니다.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27-28) 일입니다.

 

. 한 마음과 한 뜻

 

마음(프뉴마티 πνεύματι)과 뜻(푸쉬케 ψυχῇ)은 동일한 의미를 반복하는 것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후반부에 다시 권면하지만 빌립보 교회는 파가 갈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의 첫 번째 원칙은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 두려워하지 않는 것

 

복음이 확장되면서 기독교는 점점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무시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닌 것입니다. 성장은 좋은 것이지만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주변 사람들은 기독교를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적의를 가지고 대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하여 핍박했습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알렉 모티어는 예수님의 기도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 세상으로 ... 믿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을 때, ... 슬프게도 우리는 지역 교회 공동체들의 분열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며, 전 세계적인 분열을 표준으로 받아들인다. 그러고도 대체 왜 교회가 그에 반대하는 세상에게 계속 밀리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용기를 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공동체가 있다면 더욱 큰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핍박 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같이 아파하고, 고난 가운데 서로 위로한다면 분명 두려움은 축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마음과 용기를 내는 것은 별개의 것이 교회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는 공동체의 숙제입니다.

 

교인(churchman)은 기능적 역할만으로 충분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christian)은 기능을 너머 존재론적으로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명이고, 인내이며, 변혁의 주체로서 감당해야할 소명입니다. 복음에 합당할 삶,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존재 자체가 사명과 소명을 전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마음이 갈린다면 세상에 대한 사명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2) 복음의 기능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한 다음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28절 하반절은 복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ἥτις) 저들에게는 멸망의 증거다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다.

 

증거(ἔνδειξις)’라는 단어는 다른 곳에서 세우다’(3:25) 또는 나타내다’(3:26)로 번역됩니다. 공적으로 무엇인가를 나타내고 확증할 때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복음은 저들에게 멸망을 확증한다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물론 너희는 구원을 확증한다가 될 것입니다. 복음은 양날선 검처럼 한쪽으로는 심판을, 다른 한쪽으로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마치 빛이 비췸으로 모든 것들을 구분하고 명확하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이 갖는 독특성으로 인해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동시에 심판하는 복음전도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악감정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평화를 깨고 참된 평안을 주려는 복음은 거짓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조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 고난 받는 삶입니다. 29절은 이것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과 고난은 ‘or’이 아니라 ‘and’입니다. 믿는 자들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고난이 누락된 체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믿음을 전제하는 동시에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인내를 요구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은혜도 받고,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분명히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3:10) 하고자 그의 죽으심을 본받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부활 이전의 모욕과 수치, 채찍질과 비웃음, 조롱과 죽음을 모두 경험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부활할 수 없습니다.

 

3) 고난에 동참하라


마지막 권면은 고난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빌립보는 바울에게 있어 고통의 장소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까닭도 없이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16) 바울은 실라와 함께 옥에 갇혔지만 슬퍼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들의 찬송으로 인해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복음의 한 구절을 간수에게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터널이 아닙니다. 잠시 스쳐가는 과정이 아니라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입니다. 이제 그 고난이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30)으로 현실화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미 그 고난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난을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고난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선물(카리스)입니다. 고난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표지입니다.


나가면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천국의 시민권자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로마 시민권자가 로마의 법에 순종하고, 시민권자로서 갖는 명예를 자랑스러워하듯이 복음에 합당한 자들 역시 그래야 합니다. 복음이 요구하는 삶에 순종해야 합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이 갖는 특징을 잘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세상을 심판하면서 회개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확증합니다. 거짓에 안주하는 자들은 복음 전도자들을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야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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