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Lewis 'The Pilgrim's Regress' 순례자의 귀향
C. S. Lewis
'The Pilgrim's Regress' 순례자의 귀향
“나는 한 소년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루이스는 첫 문장을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서 빌려 왔다. 심지어 제목조차 비슷하다. 내용은 어떤가. 구체적인 대상과 표현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그대로 닮아있다. 존이라는 사람이 꿈결처럼 보이는 ‘섬’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존의 순례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314쪽)다. 부제에도 언급했지만, 루이스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영적 순례를 보며주며, 궁극적으로 기독교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레고리적 비유를 통해 보여준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두 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역자(譯者)의 소견대로 ‘회심과 감격의 젊은 날의 혈기와 솟아오르는 영감이 뒤엉켜 2주 만에 써내려간 작품’(317쪽)이기 때문이다. 즉 풋과일인 셈이다. 독자를 배려한 쉼표가 거의 없다. 문학적 기절을 충분히 살린 덕에 인물명이나 지명자체가 해독 불가능한 곳이 적지 않다. 저자가 후기에 어느 정도 설명하고 재판되어 나오면서 각주를 달아 놓기는 했지만 단편적 지식만으로 인문학 고전의 산을 넘기에 벅차다.
두 번째 난관(難關)은 지도가 없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한글 번역판에도 영문 지도를 삽입해 두기를 했지만 어렵기는 마찬 가지다. 필자도 한 참을 들여다보며 지형을 찾아냈지만 쉽지 않았다. 좀 더 친절한 순례지도가 필요할 듯싶다. 이 모든 어려움은 첫 작품이란 이유에 면죄부를 주어도 될 성 싶다. 이후에 나오는 책은 더 다듬어지고 여유가 있으니 말이다.
한 번 읽을 책이 아니다. 어렵다는 말은 독자의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저자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다. 배울 점이 많다는 말이다. 뻔한 책을 두 번 읽지 않을 것이다. 이해가 어렵고 논지가 명징(明澄)하지 못하다면 다시 읽으면 될 일이다. 지루한 논쟁이 오가는 부분이 적지 않다. 초기의 작품이라 그런지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풀어내지 못하고 인물들의 대화로 자신의 사유를 대변한다. 긴 논쟁과 대화는 약간의 지루함을 주고 속도감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유익은 많다. 먼저, 문학을 사용하여 기독교변증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종교개혁 이후 중세적 이미지를 거부하고(성상파괴운동), 오로지 음성과 텍스트의 딱딱한 변증만을 고집했다. 차별과 구별을 통해 다른 점을 강조하는 텍스트적 변증은 수많은 분파와 교리적 분쟁으로 귀결(歸結)된다. 변증이 아닌 싸움이 되어 버렸다. 문학적 변증을 통해 인간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으려는 관점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루이스의 부활을 환영하며, ‘믿음의 삶에서 이야기와 상상력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그들의 안내자로 루이스를 찾게 되었다.’(맥그라스, C. S. Lewis, p478)고 말한다. 루이스는 스스로 성공회에 속한 평신도로 자체했지만 교리논쟁에 있어서 그 어떤 변증이나 논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다시 읽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왜 꼭 기독교이어야 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자의 표현대로 ‘루이스가 평생에 걸쳐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주제와 논리, 비유들이 대거 등장’(316쪽)한다. 숙성되지 못했을 뿐이지 기독교 변증의 DNA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찬찬히 인물들의 대화를 읽어가면서 그들의 모순이 시간을 두고 서서히 드러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필자는 독자로서 저자 후기를 먼저 읽으라고 권면한다. 이틀에 걸친 대장정을 마치고 후기를 읽었을 때에야 책의 내용이 분명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북쪽은 유물론자들이고, 남쪽은 낭만주의자들이다. 지도를 보면 이러한 지명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만의 완벽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젊은 여전사로 나오는 이성의 논리도 완벽하고, 북쪽 거인의 논리도 치밀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다른 지역을 여행하지 못해 일어난 편견임이 역사History를 통해 드러난다.(참조 216쪽)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여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주’로 상징화된 하나님을 만남으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만 그것조차 육신의 한계를 벗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역자의 충고대로 루이스의 회심을 다룬 고백서인 <예기치 못한 기쁨>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 또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최근작인 <C. S. Lewis>를 함께 읽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누군가는 루이스를 재미로 읽는 다지만 필자에게는 산보(散步)하기에 버거운 대상이다. 등산(登山)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역자인 홍종락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맥그라스의 <C. S. Lewis>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원작을 능가하는 깔끔한 번역과 문장력이 돋보인다.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이 그나마 술술 읽혔던 이유는 매끄러운 번역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 번 읽을 책이 아니다. 두고두고 어러번 거듭해서 읽을 책이다.
순례자의 귀향 -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홍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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