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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현충일, 동성로를 걸으며

by 샤마임 2019.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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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현충일! 

"새로운 힘이 깨어나고, 모든 것이 무너진다."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월곡로를 가로질러 상인역으로 가는 356번 버스에 올랐다. 어제 예약한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아내는 기생충과 다크피닉스 중에서 한 개를 고르라고 했다. 마블 마니아는 아니지만 신화의 세계에 흠뻑 빠진 나에게 기생충은 나중으로 미루고 다크피닉스를 선택했다. 아내는 못내 아쉬운 듯, 집에 돌아올 때도 혼자라고 보게 될 것 같다는 예언적 언어를 발설한다. 사람의 언어에 창조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말한 대로 된다 하지 않던가. 그러나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다. 자신 안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진, 자신의 잘못으로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그녀를 버린다. 다른 엑스맨들과 팀을 이루어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일을 감당한다. 그러다 우주선이 잘못되어 결국 우주로까지 출동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 엄청난 에너지...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죽지 않는다. 통제할 수 없는 그녀의 힘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피해를 준다.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을 희생하며 피닉스가 되어 우주로 올라간다.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다. 나는 나다. 영화를 보며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오해 받을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해서 한 것이라도 적의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또한 마지막까지 자신을 믿고 신뢰해준 한 사람이 있다면 희망을 포기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것도 배운다. 

 

그렇게 두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영화관을 나왔다. 길을 걸었다. 오전에 보았던 그 길이 아니다. 동성로는 시시각각 사람들로 채워진다. 구걸하는 사람, 댄스하는 사람,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한 시각에 한 장소를 거닐고 있다. 

 

걸었다. 아내는 빵을 사야한다며 '빠다롤뺑 프랑스'로 가자고 한다. 지도를 보여주며 찾아보라고 한다. 300m 정도 걸으니 대구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 중의 하나인 '빠다롤뺑 프랑스'에 도착했다. 프랑스는 알겠는데 빠다롤뺑은 무슨 뜻일까? 

 


빠다롤뺑 프랑스는 영어로 'Butter Roll Pain France'이다. 장길찬 오너 셰프는 가게 이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빠다는 버터의 옛 호칭이다. 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빵은 '버터롤 빵'이다. 그냥 재미있어서 옛날식으로 '빠다롤뺑'으로 붙였다. 짐작은 했지만 알고 나니 헛웃음이 나온다. 나만 궁금할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겠지. 

 

문득, 삶에 너무 깊이 고뇌하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고뇌하고 고민해도 삶을 전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땐 빠다롤뺑처럼, 그냥 주어진 시간을 유머스럽게 보내도 된다. 무의미도 한 번이 웃음으로 의미 있게 할 수 있고, 우연한 생각도 함께 웃어 줌으로 기막힌 창조적 아이디어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핸즈커피점' 앞을 지난다. 

커피 마시고 갈까?

그러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내가 종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작은 엽서와 선물을 내민다. 

"난 아무 것도 준비 못했는데?"

"괜찮아. 당신이 내 선물이잖아!"

"언제 산거야? 아... 교보.. 그래서 나보고 위에 올라가 책 구경하고 했던 거야?"

 

오늘은 현충일!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다크피닉스를 보고 함께 동성로를 걸었던 이유는 

두 번째 맞는 결혼 기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현충일은 육이오라는 동족상잔의 날로 기억될 것이고, 

누군가에게 현충일은 그냥 휴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내와 나에게 현충일은 내가 아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로 맹세한 날이다.

헛된 맹세라는 것이 결혼 다음날부터 시작되고 말았지만, 하여튼 그렇게 이년이 흘렀고 아내와 나는 빈궁한 삶의 여백 속에서 함께 사랑하기로 맹세를 기념하며 동성로를 걸었던 것이다. 

문득, 자신을 희생하며 피닉스로 부활한 영화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지금 여기라는 시공은 아내의 인내와 사랑, 희생의 결과물인 것을 안다. 그래서 선물은 아내가 아니라 내가 준비했어야 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뿐이다. 

 

 

오늘은 변함없이 '아메리카노!'가 아닌 핸즈 드립으로 주문했다. 

물론 돈은 아내가 냈다.

 

알라딘에 들렀을 때 아내는 고양이 책 두 권과 몇 가지?를 더 바구니에 담았다. 

"또 샀어?"라고 물었지만, 

나 또한 행복했다. 

 

아내는 선물이다. 내 생애의 최고의 선물이다. 

그래서 그 선물을 간직하고 다루어야 한다. 

 

이렇게 현충일을

동성로를 걸으며 희생이란 단어로 포장된 일상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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