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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을 구해 주세요.

샤마임 201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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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를 이어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존 칼빈


칼빈주의는 중세의 이원론을 깨고 종교의 세속화를 이끌었다.
칼빈주의 직업관이라 불리는 소명은 중세가 가진 분리된 거룩을 모든 만물과 사역에 부여했다. 직업이 곧 소명이며, 일터가 곧 예배처이다. 이러한 세속화의 과정은 현실에 대한 회피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했던 로만 카톨릭에 일침을 가했으며, 버려진 일상의 소중함을 갖게했다.


칼빈주의 합리주의와 세속성은 영국에서 꽃을 피워 산업혁명을 이루어냈고, 유럽에서는 시민이라는 권력층을 만들어냈다.  약간이 어색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18세기의 청교도혁명, 파리의 시민혁명 등은 칼빈주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칼빈주의는 새로운 권력층인 시민-엄밀한 의미에서 지금의 시민의 개념이 아닌 반귀족층들이다-들에게 매우 적절한 종교이론이었고, 활용하기에 매우 적절한 이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다원화되고 더욱 세속화된 신학과 사상은 결국 칼빈주의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신들이 앉았다. 로이드존스가 심각하게 비판한 하비콕스의 세속도시야 말로 칼빈주의 종착역이었던 것이다. 칼빈주의가 이원론을 극복하여 일상에 신비로움을 추가했다면, 하비콕스는 일상에서 신비주의를 추방하고 물화시켰다. 철처한 물질주의의 추구가 바로 쾌락과 즉흥적 감흥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람들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제 일상의 신비는 사라졌다. 아니 추방했다.


이제 누군가는 칼빈을 다시 재해석할 때가 왔다.
진리는 항상 오래된 책에서 나오는 법이다.
어거스틴은 일상을 과연 어떻게 해석 했는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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