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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요셉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다

샤마임 2020. 9. 23.

 

창세기 41장 요셉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다

 

창세기 41장을 읽을 때는 1절 ‘만 이 년 후에’라는 시간 표현은 매우 의미 있게 해석해야 합니다. 앞선 장에서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풀려나면 자신을 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4:23을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그가 요셉을 잊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요셉을 잊었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잊힌 것입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내실 때가 되자 애굽의 왕 바로에게 두 가지의 꿈을 꾸게 합니다. 하나의 꿈은 아름다고 살진 일곱 암소를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살진 암소를 잡아먹습니다. 소는 초식 동물이기 때문 다른 동물을 먹을 수 없습니다. 꿈이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이번에는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는데 곧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와 충실한 일곱 이삭을 잡아먹습니다. 바로는 꿈이 너무나 이상하고 생생하여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애굽의 모든 점술가와 현인들을 불러 꿈을 들려주고 해석하라고 하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바로 그때 술맡은 관원장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며 옥에서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을 기억해 냅니다. 결국 요셉은 옥에서 나와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바로에게 조언합니다. 바로는 요셉의 총명함을 보고 그를 애굽의 총리로 삼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준비하도록 합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칠 년 풍년동안 곡식을 모아 둡니다. 결국 칠 년 풍년이 끝나자 정말 흉년이 시작됩니다. 애굽인들과 주변의 수많은 나라들이 곡식이 있는 애굽으로 곡식을 사기 위해 몰려듭니다. 이것이 창세기 42장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42장에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때가 있다.


요셉은 억울했습니다. 빨리 옥에서 나와 아버지가 계시는 가나안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간곡히 술맡은 관원장에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습니다. 깨끗이 잊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때가 되었고, 하나님은 바로의 꿈을 통해 술 맡은 관원장의 망각 속에 잠자고 있던 요셉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여러분, 만약이 요셉이 2년 전에 옥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돌아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철저히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의도적으로 잊었습니다. 요셉은 깊은 배신감으로 옥에서 2년을 더 있어야 했습니다. 사실, 2년이 아니죠. 언제 나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옥에서 영원히 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알지 못합니다. 요셉은 철저히 패배하고 무너지고 좌절하며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자 그를 다시 소명의 자리에 불렀습니다.


2. 섭리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는 섭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가만해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가 자신이 꿈을 술사와 현자들에게 말할 때 누군가 자신이 생각하는 해몽을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술관원장이 참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겪을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이게 우연하게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도 꿈을 꾸고 그냥 개꿈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겹치고 겹쳐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말씀이 있는 곳에 양식이 있다.


세 번째는 말씀이 있는 곳에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 요셉의 삶은 참으로 실패와 넘어짐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도무지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일이 꼬였습니다. 분명 성경은 요셉이 형통했다고 표현했지만 요셉은 결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술관원장에게 부탁을 해서 옥에서 나가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므낫세를 낫고 자신의 마음에 한이 되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잊게 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51-52절을 보십시오.

[창 41:51-52]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그런데 하나님을 요셉과 참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함으로 요셉은 인간의 지성와 이성으로 판단하고 예측할 수 없는 모호한 미래를 미리 보았습니다. 요셉은 이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보았고, 그로 인해 양식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7년 풍년은 유혹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없었다면 애굽인들은 7년 동안 곡식을 저축하지 않고 흥청망청 살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곡식의 오분의 일을 비축했습니다.(34절) 그로 인해 7년의 풍년이 끝나고 흉년이 찾아왔을 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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