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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7.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샤마임 2019.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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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7.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이제 주기도문의 마지막 기도에 도착했습니다. 오늘까지 모두 7번에 걸쳐 주기도문 강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마지막 기도의 제목을 시험에 관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먼저는 앞선 기도 제목에 비해 가치가 덜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도제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둠으로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덜 중요한데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유의하여 본다면 앞선 5가지의 기도제목은 모두 ‘~하라’ ‘하소서등의 능동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여섯 번째 기도는 ‘~하지 말라(μὴ)’는 부정형이 사용됩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함께 고민할 기도 제목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 보고자 합니다.

 

시험에 들다는 뜻의 의미

 

먼저 용어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이곳에 등장하는 시험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보통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하나는 어떤 것을 알아보다의 뜻인 ‘Test’이고, 다른 하나는 유혹하다의 뜻을 가진 ‘Temptation’입니다. 그런데 성경 원문을 보면 두 단어가 한 단어입니다. 세 구절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πειρασμό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πειρασμό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πειραζόμενος - πειράζομαι

 

6:13, 1:12에서는 πειρασμόν가 사용되었고, 1:13에서는 πειραζόμενος - πειράζομαι가 사용되었습니다. 위의 단어들은 세 단어가 아니라 페이라조(πειράζω)’라는 단어에서 왔으며, 이 단어가 약간 변형되어 사용된 것들입니다. 이 단어는 외부적인 어떤 작용에 의해 자신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불신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외부의 어떤 유혹을 받을 때 우리는 역시 동일하게 믿음으로 반응하든지 악에 빠지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6번째 제목을 보면 시험에 드는 것과 악에 빠지는 것이 대등하고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일부의 학자들은 악에서 구하소서를 일곱 번째 기도로 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시험에 빠지지 않는 것과 악에서 구원 받는 것은 대등한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저는 두 가지를 한 가지로 봅니다. 왜냐하면 시험에 들다악에 빠지다는 동일한 의미이기 때문에 굳이 다르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1. 시험 없는 인생은 없다.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고 전제해야 될 것은 인생 가운데 시험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작은 고통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반응하지만, 타인의 중대한 고통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래서 종종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합니다. 우린 이렇게 말하곤 하죠. “당신은 절대 저의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분명합니다. 그렇게 당신도 저의 아픔을 절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겉에서 볼 때는 아름답고 흠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의 삶 가운데 한 발자국만 내딛어 보십시오. 그전에 멀리서 그저 바라만 볼 때는 듣지 못했던 신음소리와 한숨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문제없는 사람이나 인생이 있다면 손들어 보십시오.

 

2. 왜 시험이 있는가?

 

그럼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 어느 누구도, 어느 때든 시험 없는 사람도, 시험 없는 시간도 없을까요? 성경은 이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사람들은 그 안에 죄성을 간직하게 되었고, 땅은 저주 받은 가시와 엉겅퀴를 냅니다. 인간들은 먹고 살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하고, 특히 남자들은 여자들의 끊임없는 갈망과도 싸워내야 합니다.

 

시험이란 단어가 주는 핵심은 바로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시험은 불가피한 것이며, 죽을 때까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리적으로 성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믿고 거룩한 백성들이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아지고 힘들어집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세상 속에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때가 묻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흰옷으로 바꿔 입고나니 작은 먼지, 티까지도 훤히 다 보이게 됩니다.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은 항상 마음이 아프고,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사도바울의 고통의 외침을 들어 보십시오.

 

로마서 7:21-24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시편에도 보면 악인의 형통을 보고 고통스러워하는 시인이 모습이 등장합니다.

 

시편 73:13-16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고 싶고, 진실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을 바라보니 악인 형통하고, 악은 횡횡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시인에게 큰 고통이고 아픔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하고 못된 짓만 하는 사람들이 더 잘되는 것을 볼 때 마음에 큰 고통을 갖게 됩니다.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내 자신의 내면의 죄와 싸워야하고, 세상의 부조리함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 모든 이유의 근원을 보면 바로 인간의 타락과 그 결과로 일어난 비참함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내가 죄인이고, 세상이 이렇게 악으로 인해 부조리하다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면 대응 구절인 악에 빠지다와 상관있는 것으로 사단또는 악마에게 빠져들다는 뜻입니다. ‘이라는 단어는 πονηρός입니다. 이 단어가 언제 사용되었는가?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우리는 위의 구절들을 종합해 볼 때, 마태복음 6:13에서 사용된 악이라는 단어는 악의 세계, 또는 사단이 지배하는 악한 영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악에 빠지다는 말은 사단의 권세 아래 굴복되어 사단이 조종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시편 73편의 시인이 악인의 형통을 보고 자신도 악해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킵니다.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부조리와 악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는가? ‘성전에 들어갈 때입니다.

 

[]73: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73: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73: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4. 적용: 그러므로 전신갑주를 입으라

 

도날그 헤그너라는 학자는 본문을 주해하면서 종말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말론적이라고 말하니까 너무 어려워 보이지만 이런 뜻입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시편 73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입니다. 종말을 보라는 것입니다. 잠깐 일어나 현재에 함몰되어 영원한 나라를 보지 못하는 실수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바라보라.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히브리서 11:15-16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 영적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깊은 탄식과 함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나의 생각이 악한 자에게 사용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0-13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아가라.

 

빌립보서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눈길 머무는 곳에 나의 발이 가고, 하나님의 바라보는 영혼이 우리의 눈길이 향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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