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4. 하나님의 뜻
[주기도문 강해] 4. 하나님의 뜻
오래 전 신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읽게 된 책이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의 음성 듣는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잘 이해되지 않아 다시 하나님의 뜻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고 계속 읽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겁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책을 잔뜩 읽고 나니 하나님의 뜻은 더욱 모호해지고 미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쩔 줄을 모르고 하나님께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다> 울고 나니, 마음이 시원해지고 굳이 하나님의 뜻은 알지 못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을 알든 알지 못하든 하나님은 여전히 저같이 못나고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까요?
로마서 8:31-32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자, 이제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주기도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랬습니다. 우리는 늘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모호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될거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그렇게 하거야. 등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설교를 하려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질문을 하니 도대체 그 ‘뜻’이란게 뭘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 봤습니다. 그랬더니 몇 가지 정의가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뜻
[명사]
1. 무엇을 하겠다고 속으로 먹는 마음.
2. 말이나 글, 또는 어떠한 행동 따위로 나타내는 속내.
3. 어떠한 일이나 행동이 지니는 가치나 중요성.
[유의어] 의지, 의의, 정의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뜻’이라는 단어는 결코 쉬운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는 뜻을 생각이나 계획으로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일이나 행동에 대한 가치나 중요성을 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즉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말할까요? 오늘은 잠깐만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를 말하려고 합니다.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사용한 성경은 합동측에서 주성경으로 삼고 있는 네슬 알란트 성경 최신판인 28판을 사용했습니다.
10
ἐλθέτω ἡ βασιλεία σου·(당시의 그 나라가 임하게)
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ὡς ἐν οὐρανῷ καὶ ἐπὶ γῆς·(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여기서 뜻이라는 단어는 ‘뗄레마(θέλημά)’입니다. 이 단어가 신약 성경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몇곳만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7:21에서 오늘 본문 말씀과 거의 흡사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21:331에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신 다음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두 구절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의 명령’ 또는 ‘계명’ 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명령에 순종하고,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삶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21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마태복음 21: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사도행전 22:14로 가보겠습니다. 약간 모호하긴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으로 해석도 될 것 같습니다. 좀더 좁혀보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 바울을 사용하신다는 소명의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22: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히브리서 10:7의 말씀은 다윗이 시편에서 고백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용된 하나님의 뜻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서의 십자가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마지막 한 곳만 더 보겠습니다. 계시록 4:11에는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권능 받으심에 대한 합당한 이유로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으로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지금까지 신약성경 속에서 ‘뗄레마(θέλημά)’가 어떻게 번역되었고, 사용되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종합해 볼까요? 신약성경 속에서 ‘뗄레마(θέλημά)’는 ‘하나님의 계명이며, 하나님의 약속과 작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 그로 인해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는 ‘뗄레마(θέλημά)’로서의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목적’으로 구분했습니다. 우리는 ‘뗄레마(θέλημά)’라는 이 단어가 신약성경 속에서 오직 단수형태로만 상용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가 아니라 한가지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창조의 목적으로 돌려놓고, 인간을 그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단어가 사용된 곳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것(마 9:13),
소자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마 18:14),
아들을 보고 믿는 것(요 6:40),
우리의 거룩함(살전 4:3)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의 총체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가장 아름다고 귀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 대충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좀더 실제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사도행전 속에 나타난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교회는 바로 보이는 천국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상세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1. 하늘에서처럼(ὡς ἐν οὐρανῷ)
우리가 첫 번째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종종 간과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항상 ‘하늘(οὐρανῷ)’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늘은 히브리어 ‘샤마임’임을 번역한 것으로 우리가 아는 공간의 개념인 하늘보다는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장소로 보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시작할 때, 제가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하늘’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늘이 단수가 아닌 복수형태로 생각합니다. 즉 하늘이 아닌 ‘하늘들’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기에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입니다. 하늘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의미들은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주기도문 안에서 하늘의 의미만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ㄱ. 땅과 대조적인 하늘
첫 번째 땅은 하늘과 대조적입니다. 하늘은 한계가 없고, 시공을 초월합니다. 보통 하늘을 나는 새는 ‘자유’를 상징합니다. 문학가들은 새를 통해 자유와 쉼을 표현합니다. 반대로 땅은 ‘한계’와 ‘연약함’ ‘불완전함’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6:19에 보면 보물을 ‘땅에 쌓아 주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땅에는 도둑이 있고, 녹이 슬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늘에 쌓아 두라’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보물을 훔칠 도둑이나 녹슴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완전하게 저축되고 보관되는 장소가 바로 하늘입니다.
마태복음 6:19-20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창세기 3장으로 가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저주를 받는데, 하필이여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인간의 수고를 필요로 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됩니다.
창 3:17-18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하늘에는 거룩한 하나님이 계시지만, 땅에는 죄인들이 삽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이것이 땅이 갖는 첫 번째 의미입니다.
ㄴ. 땅의 상응하는 하늘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땅은 하늘과 상응하고 있습니다. 즉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땅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1로 가면 하나님께서 ‘그 하늘들(하 샤마임)’과 ‘그 땅(하 에레츠)’를 창조하십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피조물, 또는 피조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하늘에 계신 것처럼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서의 하늘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전반에 흐릅니다. 먼저 창세기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라고 표현합니다.
창세기 19: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창세기 2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하갈을 부르십니다. 22:11장에서도 동일하게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하늘에서’ 부르십니다.
창세기 21: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하늘은 하나님의 거주 장소이기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표현이 많습니다.[하늘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왕상 8:30,32,34,36,39; 대하 6:23,25,27,30,35 느 9:27,28)]
열왕기상 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자, 가만히 보십시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곳에서 심판도 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기도 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하늘에 저 멀리 있는 어떤 곳이 아니라 하늘의 땅의 일에 간섭하시고,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땅은 하늘에 상응하고, 하늘과 관계되어지고, 하늘처럼 땅도 변화되어야할 대상이라는 점이 분명합니다.
ㄷ. 땅의 원형으로서 하늘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의미를 살펴봅시다. 세 가지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은 아니고 서로 엮여있고, 의미들을 공유하고 있지만 약간 다른 의미입니다. 이사야의 소명장으로 불리는 이사야 6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절망스러운 환경 속에서 깊은 침체와 아픔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높이 들린 보좌’를 발견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고, 이사야를 땅에 보내십니다.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6:1-3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사도요한은 이사야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환상을 다시 체험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 가면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과 천사들과 장로들의 찬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시록 4: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용이 사로잡히고 새하늘과 새땅이 덧입혀짐으로 끝이 납니다. 즉 하늘이 하늘에 임하여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이사야 한 곳에만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욥기에도 보면 하늘에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계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의 회의가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갈 때도 비슷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8:12-13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하시고, 그것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야곱이 누운 그 곳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야곱의 후손들이 차지하게 되고, 말씀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25:40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할지니라
출애굽기26:30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출애굽기27:8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히브리서8:5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2.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
그럼 하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마태복음 26장으로 가면 게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을 발견합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26:42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θέλημά)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땅이 하나님의 나라 되고, 이 땅이 거룩한 천국이 되고, 이 땅이 죄인들이 아닌 거룩한 백성들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 피, 십자가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제가 처음 여러분께 소개한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 다시 들어 봅시다.
로마서 8:31-32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너무나 단순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그 방법,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매는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갈망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기를 갈망하는 자가 아닙니다. 5장에 기록된 팔복을 보십시오. 시작도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마지막 복도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 그가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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