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5. 일용할 양식
[주기도문 강해] 5. 일용할 양식
성경과 신학은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대립 또는 상응하듯 그려지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보면 1-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향한 계명입니다. 5-10까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련된 계명입니다. 모든 율법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한 율법사가 찾아와 예수님을 시험하여 어떤 계명이 크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누가복음 10장에도 보면 비슷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동일하게 율법사가 그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되 묻습니다. 그러자 율법사가 대답하자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가 ‘이웃이 누구인가’ 묻자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시작합니다. 율법사가 대답한 내용을 같이 읽어 봅시다.
눅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의 날선 검과 같습니다. 한 날은 하나님을 향하고, 다른 한 날은 사람을 향합니다. 요한사도는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 하나님과 사람을 엄격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이렇게 강조합니다.
요일 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어떤 믿음 좋아 보이는 사람이 있는 데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압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데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거룩한 삶 때문에 핍박을 받고 오해를 받아 그럴 수 도 있지만, 그런 일이 일반적인 관계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옳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거나 거룩과 세속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거룩한 것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거룩하시지만, 사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룰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앞선 세 가지 주제들은 모두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일용할 양식’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간구
1) 하나님의 이름 2) 하나님의 나라 3) 하나님의 뜻
사람들의 필요에 관한 간구
4) 일용할 양식 5) 우리의 죄악 6)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양식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이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것은 ‘일용한 양식’은 결코 하찮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물질 세계를 창조하셨고, 우리가 먹을 것도 만드셔서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9-30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1:29-30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분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많이 영적인 분들은 종종 육적인 것을 부정하거나 하찮은 것, 아니면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지만 성경은 전혀 동의하지도 말씀하지도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고, 부활 때에도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마심은 결코 부정하거나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먹는 것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또한 친히 먹이십니다. 주님은 공중의 새를 인용하시면 하나님께서 먹이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공주의 새도 먹이신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욱 돌보시지 않겠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시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내리시고,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신 사건을 말합니다.
[시]78:23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시]78: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시]78:25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도리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응답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하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7-11까지를 보십시오. 그곳에서 주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응답하시겠다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마태복음 7:9-11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시고, 잘 되길 원하시는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자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자녀들이 훈련도 받고 잘 자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잘 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그것이 육적인 것에만 머물기 때문에 악이 되고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로 너머가 봅시다.
2. 영적인 양식을 구하라
또한 하나님은 육신의 양식을 허락하심으로 영적인 양식도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육신적인 것은 단지 육신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육적인 것을 통해서 영적인 것을 교훈하십니다. 출근하면 교회를 둘러보기 위해 지하에도 내려가고, 교회 주변도 둘러봅니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교회 옆 공원이 단풍이 들기 시작한 것을 보았습니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이들고, 단풍은 빨갛게 물이 들기 시작합니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겨울이 오고 있다는 계절의 표시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는 생존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며, 아름답다 말하고 좋아합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단풍놀이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내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매년 계절의 변화를 통해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교훈하십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역사적 종말은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13: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막]13: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육적인 양식은 곧 영적인 양식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오천명을 먹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얼마나 놀라울 말씀입니까? 주님은 분명히 ‘썩을 양식’이 있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썩을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뭘까요? ‘썩을 양식’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말합니다. 탐욕, 악, 죄, 이생의 자랑 등 육신에 속한 모든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썩을 것이며, 멸망 받을 것이며, 악한 것들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구하는 것 자체가 악이라기보다는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악이 되고 죄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본문을 유의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주기도문 후에 이야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것, 염려하지 말라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입을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하늘 아버지께서 다 아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아신다는 곧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구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보다 먼저 구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πρῶτον)’는 무엇에 최고의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동일한 단어가 마태복음 5:24에 있습니다.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 하십니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부분을 유심히 보십시오. ‘먼저’는 순서의 먼저를 뜻하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화목’입니다. 시편 51:15-17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다윗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시 51:16-17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육적인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너희가 그것을 아느냐? 나는 너희들이 그것을 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3. 그의 나라와 의로서의 일용할 양식
이제 마지막으로 양식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는가를 살펴봅시다. 먼저 일용할 양식이 ‘내게’가 아니라 ‘우리에게’라고 했습니다. 이 단어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즉 양식의 문제는 개개인의 문제는 너머 공동체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은 성경은 ‘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교회’에 주셨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교회에 줌으로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출애굽때 있었던 광야의 만나와 하늘에서 내려온 참 만나인 자신과 비교하셨습니다. 만나는 6일 동안 내렸고, 하나님의 은혜로 내린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광야의 만나처럼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만나로 오셨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떡’이고 하신 것은 곧 복음을 말합니다. 주님은 성만찬 때에 ‘이것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빵과 그 포도주가 십자가 사건인 것을 압니다. 궁극적으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일용할 양식이란 ‘말씀을 나누라’는 것으로 좁혀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4:43-47 말씀은 신약교회가 어떻게 일용할 양식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는가를 보여줍니다.
행 2:43-47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6-47절을 보십시오. 이곳에서 세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두 번째는 떽을 떼며 음식을 먹고, 세 번째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도 바울은 광야의 만나 사건을 교회가 서로 구제함을 통해 균등하여 진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고후 8:14-15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결국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용할 양식’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가야 할 천국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구제하고, 서로 짐을 지며, 서로 돌아보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육적인 양식을 나눔으로 영적인 삶을 삽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교회를 보면서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천국’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밥 한 그릇의 나눔은 영원한 세계를 보여주는 틈이 됩니다.
나가면서
정리해 봅시다.
1. 양식을 구하는 것은 선한 것이다.
2. 영적인 양식을 구해야 한다.
3. 교회 안에서 천국을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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