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개론] 구약 역사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성경개론] 구약 역사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모세 오경으로 불리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좁은 의미에서 ‘토라’로 불렸고, 다른 어떤 성경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 책입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성경은 모세 오경의 해석, 또는 성취를 보여줍니다. 지난 번까지는 사사시대를 다루면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살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첫 사람들의 타락, 그리고 살인,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죽음, 그리고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도 별 수 없는 타락 존재들인 것을 역사는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둡고 탁한 시대가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준비하시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통일왕국 시대로 불리는 200년 정도의 시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은 각각 40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사무엘이 등장해야 겠죠. 사무엘의 등장부터 솔로몬의 죽음까지느 약 2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목에 표기한 1050년은 사울이 처음 왕으로 추대 받은 시기입니다. 자 다시 7시대를 눈에 담아 놓으십시오.
구약의 7시대 구분
1. 창조시대(B.C. ?-2200?)
2. 족장시대(B.C. 2200?-1847)
3. 광야시대(B.C. 1580?-1400?)
4. 사사시대(B.C. 1400-1050)
5. 통일왕국시대(B.C. 1050-931)
6. 분열왕국시대(B.C. 931-722)
7. 포로시대(B.C. 722-420?)
5.1 통일왕국 시대 개요
숨이 거의 끊어질 뻔한 위기의 순간에 다다른 이스라엘은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와 같았습니다. 정복해야할 가나안 족속보다 더 가나안 족속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사사들을 통해 끊임없이 구원하시고 일으켜 세웠지만 사사가 죽으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그렇게 40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구약 성경은 사사기를 마무리하고 사무엘서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한 레위인인과 불임의 여인 한나가 등장합니다. 절망스러운 사사시대에 살아갔던 그들도 여전히 소망 없는 이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기도했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사무엘을 낳습니다. 젖을 떼고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무엘은 점점 자라나 이스라엘 안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첫 번째 왕이 탄생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왕을 세웁니다. 그때가 기원전 1050년입니다. 왕이된 사울은 곧 교만해지고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습니다. 결국 버림을 받고 아버지의 양을 키우던 다윗이 기름부음을 밧고 두 번째 왕이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계속하여 추격하고 죽이려 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은 죽임을 당하고 다윗은 왕이 됩니다. 다윗은 지혜롭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을 일거에 정복해 버립니다. 또한 주변 나라들을 굴복시키고 조공을 바치도록 합니다. 여기까지가 사무엘 하의 내용입니다. 그 다음 성경인 열왕기 상으로 넘어가면 다윗의 말년과 솔로몬이 왕이 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다윗의 죽음 이후 밧세바를 통해 태어난 솔로몬이 왕이 되고 궁과 성전을 화려하게 짓습니다. 솔로몬의 시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평화롭고, 화려하고 부유한 시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말년의 솔로몬은 하나님을 망각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B.C. 930)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게 됩니다. 남쪽은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하여 ‘유다’가 되고, 북쪽을 요셉지파(에브라임 므낫세)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됩니다. 분열 왕국의 시대의 이스라엘을 구분하기 위해 ‘북이스라엘’로 명명합니다.
5.2. 사무엘의 탄생
사무엘의 출생과 엘리의 죽음
통일왕국 시대의 이야기는 에브라임 산지의 불임의 한 여인으로부터 시작합니다.(삼상 1) 여인의 이름은 한나였고, 남편은 엘가나입니다. 엘가나는 레위인입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두 명의 아내가 있습니다. 한 명은 불임의 여인 한나이고, 다른 한 명은 브닌나입니다. 레위인에게 두 명의 아내는 비정상적입니다. 사사시대의 정형적인 모습입니다. 브닌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조롱하고 무시합니다. 그로인해 한나는 실로에 올라가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그곳을 지키던 엘리 제사장이 한나를 술 취한 여자로 알고 야단을 칩니다. 한나는 괴로워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기도해 줍니다. 거짓말처럼 한나는 아이를 낳게 되고, 젖을 떼자 아이를 데리고 엘리 제사장에게 데리고 갑니다.(삼상 1:28) 그 후로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과 함께 실로의 성막에서 지내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을 불한당(不漢黨)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행실이 나쁘고, ‘여호와를 알지 못’(삼상 2:12)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가볍게 여기고,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치하기도 했습니다.(삼상 2:22) 엘리는 아들들을 불러 이야기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집을 저주하십니다.(삼상 2:27-36) 그때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줄 모르고 엘리에게 달려가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줄 알고 그 음성이 들리거든 무릎 꿇고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집에 내릴 저주를 들려 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것이 알려집니다.(삼상 3:20-21)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에서 질 것 같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갑니다. 처음에 두려워하던 블레셋은 용기를 내어 전쟁에 임하고 결국 이스라엘은 패하고 맙니다. 그일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소식을 들은 엘리도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게 됩니다.(삼상 4:18) 엘리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도 시아버지인 엘리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려다 죽게 됩니다. 죽으면서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하며 ‘이가봇’이라고 말하고 죽습니다.(삼상 4:20-22)
여호와 법궤 앞에 넘어진 다곤 신상
고대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강하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신이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이겼다고 믿었습니다. 빼앗은 법궤를 다곤 신전 안에 두었습니다.(삼상 5) 다음날 다곤 신전에 들어가보니 다곤상이 여호와의 법궤 앞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고 다시 세워둡니다. 그 다음날 들어가니 이번에는 다곤이 여호와의 법궤 앞에 엎드러져 있을뿐 아니라 머리과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몸뚱이만 남아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놀라 다른 성읍으로 옮겼지만 법궤가 가는 곳마다 ‘독한 종기’(삼상 5:9)가 났습니다. 다른 성읍에 옮기면 또 재앙이 일어나 결국 법궤를 새수레를 만들어 이스라엘로 보내게 됩니다.(삼상 6) 법궤는 아비나답의 산에 옮겨집니다.
5.3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과 사울 왕
이스라엘이 나이가 들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찾아옵니다. 사무엘이 사사로 사사로 세운 아들들이 아버지 사무엘처럼 정직하지 못하고 뇌물을 받고 재판을 했습니다. 참다못한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방나라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삼상 8)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왕을 세우라고 말합니다.(삼상 8:7) 사무엘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찾아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웁니다.(B.C. 1050) 사울은 40년 동안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합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비방했습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에 진을 치고 전쟁을 하려 합니다. 야베스 사람들이 나하시를 섬기겠다고 말해자 ‘너히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삼상 11:2)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 말들을 들은 사울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전쟁은 사울의 압승이었습니다. 드디어 사울의 실력을 인정받아 왕으로서 권위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의 실패는 의외로 일찍 찾아옵니다. 왕이 된지 이 년 만에 블레셋과 전쟁이 일어납니다.(삼상 13) 그런데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군사력을 지녔습니다. 길갈에 모여 있었지만 두려움에 떨어 사람들이 도망갔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이레를 기다리라하여 기다렸지만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날마다 탈영하게 됩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리고 맙니다.(삼상 13:9) 잠시 후 도착한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의 날이 길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마음이 합한 자를 세워 왕을 삼았다고 말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한 번 더 일어납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이스라엘을 도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합니다.(삼상 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라고 명합니다. 아멜렉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에서 비겁하고 야비하고 공격했던 민족이었습니다.(삼상 15:2) 사무엘은 아무 것도 취하지 말고 모든 사람과 가축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전쟁에서 이기고 좋은 짐승들을 남겨 둡니다. 사무엘은 이것을 알고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한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삼상 15:22)고 책망합니다. 사무엘을 아각을 데려오라 하고 직접 아각을 죽입니다.(삼상 15:33)
[아각을 죽이는 사무엘]
슬퍼하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유다 지파 이새의 집에 가서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합니다. 이새에게 제사를 드린다하고 찾아갑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기름을 부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이새에게 아들이 또 있느냐고 물으니 한 명이 양을 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당시 양을 치는 목자들은 가장 천하고 미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새의 눈에 다윗은 아들 같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아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사무엘은 다윗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이제부터 사울에 쫓기는 방랑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자신을 훈련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
사울이 악령이 들어 고통스러워하자 다윗이 수금을 연주해 낫게 합니다. 사울은 다윗이 맘에 들어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삼상 16:21)습니다. 즉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호위무사와 같은 의미입니다. 또 블레셋이 쳐들어옵니다.(삼상 17) 이번에는 키가 거의 3m나 되는 골리앗이 진 앞에서 이스라엘을 협박하고 저주합니다. 겁에 질린 이들이 아무도 소리도 못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에 나온 다윗이 골리앗을 보고 자신이 죽이겠다고 나섭니다. 사울은 자신의 갑옷을 다윗에게 주지만 다윗은 맞지 않아 다시 벗습니다. 시냇가로 내려가 물매에 넣을 돌을 찾아 다시 올라옵니다. 다윗이 아무런 무기도 없이 물매 하나와 양을 칠 때 쓰는 막대기만을 가지고 골리앗 앞으로 나갑니다. 결국 다윗은 물매로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승리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더 신용하여 많은 전쟁에 보내고, 다윗는 가는 곳마다 승리합니다.(삼상 18) 그런데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사울에게는 ‘천천’을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립니다.(삼상 18:7) 그 후로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여 보고 시기합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딸 미갈을 주어 사위로 삼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하고, 결국 왕궁에서 쫓겨나 방랑하게 됩니다.
다윗과 요나단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달랐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까닭없이 미워하는 것을 보고 다윗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옷을 다윗에게 입히고 다윗의 길을 축복해 주었습니다.(삼상 20) 사울은 다윗이 가는 곳마다 추적했고, 다윗에게 조금이라고 선을 베푼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다윗에게 성막의 떡과 골리앗의 칼을 내준 놉 땅의 아히멜렉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습니다.(삼상 21-22) 다윗은 그 후로 블레셋으로, 그일라로, 엔게디 요새로 계속하여 도망 다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점점 다윗에게 몰려옵니다. 이러한 왕중에 사무엘은 라마의 집에서 죽고 장사됩니다.(삼상 25:1)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다시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사울은 다윗 추적하는 것을 멈추고 전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에게 패하여 길보아 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5.4 다윗 왕
사무엘 상은 이스라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의 출생과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의 죽음까지 다룹니다. 사무엘 하는 다윗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가 됩니다. 그러나 다윗의 삶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정직하고 용맹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간교하고 악마적입니다. 이러한 이중적 성향은 사무엘 하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제 왕이 된 다윗의 모습을 살펴 봅시다.
아직은 반쪽의 왕
사울이 죽었다고 해서 다윗이 곧바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사울은 왕이 없는 상황에서 왕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이스라엘이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사울에게는 죽은 요다단뿐 아니라 이스보셋이라는 다른 아들도 있었습니다. 이스보셋을 따르는 대부분의 이스라엘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울이 죽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헤브론으로 향합니다.(삼하 2:1) 먼저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영접하고 ‘유다 족속의 왕으로’(삼하 2:4)로 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고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의 군사령과 넬의 아들은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라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갑니다. 길르앗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습니다.(삼하 2:9) 다윗은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삼하 2:11)을 통치합니다. 이스보셋은 ‘두 해 동안’(삼하 2:10) 왕으로 있게되고, 후에 아브넬이 죽은 후 아브넬의 군지휘관 바아나와 레갑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삼하 4:4) 이스보셋이 죽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와서 다윗을 왕으로 인정합니다.(삼하 5:1)
다윗의 정복전쟁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곧바로 사사시대에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여부스 사람을 칩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을 보고 ‘맹인과 다리 저는 자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 5:6)고 놀려 댑니다. 다윗과 군사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지하수로를 통해 들어가 정복합니다. 예루살렘을 빼앗아 다윗 성이라 이름합니다.
[기드론 시냇가에서 예루살렘 안으로 통하는 지하수로, 다윗은 이곳으로 공격해 들어갔다고 한다. 후에 이곳은 히스기야에 의해 확장 되어 예루살렘 안으로 물을 공급하는 수로 역할을 한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블레셋이 쳐들어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전쟁에 나갑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하여 그곳을 ‘바알브라심’(삼하 5:20)이락 부릅니다. 얼마 후 블레셋 르바임 골짜기로 올라옵니다. 이번에도 다시 승리합니다. 전쟁은 계속 됩니다. 모압을 치고, 아람을 치고, 하맛과 에돔까지 쳐서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승리하게 하십니다.(삼하 8)
베레스 웃사 사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다윗은 여호와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 오려고 합니다.(삼하 6) 그런데 레위인들에 어깨에 메지 않고 새수레를 만들어 법궤를 싣고 많은 악기를 연주합니다. 그런데 법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자 소들이 뛰놀자 웃사가 손을 들어 법궤를 붙듭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그를 죽입니다. 다윗은 이 모습을 보고 그곳 이름을 ‘베레스 웃사’라 이름합니다. ‘베레스 웃사’는 하나님께서 ‘베레스를 치다’는 뜻입니다. 결국 법궤는 예루살렘이 아닌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임시적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석 달’(대상 13:14)을 있게 됩니다. 석 달 후에 여호와게서 오벧에돔의 집과 소유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법궤를 옮깁니다. 이번에는 레위 사람들에게 지시하여 법궤를 메고 오도록 명령합니다.(대상 15) 다윗은 법궤가 성으로 오자 즐겁게 춤을 추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삼하 6:17) 이 모습을 보고 미갈이 다윗을 업신 여깁니다. 이 일로 미갈은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삼하 6:23)
밧세바 사건
밧세바 사건은 다윗의 생애에서 변곡점이 됩니다. 밧세바 사건 이전의 다윗은 비록 힘들고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밧세바 사건 이후 다윗의 집에 저주가 시작됩니다. 밧세바 사건은 암몬과의 전쟁 사이에 일어납니다.(삼하 11) 그런데 그 해는 다윗이 전쟁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저녁 때 다윗이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 다 목욕하는 한 여인을 발견하고 글을 알아보게 합니다. 그녀는 엘리암의 딸이며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삼하 11:3) 다윗은 사람을 보내 밧세바를 궁으로 초대하고 동침한 후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얼마 후 여인은 임신하게 되고 다윗에게 임식 소식을 전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내 집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왕의 부하들과 함께 잡니다.(삼하 11:9) 다윗이 불러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군대들이 전쟁 중인데 자기 혼자 집으로 들어가 함께 잘 수 없다는 것입니다.(삼하 11:11) 참으로 충직한 신하요 군사였습니다. 다윗은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군대장관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아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요압은 편지를 받고 우리아를 최선봉에 세워 공격하게 하고 갑자가 물러납니다. 결국 우리아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한 사람을 죽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간교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이일로 나단이 찾아와 다윗을 책망합니다. 다윗은 나단의 책망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회개하며 지은 시가 시편 51편입니다. 다윗은 악했지만 또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 사이에서 난 아들은 죽게 되고,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삼하 12:10-11) 아이가 죽고 하나님은 아들을 다시 선물로 줍니다. 하나님은 다단 선지자를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지어줍니다. “여호와께 사랑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집에 내린 저주
하나님은 밧세바의 일로 두 가지 저주를 내립니다. 물론 한 가지 때문에 연이어 일어납니다. 먼저는 암논이란 아들이 배다른 누이 다말을 사모하여 그를 끌여 들여 동침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변해 다말을 쫓아냅니다. 이 소식을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이 듣게 되고 암논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만 이 년 후에 압살롬이 양털 깍을 때 다른 형제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입니다. 이때 압살롬은 종들을 시켜 암몬을 죽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을 피해 그술 왕 암비훌이 아들 달매에게 피신합니다. 그곳에서 ‘삼 년’(삼하 13:38)을 있게 됩니다. 요압의 계책으로 다윗의 마음을 달래어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부릅니다. 드러나 다윗은 이년이 넘도록 압살롬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반역을 준비합니다. 압살롬이 일찍 일어나 성문 앞에서 왕에게 재판을 받으려 하는 자들을 불러 그들의 마음을 훔칩니다.(삼하 15:6) 압살롬을 사람들을 모아 세력을 점점 키우게 되고 결국 반역을 일으킵니다. 짐을 챙길 시간도 없이 다윗과 그의 신하들은 도주합니다. 압살롬에게는 아히도벨이라는 책략가가 있어 다윗에게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렉 사람 후새가 다윗에게 절하고 아히도벨의 책략을 무너뜨리겠다고 말하고 압셀롬에게 거짓으로 승복하고 들어갑니다. 결국 압살롬의 마음을 얻은 후새는 아히도벨의 책략이 먹히지 않게하고 압살롬을 전쟁에서 패하게 합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버림을 받고 고향으로 내러가 스스로 자결합니다.(삼하 17:23) 압살롬은 도망가다 머리가 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합니다.(삼하 18:14)
다윗의 인구 조사와 전염병
말년에 다윗은 갑자기 그동안 자신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 위해 백성들을 계수하게 합니다.(삼하 24:1) 요압은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아 미뤘지만 다윗은 계속 재촉합니다. 할 수없이 이스라엘 인구를 계수합니다. 인구 조사를 마치자 여호와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보내 다윗을 책망하고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합니다. 다윗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전역에 전염병이 일어나 칠만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삼하 24:15) 다윗은 아리우나 타작 마당에 서 있는 천사를 찾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화목제를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이 그칩니다. 다윗의 죽음 이야기는 열왕기 상으로 넘어갑니다. 다윗은 늙고 자신의 왕위를 솔로몬에게 넘겨지고 숨을 거둡니다.(왕상 2:10)
5.5 솔로몬 용두사미의 왕
솔로몬은 시작은 좋았으나 끝은 좋지 않은 용두사미가 잘 어울리는 왕입니다. 통일왕국 마지막 왕으로서 이스라엘 분열에 대한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솔모몬은 대게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 성경에서는 그를 그다지 좋은 왕으로는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유의하며 읽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어떤 면에서 성경에서 그리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세워 놓은 믿음의 길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받아 누린 사람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까요. 수많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하여 이방우상들을 이스라엘 안으로 가지고 무능한 왕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왕이 되어 지혜를 구하다
다윗의 말년에 다윗의 아들인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세력을 규합합니다.(왕상 1) 아도니야는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함께 모의합니다. 이 일을 나단이 듣고 밧세바를 찾아가 의논합니다. 밧세바는 다윗을 찾아가 돌아가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전에 약속했던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다는 다윗의 맹세를 다시 확인합니다. 그렇게 하여 솔로몬으로 왕으로 추대되고 아도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제거 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아도니야를 한 번 살려 줍니다. 그러나 그의 교만을 멈추지 않고 다시 밧세바를 찾아가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협박합니다. 결국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두면 안 되겠다고 말하고 브나야를 보내 처형합니다.(왕상 2:25) 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을 따르고 함께 했다로 처형하지 않고 제사장직을 파면하고 고향으로 돌려 보냅니다. 그로 인해 사무엘을 통해 엘리의 집에서 했던 예언이 성취됩니다.(왕상 2:27, 참조:삼상 3) 아비아들을 대신해 사독이 제사장 직을 맡게 됩니다.(왕상 2:35) 사독 제사장 계열은 후대와 중간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후손들만이 정통을 지닌 대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로 인해 처형합니다.(왕상 2:28-34)
왕이 된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 제사하며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을 감사하고 그에 걸맞는 지혜를 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부나 장수를 구하지 않고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부를 구한 것을 좋게 여겨 구하지 아니한 ‘부귀과 영광’(왕상 3:13)도 허락하십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창기 두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증명됩니다. 어떤 합리적 추론이 아닌 모성애를 자극하여 진짜 엄마를 가려냅니다. 현대적 의미에서는 통할 수 없는 재판이지만 인간의 본성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온 이스라엘이 솔로몬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왕상 3:28)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부귀와 성전건축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더불어 부와 영광을 주었습니다. 솔로몬의 부귀는 이 한 구절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왕상 10:27)
솔로몬의 부는 다윗의 정복전쟁의 후광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완전히 정복되었고, 주변의 나라들까지 반식민지 상태에서 조공을 바쳤습니다.(왕상 4:21) 솔로몬이 통치할 때 이스라엘의 부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누리지 못한 부와 평안을 누렸습니다. 이스라엘 인구는 ‘바닷가의 모래’ 같았고, 먹고 마시고 즐거웠습니다.(왕상 4:20) 또한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을 누렸습니다.(왕상 4:25)
솔로몬이 왕이 되자 다윗와 친했던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신하를 보냅니다. 솔로몬은 히람에게 성전을 짓고 싶으니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달라고 부탁합니다.(왕상 5:1-6) 히람을 즐거운 마음으로 승낙하고 대신 자신의 궁정에 음식물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두로는 해변가이고 농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음식이 몹시 궁했습니다. 이렇게하여 애굽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왕상 6;1)에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원했던 일이 아들 솔로몬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왕이된지 사년이 되었을 때 시작한 성전건축은 칠 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집니다.(왕상 6:38) 안과 밖을 금으로 덧 입힐만큼 화려했습니다. 성전 앞 두 기둥을 세워 야긴과 보아스라 이름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성경의 식물-백향목>을 참조바람]
성전이 완성되자 솔로몬은 다윗 성(시온)에 있던 여호와의 궤를 성전으로 옮깁니다.(왕상 8:1)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여 여호아의 영광이 가득하게 됩니다.(왕상 8:11) 솔로몬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연설하고 하나님께 기도(왕상 8:22-53, 대하 6:12-42)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달라는 것이며, 혹시 죄를 범해도 성전을 향해 기도하며 응답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 여인과 우상숭배에 빠지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지만 다윗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어 바로의 딸과 혼인 관계를 맺어 정치적 입지를 강하게 합니다.(왕상 3:1) 당시 애굽은 세계최강의 나라였습니다. 솔로몬은 애굽과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바로의 딸을 위해서 특별한 집을 지어주기도 합니다.(왕상 7:8) 솔로몬은 애굽의 공주 뿐 아니라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여 자신의 집에 들였습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왕상 11:1)
후궁이 칠백 명이고, 첩이 삼백 명이었습니다.(왕상 11:1-3) 이방 여인들은 우상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솔로몬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깊은 우상숭배로 나아가는 터를 닦에 놓게 됩니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로 인해 시돈의 아스다롯, 암몬의 밀곰, 모압의 그모스 등이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성경 속의 우상들은 <성경의 신들> 카테고리를 참고 바랍니다.]
솔로몬은 나이가 들어 조상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말년에 행한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을 두 나라로 만들게 했습니다. 왕이 된지 ‘사십 년’(왕상 11:42)이 되던 해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통일왕국 시대는 120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마치게 됩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 모두 40년의 통치를 통해 이스라엘은 한 나라로서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사사시대의 암울했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 나라를 세우시고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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