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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6-18절 금식 기도

샤마임 2021.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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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16-18절 금식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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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으로 금식하지 말라

  • 마태복음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마태복음 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 마태복음 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강해 


“외식하는 자들”(16절)


기도에 대한 또 다른 충고입니다. 먼저 기도는 외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슬픈 기색을’(16절) 보이고 싶어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슬프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의 슬픔은 거짓입니다. 그들은 슬프지 않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거짓이며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속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속입니다. 슬프지 않고, 경건하지 않은데 슬픈 척하고, 경건한 척합니다. 거짓으로 경건함을 꾸미기 때문에 죄가 큽니다.


그들이 얻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칭찬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들은 상을 받았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도는 진심이 없으며, 가식적이며, 꾸며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들에게 빼돌리는 도둑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의 인기를 추구하는 자들은 하와와 아담이 그랬듯 스스로 신이 되어 사람들의 영광을 구합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슬픈 기색을 내비추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이라 선언하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죄인들이 아무리 하나님께서 감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없다 한들 하나님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 시편 10: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 시편 10:5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 시편 10: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16절)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이미 상을 받았습니다. 상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의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의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주입된 은혜는 죄인들을 의인으로 신분적으로 변화시키고, 성화의 삶으로 이끄십니다. 가식은 성화가 아닌 거짓된 삶입니다. 천국은 어느 날 갑자기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거룩한 변화의 삶이 없는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땅은 길이며, 날마다 소망으로 천국을 체험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그 상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이 되어야 마땅하고, 거룩한 삶을 통해 얻어지는 거룩한 기쁨입니다.


‘이미 받았다’는 말씀은 천국과 이 땅을 바꾸었다는 말입니다. 마시멜로의 법칙처럼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찰나의 삶을 영원과 바꾸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이 땅의 삶을 희생합니다. 잠시 잠깐의 고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하면 살아갑니다. 이것을 우리는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금식할 때에”(16,17절)


이 구절이 두 번 연속되었음에 주목해 보십시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주목하라’는 뜻입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니 잘 들어야 합니다. 다른 한 가지 의미는 ‘금식 기도’를 주님께서 긍정적으로 보고 계십니다. 나도 너희가 금식하는 것을 기뻐한다. 그러나 잘못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금식 기도를 부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데 왜 기도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냥 기도해도 되는데 금식까지 해야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게으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금식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계십니다. 기도는 그 맛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며 영적 나눔입니다.


“네 아버지께”(18절)

 

사람에게 자신의 경건함을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보이려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17절)고 하십니다. 기도는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가 가꾸어야 할 것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5:3) 마음이 행위로 드러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먼저 아버지께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18절)에 계십니다. 즉 하나님은 숨어 계십니다. 숨어 계신다 함은 인간의 육신으로 느껴지지 않고 믿음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물리적인 힘과 가시적인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계십니다. 계신지 아니 계신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갚으시리라’(18절)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른 체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갚으십니다. 이것은 약속이고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합니다. 사람에게 하지 않습니다. 외식의 기도가 나쁜 것은 경건을 가장하여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는 우상숭배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만 경건한 척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의인으로 착각합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시고,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친밀함이 깊을수록 배타적이고, 사랑이 깊을수록 비밀이 많습니다. 기도는 기도자와 하나님과의 배타적 언어를 공유하는 것이며, 깊은 비밀은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갚으심의 약속을 믿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을 정경학적 관점에서 주해하고 강해한 것입니다. 기존의 글을 수정 보완하고 있어서 미완성의 글입니다. 시간되는대로 계속하여 수정해 나갑니다. 마태복음 연구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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