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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묵상] 27. 하나님 정말 당신입니까?

샤마임 2017. 12. 5.

[마태복음 묵상] 27. 하나님 정말 당신입니까?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궁금해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해 알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질문에 대해 '믿음 없다' 책망하지 않고 친절히 가르쳐 주십니다. 그 가르침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1. 성경 본문

[마태복음 11:1-19]
마 11: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세례 요한
마 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마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마 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마 11: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 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2. 묵상 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3절)

 

요한의 메시아에 대한 갈증(渴症)의 표현입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과 달라 의아함을 표시합니다. 요한은 주님이 오시기 전 ‘광야의 소리’로 주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직접 세례를 주었고, 성령의 강림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진 기대와 너무 다른 행보에 놀라고 있습니다. 성령의 내적 확신과 외적 증거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대했던 하나님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때, 내가 믿는 하나님이 맞을까? 의심합니다. 그 의심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 것이며,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놀라움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서 이렇게 역사하실 것이다. 추측하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조종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오늘도 기대와 다른 하나님께 또 묻습니다. ‘당신은 제가 알고 있던 그 하나님이 맞습니까?’라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5절)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란 민족보다 하나님 나라를 계획하십니다. 죄의 포로 된 인류를 돌이키고, 병든 세상을 치유하며,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는 것이 주님의 본심이었습니다. 요한은 이스라엘 민족의 개혁이었고, 다윗 왕국의 회복이었습니다. 세속적 유대인들보다 거룩하고 순결했지만 전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 구약에 있고, 새롭게 침노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당황했고,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한 나라의 회복이 아니라 온 세상의 회복이었습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12절)

 

천국은 침노당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천국은 침노당합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닫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든지 들어오도록 개방해 놓으십니다. 그러나 천국 문은 좁고, 천국으로 가는 길은 험합니다. 예수의 사역은 사단이 지배하는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천국은 이 땅에 침노함으로 침노당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 싸움을 거시고 은혜로 패하십니다. 이 땅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이긴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기면서 지는 곳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역설입니다.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14절)

 

사람은 먼 곳을 동경(憧憬)하지만 가까운 곳은 무시합니다. 속담에도 먼 곳의 무당은 용하다 합니다. 주님도 가족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미쳤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세례 요한을 해냈습니다. 역사의 변곡점의 정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세례 요한이 구약에서 예언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불경한 일이었습니다. 답은 항상 가까이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 여기에서 일하십니다.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19절)

 

이 세대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았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았습니다. 금식하는 요한에게는 귀신이 들렸다고 하고, 함께 식사하는 예수님께는 탐식자로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그 어떤 것에도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율법에도, 신약의 복음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침공해 들어왔음에도 개의치 않았고, 오직 자신들의 죄 된 삶에 몰두하며 살았습니다.

 

2. 묵상 글 적기

 

*이곳은 본문을 읽고 묵상한 다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적는 공간입니다.

  • 1) 하나님께서 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 2) 하나님의 나라와 나의 믿음이 질적 차이가 느껴진 적이 있습니까?
  • 3) 율법과 복음의 긴장 속에서 당신은 어떤 쪽에 가깝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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