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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게 읽혀지는 소설-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톨스토이

샤마임 201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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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게 읽혀지는 소설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톨스토이 / 조병준 옮김 / 샘솟는 기쁨

 



가을은 외롭다. 지독하게 사람이 그립다. 가을 끝자락의 바람은 차갑디 차갑다. 누군가와 여울진 감정을 풀어 놓고 싶다. 마음을 찡하게 울려준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흔을 수년 전에 넘겨버린 어설픈 중년은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라고 아우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훌쩍 지나버린 젊은 날의 열정이 순식간에 식었다.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기에 힘이 빠진 걸까. 누군가와 함께 훈훈한 담소(談笑)를 나누고 싶다. 책에 미친 나에게도 가을은 외롭다. 감동스런 이야기에 따뜻한 마음이 되고 싶은 중년의 남자다.

 

그런 나에게 한 권이 책이 찾아 왔다. 읽는 동안 마음이 얼마나 짠한지. 가슴 깊숙한 곳에서 감동의 파동이 카오스의 혼돈을 뚫고 날개 짓 한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이미 기쁨의 폭풍이 되었다. 남자의 가슴이 울컥했다. 감춰진 여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한 게 아니다. 삶을 움켜잡고 의미를 물어 오기 때문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톨스토이. 마지막 버려진 인생처럼 살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가 아니던가. 소설 속에 주인공들을 통해 진하게 울려오는 평화의 메시지가 희망으로 가득채웠다. 소설은 이런 맛에 읽는다. 소설 속 캐릭터로 유비된 존재의 의미가 거울처럼 영혼을 비춘다.

 

“무덤 저편이 삶 외에, 삶은 아직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6) ‘아직’이란 부사가 악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희망 찾기를 단념(斷念)하지 않았던 톨스토이의 꿈을 오롯이 담았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들은 톨스토이의 영적 방황과 기독교에의 회심을 그린 글’(7쪽)이다. 1부에서 ‘삶’을, 2부에서 ‘사랑’을, 3부에서 ‘믿음’을 담았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 소설들로 엮어진 이번 소설들은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기를 갈망하고 싶었던 톨스토이의 회심이후의 갈망(渴望)을 담았다. 그래서 소외 되었지만 사랑하며 살아간 팜필리우스의 이야기,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마틴 아브데이치라는 구두 수선공(190쪽)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 까닭 없이 누명을 받아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지만 결국 원수를 용서했던 상인 익시노프의 이야기는 가슴이 울렁거림 때문에 제대로 읽어 내지 못했다.

 

아! 사랑이여. 지독한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는 시기 받았고, 미움과 질투를 받아 결국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베드로의 설교에 의하면 예수를 죽인 이는 타자(他者)가 아닌 ‘나’다. 예수의 단회성 속죄를 믿지만, 상징적으로 예수는 오늘도 죽고 내일도 죽는다. 그를 죽인 이들은 유대인도 아니고 로마병정도 아니다. 서로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나’와 ‘너’ 때문이다. 산상수훈을 영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문자로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고 고집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평화주의자였던 톨스토이의 주장은 낯설음을 넘어 혁명적으로 보인다. 모두가 총과 칼을 버려야 한다면 누가 나라를 지킬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 그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에서 착함을 찾아 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빛 가운데 살고 우리의 삶은 육신에 의지하지 않아. 우리에 대한 공격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박해자와 적들이지.”(113쪽) 진심일까. 고통을 주는 자들은 더 희열을 느끼지 않던가. 영혼을 지독하게 사랑했던 톨스토이는 팜필리우스의 입을 벌려 고통의 진실을 알려 준다.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에워싼다. 가을이 따스해지는 비결은 사랑이다. 참아주고 기다리면 행복해 진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이런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감동을 선물하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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