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Peter)
[성경인물 신약 편] 베드로(Peter)
1. 베드로에 관한 개요
아람어로 게바(כיפא) 또는 페트로는 큰 바위, 반석이란 뜻입니다. 헬라어 베드로(Πέτρος)는 페트로를 그대로 직역한 것이며, 본명은 시몬입니다. 안드레의 형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명이며 대개 수제자로 불립니다. 처음 그들은 사도요한의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예수님을 따릅니다.
복음서 안에서 베드로는 독보적인 존재로 그려집니다. 수제자라는 말은 이러한 배경 안에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고향은 벳새다이며(요 1:44), 가버나움에서 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막 1:21, 29)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베드로는 부름을 받기 전 이미 결혼한 것으로 보입니다.(마 8:14, 고전 9:5) 마가복음에 의하면 베드로는 본 집이 아닌 처가살이를 하며 장모와 함께 살았습니다.(막 1:29-30)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베드로의 소명 장면은 요한복음과 마태복음이 다르게 기술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는 직접 두르신 것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마 4:18-20)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안드레가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베드로를 찾아가 데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번의 사건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서로 다른 사건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18-20]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요한복음 1:40-42]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의 한 명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가까이 두셨던 세 명의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항상 데리고 다녔습니다. 야이로 딸을 살리실 때도 세 명이었고(막 5:37), 변화산에서도 세 명이 함께 올라갔습니다.(마 17:1, 막 9:2)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도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마 26:37)
언제나 예수님과 동했으나 다혈질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갔으나 주님을 부인했고, 후에 울며 통곡합니다. 부활 후에도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를 잡지만 주님의 부름을 받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요 21장, 행 1장)
오순절 성령을 받고 어떤 사도보다 주도적으로 활동합니다. 사도행전 초기에 누가는 베드로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며, 예루살렘 교회를 강력하게 이끌었음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주도권을 주며 유대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점차 사라집니다. 베드로 전후서의 저자이며, 전설에 의하면 네로 황제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2. 신약 속의 베드로
1)복음서 속의 베드로
신약 속에서 베드로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시기적으로 네 복음서 중 가장 늦은 시기에 기록되었지만, 베드로의 소명에 있어서는 연대기적 순서에 의하면 가장 이른 시기를 다룹니다. 요한은 세례 요한이 두 명의 제자와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36)라고 말합니다. 둘 중의 한 명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입니다.(요 1:40) 그가 예수님을 뵌 다음 시몬 베드로는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말하며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 갑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시고 시몬이란 이름 대신 게바(아람어, 히브리어로는 페트로)라는 이름을 줍니다.(요 1:42) 베드로와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따라 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의 베드로의 사역은 복음서마다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연대기적 순서를 따라 정리하는 것을 힘들어 보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맥을 같이 한다고 봐야 합니다.
마태는 베드로의 소명 장면을 다르게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나옵니다. 마가복음 역시 마태복음과 동일하게 서술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약간 다르게 서술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때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니 어부들이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올라 시몬에게 육지에서 배를 떼기를 청하고 앉으십니다. 그런 다음 배에서 다시 말씀을 전합니다. 말씀을 마치고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명합니다. 이때 베드로는 밤새도록 아무 것도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특이한 것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 복음서를 억지로 꿰어 맞출 필요는 없지만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복음서마다 약간 상이한 부분이 있지만 소명의 서술 방식은 누가복음이 가장 상세하게 기술한 것으로 보이고,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소명 자체에 중심을 두고 간략하게 서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먼저 갈릴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제자들 역시 갈릴리에서 함께 동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베드로는 몇 가지 독특한 행동을 합니다.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마 8:14-15)
베드로는 장모의 집에 거주했습니다. 가끔 한 것인지 처가살이를 한 것인지는 약간 모호합니다. 하지만 처가에 분명이 자주 또는 계속 머물렀을 가능성은 많습니다.
-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열두 사도로 부름을 받은(마 10:1-4)
베드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또는 사도 중 한 명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물 위를 걷다.(마 14:22-33)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장로들의 전통에 대해 질문하다(마 15:1-20)
마 15: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를 고백하고 칭찬과 책망을 받다.(마 16:13-20)
베로는 열정으로 가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열심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뜻을 헤어릴 줄 모릅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울기 전 세 번 부인하리란 예언대로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고 맙니다.
-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변화산의 체험(마 17:1-13)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성전세와 반세겔의 기적(마 17:24-2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용서에 대해 묻다(마 18:21-35)
베드로는 호기심이 생기면 찾지 못하는 성미였습니다. 형제를 얼마나 용서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주님께 던집니다. 예수님의 베드로의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즉 너희는 용서하고 말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직 사랑할 자격만 있다는 뜻으로 일흔 번에 일곱번을 용서하라 하십니다.
마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제물 많은 청년이 떠나고 무엇을 얻을까 질문한(마 19:16-30)
마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심(마 26:31-35)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겟세마네 기도에 따라감(마 26:36-46)
마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말고의 귀를 자르다(마 26:51, 요 18:11)
마태복음은 어떤 제자로 소개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시몬 베드로'라는 정확한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칼로 진리를 실현할 수 있다는 베드로의 위대한 착각은 진정한 기독교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잘 보여준다.
마 26: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요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2) 베드로의 성격
프랭크 미너스 외 2명이 공저한 『바이블 캐릭터』(생명의말씀사)에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특이한 목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돈 호킨스의 친구 테리는 목회를 시작할 때 교회의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해서는 절대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은 고속주행을 즐기고 오토바이를 몰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습니다. 인생을 즐기며 살 건지 주님을 섬길 건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테리 목사는 속도광이었고, 위험천만해 보이는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테리목사는 ‘이 모든 짜릿한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그리스도와 누리는 경이로운 관계와 그분을 섬기고 싶은 갈망을 결코 잃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필자는 저자의 주장에 수긍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테리목사가 악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목회적 자질에 있어서 좋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죠. 저자는 테리목사와 베드로를 비교합니다. 과연 저자의 말대로 베드로는 현대에 태어났으면 낙하산을 타고,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헨리 데이빗슨 오토바이를 몰았을까요?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한마디로 ‘혈기왕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복음서에서 베드로는 테리목사보다 더하면 했지 결코 덜 충독적인 사람은 아닌 듯 보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묻습니다. 제자들은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한 명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묻습니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않을 때 베드로는 즉각적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고 고백한다. 이뿐이 아니다. 이 고백을 들은 주님은 베드로는 칭찬하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자 곧바로 베드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만류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는 향하여 ‘사단아 물러가라’고 책망하십니다.(마 16:22-23; 막 8:29-33). 성인과 사단을 오가는 극단적 성향을 가진 존재가 베드로입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단순하고 감성적인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 변화 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주님께 이곳에 초막 셋을 짓자고 말합니다.(막 9:5-6) 아마도 베드로는 변화산 사건이 너무나 좋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쉽게 감동 받고, 단순하게 생각해 버리는 성향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교회에 편지를 쓸 때 이 부분을 언급합니다.
[베드로후서 1:17-19]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이뿐 아니라 폭풍치던 갈릴리 호수에서 물 위를 걷게 해달라는 청을 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기발한 생각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베드로의 성격을 굳이 정의해보면,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며 직접 몸으로 확인해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할 후 제자들은 어이없게도 갈릴리로 다시 되돌아가 고기를 잡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갑니다. 주님의 말씀 한 마디로 많은 고기를 잡고 말씀하신 이가 예수님인 것을 알고 베드로는 뒤돌 안돌아보고 물속으로 뛰어 듭니다.
베드로의 성격은 단순하고, 감정적이며, 충동적인 사람입니다. 호기심이 강하며, 뭔가를 직접 해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베드로를 사용하시는 주님
이제 그런 베드로를 주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는 깊이 사색하거나 고민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하고 충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기 때문에 정직했고, 충동적이었기 때문에 열정과 성실이 몸에 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듬직한 ‘바위(페트라)’라는 이름을 줍니다. 다혈질적이고, 충독적인 베드로와 반석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기꺼이 베드로를 향해 ‘너는 베드로라’라고 선언하십니다.
ㄱ. 연약함을 보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베드로는 보셨습니다. 요한복음 1:42로 가봅시다.
요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주님은 안드레가 베드로는 데리고 오자 베드로는 보시고 시몬이란 이름에서 베드로로 바꾸어 줍니다. 그런데 이곳에 등장하는 ‘보다’른 헬라어 ‘엠블레포(ἐμβλέπω)’는 누가복음 22:61에서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할 때 주님께서 ‘보았다’는 바로 그 단어와 일치합니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깊은 곳을 꿰뚫어 보신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베드로의 어떤 모습을 보았다는 것일까요? 먼저는 당연히 베드로의 연약함을 보셨을 겁니다. 단순하고, 충동적이고, 호기심 많은 베드로의 모습 말입니다. 주님을 끝가지 따라가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배신자가 되어버린 베드로를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모습, 최선을 다하지만 그 최선이 오히려 일을 망치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또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ㄴ. 믿음을 보시는 주님
다시 마태복음 16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는 너무나 씩씩하게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합니다. 이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16:17-19]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주님께서 보았던 것은 베드로와 함께 하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드로와 함께 하십니다. 베드로가 베드로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베드로-반석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베드로전서 1:3-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ㄷ. 순종하는 베드로
베드로는 많은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참으로 중요한 성격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순종’이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초반부로 가면 주님께서 설교하시고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황당한 명령에 거절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베드로의 순종은 불완전해 보입니다. 미숙하고 아직 확실한 신뢰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일단 순종했습니다.
3. 교회사 속 베드로 논쟁
가톨릭에서는 베드로는 1대 교황으로 봅니다. 로마가톨릭과 정교회는 베드로는 1대 교황으로 여겨 이후의 교황들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본다.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우겨 넣은 이유는 중세 교회가 타락하면서 교황을 신성시하고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다. 초대교회 안에서는 교황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5세 기후 기독교가 국교화되고 세속적인 권력을 장악하면서 만들어진 주장이다. 베드로의 축인 사도 바울과 동일한 6월 29일이다.
이름에 관하여
원래의 시몬이다. 아람어로 케파(히브리어 페트라)이다.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하면 페트로스가 된다. 라틴어로 옮기면서 페트로스는 페트루스(Petrus)가 되어 영어 피터(Peter)가 된다. 독일어로 페터(Peter), 프랑스어로 페이르(Pierre)이다.
문서발행일 2020-06-16 19:52
1차수정일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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