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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설 교

[장별설교] 고린도후서 12장 바울의 경험한 환상과 계시

by 하늘땅소망 2020. 1. 20.

[장별설교] 고린도후서 12장 바울의 경험한 환상과 계시

12장은 11장에 이어 바울의 또 다른 자랑과 다시 고린도교회를 갈 계획을 이야기 합니다. 12장은 마지막 장인 13장을 준비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합니다.

1-13절 바울이 받은 환상과 계시

14-21절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

1-13절 바울이 받은 환상과 계시

11:16절부터 이어진 바울의 자랑이 12장 전반부까지 이어집니다. 12장에 나타난 바울의 자랑은 이전의 자랑과는 사뭇 다른 자랑입니다. 12장의 자랑은 삼층천에 올라간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7절에 의하면 그 사람은 바울이 확실합니다. 아마도 편지의 수신자들인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바울의 환상 체험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다시 그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바울의 사도직이 갖는 독특성, 그리고 권위를 위한 것입니다. 바울이 체험한 환상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2절에 의하면 바울은 ‘십사 년 전에’ 이 경험을 했습니다. 고린도전후서기 기록된 시기는 고린도 전서를 기록한 AD55 그해 가을 또는 한 해 후인 AD56년 봄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가 왜 중요한가하면 바로 ‘십사 년’이란 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한 시기는 AD33년 또는 AD34년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체험을 한 시기는 예수님의 부활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11:32-33에서 바울은 다메섹 아레다 왕을 언급합니다. 즉 바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다메섹으로 가서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눈을 뜨게 됩니다. 바울은 곧바로 다메섹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9:20-22에서 누가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 9:20-22]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이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자 광주리를 타고 성벽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1:32에 의하면 유대인을 잡으려고 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아레다 왕의 고관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이 다메섹 왕 아레다 왕에게 바울을 잡으라고 로비를 벌인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든 바울은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을 빠져 나갑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바울의 회심 시기는 AD41-2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최갑종 교수는 다른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 바울의 회심시기를 AD33/4년으로 추정합니다. 외부 연대기에 의하면 바울이 언급한 다메섹 왕 아레다는 주전 9년-주후 38/39년 사이에 재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바울의 회심시기를 정확하게 확정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바울이 분명 그 즈음에 회심을 경험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울은 과연 어떤 것을 경험할 것일까요? 먼저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하늘로부터 강력한 빛이 비추어 바울이 그 자리에 쓰러집니다. 이때 바울의 영혼이 삼층천에 이끌려 간 것으로 보입니다. 4절은 ‘낙원으로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낙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에 죽어서 가는 천국의 개념과는 약간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낙원을 죽은 사람들이 쉬는 장소로 이해했고, 기독교인들은 그곳을 의인들만 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려는 의도는 낙원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7절에서 바울은 이것을 ‘계시를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4절 후반부에서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고전 13:1)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바울은 아무도 천상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다메섹 체험을 통해 회심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낙원까지 이끌려 가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프만이란 학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바울은 그 자랑을 배격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7절에 의하면 이 체험은 결코 무시할만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바울이 받은 계시가 너무나 중요하고 특이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바울이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에 가시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조석민 교수는 사탄의 가시로 불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그를 괴롭히도록 허락되었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울을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계시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될, 무시될 수 없는 계시임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특이한 영적 체험을 한 사람들은 매우 교만합니다. 그러한 경험을 타인들을 거의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이 마치 자신의 영적인 권위와 수준을 말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40일 금식을 두 번이나 한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연락하는 분입니다. 마흔이 넘어서 신학을 시작하셨고, 작은 개척교회를 하고 계시지만 가끔 만나서 이야기하면 항상 자신이 40일 금식했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합니다. 설교 시간에서 종종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말 설교도 못하고, 인품도 별로인 분이고, 교회도 몇 명 나오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금식에 대한 경험에대해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아마 바울도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을 크게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철처히 낮추셨습니다. 가시를 주셔서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깊이 체감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아플 때, 아니면 삶이 내가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을 때, 비로소 ‘아 나는 사람이구나. 아, 하나님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울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없어지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가시를 제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건강해야 많을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될 때 사람은 반드시 교만해 집니다. 많은 일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는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말을 잘하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 머물 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영적인 사역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고백을 통해 많은 영적 은사와 체험을 가진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은사와 통찰력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당을 짓고 비방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이 없다면 그들이 가진 어떤 능력이나 은사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9절 후반부에 보니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이유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합니다. 10절에서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즉 약한 그때가 가장 강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 약함을 단순히 연약함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약함은 ‘겸손한 약함’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14-21절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

바울은 이제 편지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14절부터는 편지의 마무리하는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14절에보니 바울은 ‘세 번째’ 고린도교회에 가기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바울의 대적하는 대적자들의 비판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라 너희’라고 말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재물을 저축하고 사용하는 것처럼, 바울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위해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 내어주리니’라고 고백합니다.(15절) 20절에서는 바울이 다시 고린도교회를 찾았을 때 아직도 다투고, 시기하고 분내고, 당을 짓는 일이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러한 일들에서 벗어나 건전한 모습으로 나아가야할 것을 권고합니다.

마무리 

12장은 환상이나 특이한 체험을 자랑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강함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약함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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