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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Note/성경묵상

[빌립보서] 9. 2:25-30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by 하늘땅소망 2018.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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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9. 2:25-30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1. 말씀 읽기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2. 묵상

바울의 사역은 세기를 남을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혼자만의 사역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디모데와 같은 일심동체가 되어 바울을 돕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 이어 또 한 사람을 그들에게 소개합니다. 그의 이름은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입니다. 에바브로디도의 헬라어 에파프로디토스(Ἐπαφρόδιτος)’는 로마의 비너스로 알려진 여신 아프로디테에서 온 단어 입니다. 로마의 아프로디테는 고대 이스라엘의 이스타롯과 아세라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헬라와 그리스, 로마에서 최고의 신 중의 하나로 추앙되었습니다.

아프로디테(출처 위키백과)

아프로디테는 ‘properly’, ‘charming’로 번역되어 (예와 격식을 갖춘) ‘제대로 된이란 뜻으로 해석되거나, 타인들이 마음에 흡족한 상태를 만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상냥한또는 사랑스러운의 의미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당시에 에바브로디도라는 이름은 매우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였으며, 부모가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고, 사랑받는 아이로 크라는 소원을 담아 지은 이름일 수 있습니다. 우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름은 에바브로디도의 정체성이자 복음으로 인해 변화된 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사진은 아프로디테, 출처:위키백과 아프로디테)

1) 함께 수고한 자

에바브로디도, 그는 누구일까요? 바울은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즉석으로 네 가지를 열거합니다. 먼저는 나의 형제이며, ‘함께 수고한 자이며, 함께 군사 된 자이며, ‘너희의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소개는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교회에 속한 성도인 것이 분명해 집니다.

-나의 형제(τν δελφν)

형제로 사용되는 아델포스(ἀδελφός)’는 신약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대명사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통해 우상숭배적 영향아래 있음에도 주 안에서 거듭난 형제요, 믿음의 한 가족이며, 복음을 위하여 동일한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바리새인이며 율법을 하나님보다 더 신봉했던 바울에게 있어서 같은 이방인을 한 형제라고 말하는 것은 파격적인 변화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모든 구별과 차별을 십자가로 무너뜨리고 하나 되게 합니다.

-함께 수고하고(κασυνεργν)

함께라는 말처럼 기독교를 대변하는 단어는 없을 것입니다. ‘함께하나란 뜻이며, ‘한 가족’ ‘한 공동체라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빌립보교회는 로마시민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이 약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분쟁하고 시기하고 경쟁했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수고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교회는 어리석게도 다툼으로 주의 일을 했습니다.(1:17)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했지만 바른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디모데처럼 바울과 마음을 같이했고,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군사 된 자요(κασυνστρατιώτην)

형제와 수고한 자를 넘어 군사(συστρατιώτης)’로 부르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군사를 뜻하는 συστρατιώτης은 이곳과 빌레몬서(1:2)에게 두 번 사용됩니다. 군사는 전장에서 동일한 적을 향해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용어인 스트라티오테스는 신약에서 26회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라고 부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στρατιώτης)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로마 군인의 복장

군사는 오직 한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적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오직 자신을 영적 군사로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빌립보교인들에게 각인시켜 그에게 뜻을 전할 때 유순하게 받아들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사자로(ἀπόστολον)

사자는 보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자가 아니라 너희, 즉 빌립보교회의 사자로 활동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교회가 결코 이기적이거나 악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필요한 것이 생길 때 빌립보교회는 힘써 자신들이 것을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비록 우상숭배적 이름을 가진 에바브로디도였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난 후 오직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동역자들의 도움을 통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었습니다.

2) 자기가 병이 들었음에도

두 번째 이어지는 바울이 칭송은 에바브로디도의 헌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27)으나 상관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을 교인들이 걱정할 것 같아 근심’(26)했습니다. ‘사모하다(ἐπιποθέω)는 그리움과 향수(鄕愁)를 나타내는 동사로 바다물을 먹고 갈증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갈증은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에바브로디도는 복음을 위해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교인들이 걱정할 것을 염려해 더욱 큰 걱정에 빠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은 자기의 짐을 자기가 질 뿐 아니라(6:2), 타인의 짐을 서로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완성해가는 삶을 살았음을 말합니다.(6:2)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자신의 병듦을 관여치 않고 오직 복음을 위해 자신을 죽기까지 내여 놓았습니다. 만약 교회 가운데 이런 성도가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할까요?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빌립보에 보냈습니다. 교인들이 걱정할 것을 염려해 직접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한 그를 직접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27)라는 표현 속에는 바울이 얼마나 에바브로디도로 인해 초초해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바울 자신을 긍휼히여기는 것으로 말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던지 내 근심 위에 근심’(27)이라고 표현합니다. 만약 에바브로디도가 죽었다면 바울의 마음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죽음을 받아야 하지만, 신뢰하는 동역자를 잃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입니다.


3) 그를 존귀히 여기라

바울은 이제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에바브로디도를 기쁨으로 영접하라고 권면합니다. 실로 에바브로디도로 인해 빌립보교회는 바울은 돕는 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한 교회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세상의 부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을 존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교회 안에서 왜곡된 마음으로 차별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2:2-4)

세속적인 가치에 함몰된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한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치를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의 헌금을 바울에게 전달했으며, 바울과 수행하여 복음을 증언하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가 갑자기 빌립보교회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거나 의아해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오해를 적절하게 풀어주고 에바드로디도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하나님의 나라와 바울을 섬겼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마땅히 존경 받아야합니다. 교회를 위해 복음을 이해 목숨의 위태로움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가면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라는 한 사람을 주목합니다. 그의 마음과 헌신을 두루 소개하여 빌립보에 보냅니다. 혹여나 있을지 모를 오해를 풀고 교회의 지도자로서 적당한 인물임을 추천하려는 의도입니다. 바울의 추천 속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생각과 관찰이 담겨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관계 때문에 억지스럽게 꾸며낸 추천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삶으로 이미 검증받은 믿음과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죽기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생명 같은 섬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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