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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6:1-11

샤마임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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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6:1-11

1. 본문 읽기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2. 강해

우상과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먼저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점, 그리고 인격적인 분이라는 점, 형식이 아닌 마음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상은 포이어바흐의 주장처럼 사람들의 욕망을 표출한 하나의 가식에 불과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요구하며, 명령하시며, 교제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사랑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모든 삶의 최선을, 최고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치명적인 실수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앞에 세워진 우상에게 많은 재물을 갖다 주고 의미도 없는 정성을 들인다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연속적인 기도, 우리 주님은 이러한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예배라는 것이다.

  •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 말씀은 형식에 치우쳐 본질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타 중의 하나입니다.

  •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실 때의 상황은 분명 호세아서에 기록된 상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이 형식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이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제사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없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해 줍니다.

 

  • 히 10: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는 드리면서 말씀대로의 삶은 전혀 없었습니다.

 

  • 4절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인애는 헷세드, 언약적 사랑을 뜻하지만 이곳에서는 성실함을 의미한다. 말로만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뒤돌아서면 자신의 말씀을 던져버리고 자신이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7절에서 이들을 향하여 ‘아담처럼 언약을 어’겼다고 말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살인을 저지른 ‘길르앗’(8절)과 ‘세겜’(9절)이 도피성이라는 점이다. 이곳은 실수로 살인을 한 사람들이 도망을 가서 목숨을 보존하도록 만들어 놓은 은혜의 공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긍휼의 공간을 침범하여 자신의 복수를 단행했으며, 결국 무자비한 살육자로 변질되고 말았다. 9절을 보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제사장이 원래의 제사장들인지 여로보암에 의해 세워진 거짓 제사장들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어쨌든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오히려 앞장서서 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를 드리며, 화려한 번제를 드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실수로 도피성에 숨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타인의 연약함을 눈감아 주며, 잘못은 덮어 주라는 것입니다. 화려한 번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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