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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4:19-27 깨달은 후에!

샤마임 2020. 11. 24.

다니엘 4:19-27 깨달은 후에!

[생명의 삶] 11월 24일 화요일


[본문읽기]

느부갓네살왕이 꾼 꿈의 내용 4:19~23

19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20 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21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에 살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었나이다 22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23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다니엘의 꿈 해석과 조언 4:24~27

24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이가 명령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26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27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묵상] 


다니엘은 포로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나라와 나라의 전쟁을 신들의 전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긴 나라는 자신들이 섬기는 나라의 신이 상대방의 신을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시편 137편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 137:1-3]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은 모든 나라와 권세를 통치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의 상황에서 말이죠. 지금 우리의 상황은 마치 다니엘의 상황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고,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이러할 때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고 주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도 느부갓네살 왕은 그 꿈을 이해하지 못했고 다시 바베론의 지혜자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7절) 그 때 다니엘을 불러 그 꿈의 해석을 부탁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듣고 번민합니다. 그것을 흉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준 대로 그대로 해석해 아룁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보았던 나무는 느부갓네살 왕 자신이었습니다.(22절) 그 나무가 얼마나 컷던 수많은 동물들이 그 나무에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견고하고 높아 끝이 하늘이 닿았습니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권세가 하늘에 닿고 땅 끝에 이른다는 의미입니다.(22절) 그러나 그는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한순찰자가 그 나무를 베도록 명하고 오직 그루터기만을 남겨 놓습니다. 그 순찰자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권세를 준 것도 하나님이시며, 빼앗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은 왕 앞에서 숨기지 않고 그대로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왕들의 왕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삽니다. 오늘도 사소한 일상 때문에 우리의 심령이 상하고, 사소한 손해로 인해 마음이 무너집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부와 권세를 주시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합니다. 욥의 고백처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지는 않습니다. 그루터기를 남겨 두어서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기회는 그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26절)입니다. 깨달음은 이성적 이해나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를 뜻합니다.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마음의 고백이며, 영혼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물의 통치자이심을 깨달았다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의’와 ‘긍휼’입니다.(27절) 신앙은 삶이며, 삶은 곧 믿음의 고백입니다.

광야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팡지팡... 광야에 길을 내시고, 포로 상황 속에서 다니엘에게 오셔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모호한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들과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기도]


자비의 하나님! 포로의 몸으로 비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기꺼이 드러냈던 다니엘처럼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확신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상황을 핑계하며 영적 퇴보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따라 오늘도 신실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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