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들] 임마누엘(Immanuel)
[하나님의 이름들] 임마누엘(Immanuel)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히브리어로 헬라어로도 동일하게 사용한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계시의 이름 중 하나이다.
임마누엘의 뜻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히브리어
엘 - 누 마 임
임마누엘 헬라어 Ἐμμανουήλ
마 1:23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Ἰδοὺ ἡ παρθένος ἐν γαστρὶ ἕξει καὶ τέξεται υἱόν, καὶ καλέσουσιν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Ἐμμανουήλ, ὅ ἐστιν μεθερμηνευόμενον Μεθ’ ἡμῶν ὁ Θεός.
임마누엘은 구약에서는 모호하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드러낼 때 사용했다.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히브리어는 임마누와 엘이 분리되어 있다. ‘임마누’가 ‘우리와 함께’라면, ‘엘’은 하나님을 뜻한다. 하나님의 다른 이름은 엘로힘이나 엘샤다이, 엘로이 등의 엘은 모드 하나님을 뜻한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성경에서는 모두 세 번에 걸쳐 ‘임마누엘’이 사용된다. 두 번은 이사야이며, 한 번은 마태복음에서 족보가 끝난 다음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하며 언급한다. 마태복음에서 언급한 임마누엘은 이사야 7:14을 인용한 것이다.
성경에 임마누엘이 기록된 구절들
-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이사야 8: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주해를 통한 용어 이해
이사야 7:14의 배경
먼저 임마누엘이 기록된 이사야 7:14로 돌아가 보자. 이 구절이 나오는 문맥을 살펴보면, 유다 아하스 왕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흐름 속에서 나타난다. 7:1-2을 보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담겨있다. 아람의 르신 왕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연합하여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때 이사야는 유다 백성들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더라’(7:2하)고 표현한다. 아마도 강력한 두 나라의 동맹은 궁한 처지에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크나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한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자신이 한 말을 전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7:3-9까지이다. 그래도 가져와 보자.
-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5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7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8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곳에서 하나님은 두 왕의 동맹을 ‘악한 꾀’(5절)라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꾀가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심지어 그 두 나라가 곧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9절에서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하신다. 즉 눈으로 보이는 현재의 상황에 안절부절 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하신다. 만약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면 한 가지 징조를 구하라 말씀하신다.(10절)
의외로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는다. 징조를 보지 않고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입술로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12절)고 하지만,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이때 이사야가 예언을 한다.(사 7:13-16)
- [사 7:13-16]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이사야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고 말한다.(13절)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는 표현은 아합이 엘리야에게 했던 말이다. 엘리야의 기도로 비가 내리지 않자 아합이 엘리야를 보며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은 내(엘리야)가 아니라 바로 당신(아합)이라고 대답한다.
열왕기상 18:17-18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역대기 기자는 아간의 사건을 회상하면서 그가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대상 2:7)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괴롭게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며, 불신의 가득 찬 마음으로 악을 행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사야가 아하스를 향해 선포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 “당신은 거룩한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시험하지 않겠다 하지만. 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존 와츠는 이 본문은 처녀(알마)를 아하스의 아내로 상정하고, 그가 후손을 낳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후손은 단순한 후손이 아니라 후대에 ‘임마누엘’이라 불리게 된 다윗의 자손이다. 와츠의 주장을 확대해 본다면 창세기 3:15의 여인의 후손으로 연관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와츠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확신하기 힘들다.
보수적 신학자들은 처녀(알마)를 곧바로 결혼하기 전의 마리아로 상정한다. 즉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마태도 아마 이러한 관점에서 분명 이사야 본문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의 예언이 마태가 해석한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다만, 마태는 그 본문을 메시아 예언 본문으로 재해석한 것은 맞다.
그렇다면 임마누엘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사야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예수 탄생 시기의 상황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임마누엘이 예언된 이사야 시대는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서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알았기에 징조를 구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아하스는 징조를 거절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한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실제적인 힘을 의지했다. 그때 이사야는 임마누엘을 예언함으로 새로운 믿음의 지평을 요구한다.
이야기는 다시 8장으로 넘어간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하스를 향하여 예언한다.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갸라를 불러 증언하게 하신다. 이사야가 아들을 낳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이름한다.(8:3) ‘마헬살랄하스바스’의 뜻은 ‘노략이 속히 옴’이란 뜻이다. 4절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노략물은 북이스라엘의 아람이다. 그들은 앗수르의 노략물이 되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4절)이다. 즉 멸망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다음 다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예언이 이어진다. 6절에서 이 백성, 즉 이스라엘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신다.(6절) 실로아 물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버리고 오히려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폭풍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두 왕국의 동맹을 볼 때 동참하고 싶은 것이다.(존 와츠) 다른 학자들은 반대로 아하스가 앗수르와 동맹을 맺어 동맹을 맺은 두 나라의 멸망을 보고 기뻐할 한다고 말한다.(존 오스왈트)
다음 문장은 앞선 이야기를 이어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므로 보라’로 시작하는 7절은 하수로 표현되는 앗수르가 그들을 뒤덮을 것이고, 모든 골짜기에 차고 넘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 8절은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이사야 8:8)
문맥상 8절에 나타난 임마누엘은 해독이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하수-앗수르가 유다까지 들어왔다면 위기다. 그런데 곧이어 등장하는 임마누엘에 대한 표현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임마누엘을 문자적 의미인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라면 존 오스왈트의 해석이 타당해 보인다. 그는 ‘목’까지 차오른 물은 최악의 위기이지만, 하나님께서 물(앗수르의 공격)을 막으실 것이라 말한다. 즉 앗수르는 유다를 멸망시키지 못하신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지키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의 신약적 의미
이제 마무리해보자. 마태가 인용한 임마누엘의 뜻은 어떤 의미에서 가져온 것일까? 먼저는 위기의 시대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악 조건이 놓여있다. 이 때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 하신다. 왜 그렇게 하실까? 하나님께서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뜻이며, 믿음 없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이것은 기드온이 이슬 기적으로도 부족하자 다시 미디안의 장막으로 내려가 정탐하라는 명령과 비슷하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초번들의 꿈 이야기를 어떻게 역사하실 것인가를 보여주신다. 비록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고 열악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시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태는 이러한 정황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예수라 하기 전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함께 하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마이클 그린은 본절을 해석하면서 9:6의 ‘한 아이’와 연관 시킨다. 즉 메시아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그리하여 메시아의 이름은 ‘구원하다’의 뜻을 가진 ‘예수’가 된 것이다.
아하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의지하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다. 하지만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믿음을 보이는 것들의 너머에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의 이성과 한계를 초월하신다. 그래서 믿음은 초월적 신뢰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고 바라본 기존의 방식을 초월하여 문제를 해결하신다. 육신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이다. 단지 물리적 공간의 독립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영원까지 이르는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진정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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