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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sées

팡세 585 숨어 계시는 하나님

by 하늘땅소망 201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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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585 숨어 계시는 하나님

585
신이 자신을 숨기려 하셨던 일
만일 종교가 오직 하나밖에 없다면, 신은 그 속에 뚜렷하게 나타나실 것이다.
만일 우리 종교에만 순교자가 있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은 이처럼 숨어 계시므로, 신이 숨어 계심을 설교하지 않는 종교는 어떤 것이든 모두 진리가 아니다. 또한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모든 종교도 인간을 이롭게 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종교는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숨어계시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어떻게 해서 이런 표현을 썻을까? 앞뒤 본문을 살피면 이사야선지자의 이 표현은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다. 이사야 45장은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된 고레스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사용해서 바벨론 포로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고 죽은 것 같았던 이스라엘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모든 민족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 만이 참 하나님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사 45: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그럼 하나님께서 숨어 계신다는 표현은 무엇일까?  파스칼의 해설에 좀더 귀를 기울여보자.

586 ........... 왜냐하면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아는 것과, 신을 모르고 자신의 비참만을 아는 것은 인간에게 똑같이 위태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인간이 위태로움에 대해 언급한다. 첫번째 위험은 자신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 두번째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만을 아는 것이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사역이 전혀 있지 않다. 둘다 위험하다. 참 앎이란 자신의 비참함도 알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존재라는 것을 함께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숨어계심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지 못함에 대한 표현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지 못한다. 이사야의 예언은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만약 이사야가 이 예언을 하지 않았다면 고레스를 통한 포로귀한은 역사 속의 평범한 사건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의 이 예언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안다. 그렇다면 예언은 반드시 과거의 사건기술이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미래에 대한 예언이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일하심이 드러난다. 예언의 성취는 곧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이렇게 분명히 하나님은 드러나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숨어 계신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은 계속된 하나님의 일하심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기적을 보고서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숨어계시는 분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 있지만 교만한 자들에게는 숨겨져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은 "현명하면서도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이다[각주:1] 이러한 지혜와 어리석음의 양날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한 번 드러나고 감추어진다. 월터부르그만은 숨어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을 구약의 지혜와 신약의 그리스도로 연결시킨다.

"지혜는 창조의 역사 속에 작동되고 있는 하나님의 힘이다."[각주:2]

"창조의 두 번째 실행자인 지혜는 창조의 사역 속에서 영속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이 사역 속에서 야웨와 특별한 밀접성을 갖고 있다"[각주:3]

부르그만은 이곳에서 요한복음 1장으로 넘어간다. "이런 점에서 요한복음 1:1-18은 실로 창세기 1:1에 대한 암시로 시작하고 있는데......[각주:4] 이것이 바로 지혜이기 때문이다." 부르그만은 다시 바울신학으로 넘어가면서 하나님의 지혜의 어리석음의 이유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끌고간다.

"여기서 하나님의 지혜는 어리석음이란 형태, 즉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되신 예수 안에서 알려지게 된 어리석음의 형태를 띠고있다"[각주:5]

부르그만의 구약의 지혜가 신약의 그리스도로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포로된 이스라엘-신약에서는 영적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자유자로 살게 하신다. 즉 종에서 아들로의 신분변화를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제 숨어계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좀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고레스는 신약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포로된 이스라엘을 고토로 돌려보내며 회복시킨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사용하신 것이다. 포로에서 자유자로의 변화, 그리스도의 사역은 고레스의 사역에서 동치된다. 구약의 회복이 불완전한 사역이었다면 신약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완전한 사역이다. 

그러므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설교하지 않는 것은 완전한 진리가 아닌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며 숨어서-드러내며 섭리하시는 주님을 아는 지식이야 말로 가장 고귀한 지식이며, 신앙고백이다.




  1. 팡세 588 우리의 종교는 현명하면서도 우매하다. 현명하다는 것은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기적이나 예언 위에 굳게 서 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월터 부르그만 [구약신학] 556쪽 [본문으로]
  3. 앞의 책 55쪽 [본문으로]
  4. 앞의 책 558쪽 [본문으로]
  5. 앞의 책 560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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